[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나는 가끔 방에서 천장을 하늘로 쳐다본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소중한 사람과 그 존재와 얽힌 사연들, 추억(追憶)은 분명 과거에 속해있지만, 냉장고 문을 열면 얼음이 있거나 아이스크림이 존재하듯 그렇게 과거의 추억냉장고는 그 형체가 분명한 소중한 존재들이 있다. 추억은 분명 실재한다.
꿈은 그 한자어가 의미하듯(夢) 눈을 감고 미래를 향하는 것이고, 미래를 꿈꾸면서도 우리는 과거의 소중한 추억을 통해서도 미래를 꿈꾼다. 어쩌면 생각에는 시간이 없으므로, 미래를 꿈꾸든, 과거를 추억하든, 생각의 세계에서는 그 자체가 아름다운 하늘이다. 나의 천장에는 또렷한 흔적들이 분명하다.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 대강리 평촌부락에서 태어나, 반에서 10등을 했던 중학교 시절, 나는 순천고등학교에 진학하려고 ‘특별반 편성’에 자원해서, 밤 10시까지 남아 붕우(朋友)들과 공부했었다. 순천고 40회, 나로서는 들어갈 엄두가 날 수 없었고, 동강중학교 1등도 당시 함께 시험을 봤지만, 떨어졌고, 나는 붙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나의 도전정신은 무모하고, 앞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했던 젊은 날의 꿈이었을 것이다. 떨어졌다면, 얼마나 낭패였을까? 합격한 이유는 사실 본고사가 유일하게 부활했던 그 때, 수학시험이 너무 어려웠고, 나는 수학에 자신이 있었는데, 그 점수가 엄청났다. 다른 과목은 모두 어려워서 보통 20점, 30점 이렇게 나왔다.
순천고등학교(順天高等學校)를 다녔던 그 시절에, 나에겐 인생의 격량이었고, 때론 친구들을 사귀기에 너무 벅찼던 시골 소년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나는 시골이 고향인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교육복지 혜택이 더 늘어나야 하지 않을까싶기도 하다. 시골에 살던 아이가 도시로 환경을 옮겨서 적응하는데 최소 1~2년이 소요되는데, 그렇다 보면 사실상 고등학교 시절이 금방 지나가버린다. 고등학교 교육량이 중학교때 배운 부분에서 20% 가량 증가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나로서는 옮겨 심은 나무가 뿌리를 내리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쩌면 인생은 어제에서 오늘로, 오늘에서 내일로 옮겨심는 시간의 나무일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소중한 친구, 죽마고우(竹馬故友)이거나, 함께 추억을 공유하는 소속감으로서 순고 동창(同窓)이 전화가 왔다. 전체 카톡에서 소식을 듣고는 있지만 (나로서는 카톡문화가 여전히 익숙하지 않지만, 카톡은 나의 의향을 묻지 않고 초대당하는 강제성이 강하다) 전화로 듣는 친구의 목소리는 무척 반가웠다. 해변에서 밀려오는 그런 파도소리….. 추억은 그런 것인가? 이런 추억도 현실에서 직면하면, 꿈에서 깨어나면 사라지는 꿈처럼, 냉장고에서 꺼낸 얼음조각처럼 과거는 현실과 직면하여 새로운 추억이 형성되겠지만, 나는 추억을 추억으로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
정치 이야기, 경제 이야기, 살아왔던 삶의 소소한 소식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과거로 회귀하지 않길 바라는 진심들, 우리의 걱정이 향하는 방향은 동일했다. 동창(同窓)이어서 그런 것도 있겠고, 어쩌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모두의 마음이 그러할 것이다. 호남과 영남을 구분한 것이 사실 깃발을 세운 정치인들이지, 우리가 언제부터 오른발과 왼발, 우측손과 좌측손이 남남으로 다퉜던가? 삼국시대도 아니고!!! 촛불집회 집회자와 탄기국 집회자들이 마치 베트남 전쟁에서 낮에는 미국편, 밤에는 공산주의로 활동했듯 서로 분열되어서 집으로 돌아가면 가족분쟁의 밥상까지 엎었다고 하니, 삼팔선의 분쟁이 가족의 밥상까지 그어지게 한 그 깃발의 주체자들에게 우리는 속지 않기를 바라면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내일의 밥상이 보다 풍요로워지길, 희망해 보았다.
ps. 나는 개인적으로 지금의 정치현실이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홍길동)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1:1로서 같다는 뜻이 아니고, 깃발과 깃발을 만든 이와 그 깃발의 도구가 된 이들, 수단과 목적과 ‘수단과 목적’을 연출하는 정치세력에 대한 드라마의 주제가 깊게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