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조직의 쓴 맛을 보여준다는 말이 한때 유행했다. 1인의 힘은 약해도, 10인의 집단은 뭉치니 힘이 강하다. 조직은 협력체제로서 덤프트럭처럼 영향력이 세다. 사람이 사람과 부딪히면 어깨가 아프지만, 사람이 자동차와 부딪히면 생명에 치명상을 입게 된다. 그처럼 조직과 대항하는 개인은 그 운명에 영향이 발생한다. 그래서 조직내부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쉽게 덮여버린다. 조직의 쓴 맛이 매운 신라면보다 100배 더 매섭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전체집합에서 권력의 속성을 논한다면, 3권 분립체제에서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권한이 있을 것이다. 이 중에서 권력의 힘이 가장 강한 곳은 행정부이다. 반면, 한 사람에게 몰려있는 권력의 힘이 가장 강한 곳, 권력의 집중력은 검찰과 판사가 가장 강하다. 또한 경찰도 그 권력이 상당하다. 검찰은 기소권(起訴權)과 영장실실심사에 대한 기소권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판사는 판결권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경찰은 조사권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반면, 국회의원은 권력이 많은 것 같아도 실상 그렇지 못하다. 당체제로 운영되어서, 법률에 대한 입법권이 실제 현실에서 영향력이 크지 않다. 또한 대한민국은 정부에도 법률제안권이 있어서 국회의원들의 입법권이 단독 권한도 아니다. 결국, 행정부를 장악하는 권력이 진짜 살아있는 권력이다. 권력의 실제 핵심은 300조가 넘는 국민세금의 사용방향의 결정권이다. 이쯤 되면, 과연 권력의 본질이 뭔지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권력은 강한 힘(?) 또는 통솔하는 힘(?) 등의 느낌이 있는데, 실제 권력의 본질은 저울이다.
권력(權力)에서 力은 사람의 팔을 본떴고, 힘이 있다는 의미이며, 모두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단어이다. 결국, 권력을 알려면 권(權)을 알아야한다. 權은 2가지로 해석된다. 하나는 황새 관(雚)과 나무 목(木)의 합성이다. 황새는 머리와 두 눈, 새 추(隹)로 구성되었다. 눈이 크면서 왕관을 쓴 듯한 뿔(艹)이 있는 새, 황새를 말한다. 황새는 어감처럼 황제의 새로서, 새들의 황제이다. 독수리가 새들의 황제겠지만, 사람이 인식하는 새들의 황제는 황새다. 볼 관(觀)은 황새처럼 자세히 본다는 것이고, 물댈 관(灌)은 황새처럼 긴 도랑으로 물을 댄다는 뜻이고, 두레박 관(罐)은 황새처럼 긴 줄 끝에 메달린 항아리(缶)를 말한다. 결국, 권(權)은 황새가 앉아있는 나무로 해석해서, 황제를 의미한다고 간단하게 해석할 수 있다. 황제는 언제나 힘을 가지고 있으니, 가장 강한 힘은 황제의 힘이다.
두 번째, 權은 저울추를 말한다. 황새가 목이 길 듯, 옛날의 저울추는 목이 길면서, 도끼를 기준삼아 쌀가마니의 무게를 달았다. 쌀가마니가 60kg인데, 도끼날은 600g에 불과하면서, 무게를 정확히 측정했다. 저울은 지렛대 원리로 무게를 측정했다. 권력은 곧 저울대로서, 아무리 무거운 물체라도 지렛대로 무게를 달아서 평가하고, 측정하고, 이동시킨다. 저울은 곧 결정권한인 셈이다.
조직에서 “낙하산”이란 용어를 많이 쓴다. 낙하산(落下傘)은 위에서 내려온 인재발탁인데, 경영진의 친인척의 채용을 비꼬아서 하는 말이다. 인재를 뽑는 기준이 분명 존재하는데, 그러한 기준을 무시하고, 특정인과 관계가 근거가 되어서 회사에 입사하게 된다면, 그것은 경영진의 권력에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경영진이 낙하산을 내려보낼 수는 있지만, 권력의 속성은 본래 ‘저울’이어서, 경영진의 저울에 문제가 생겼다는 불신이 함께 퍼지게 된다. 권력이 그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투명성과 공정성이 가장 중요하다. 저울이 물체의 무게를 재대로 측정하지 못한다면, 시계가 시간을 제대로 표시하지 못한다면, 30cm 자가 길이를 제대로 측정하지 못한다면, 좋아하는 사람은 키를 10cm 크게 특정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10cm 줄여서 난쟁이로 만든다면, 그 줄자는 자의 권력을 상실한 것이다. 이러한 권력행사는 권력남용 및 권력오작동이라고 한다. 현 정권이 보여줬던 권력행사의 치명적 단점이 이것과 같고, 한국사회에 만연화된 권력행사의 문제점이 이와 같다. 전통적 조직체계에서 권력을 권위주의적 통치 수단으로 잘못 오해하면서, 권력에 무조건 따라야한다는 당위성으로 잘못된 관행까지도 권력으로 밀어붙이면 인사결정권을 쥐고 있는 상사의 말에 코가 꿰듯 복종해야 하는 조직이었다. 정말로 조직의 매운 맛이었다. 과연 이러한 권력구조가 정당한가?
권력을 황제의 힘으로 믿는 자들은 ‘권위적 권력자’들이다. 이들은 권력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어떤 갈등이 발생하면, 갈등의 표면을 덮거나, 갈등의 당사자들의 입을 함구하거나, 갈등이 발생한 그 사건에 대해 임시치료를 하고서 갈등이 해결되었거나, 혹은 애초에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일을 처리해 버린다. 갈등을 인지한 당사자들에 대해 권력으로 행동강령을 시달하면 그것으로 모든 갈등은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갈등은 역사가 있고, 옮겨다닌다는 말이 있다. 표면의 갈등은 빙산처럼 솟은 것일 뿐, 깊게 파고들면 갈등의 원뿌리가 나오며, 어쩌면 그 갈등의 뿌리가 갈등을 해결하려고 권력을 행사한 당사자에게까지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다. 이러한 갈등을 방치하면, 결국 훗날 권력의 탄핵폭풍이 발생할 수도 있다. 권력(權力)은 황제의 힘이라기 보다는 ‘저울의 공정성’이다. 저울을 재는 권력자부터 저울이 공정하고, 투명함을 전체 조직원에게 보여지게 할 때, 그 권력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신뢰의 권력이 될 수 있다. 권력을 공정한 저울로 비유할 때, 그 저울의 본질은 ‘법과 기준’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