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뉴스, 학종]=대입(大入)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다. 학부모가 대학에 안달나는 이유는 경쟁률 때문이다. 모두 들어가고 싶은데, 들어가지 못하니, 안타까운 것이다. 취업도 마찬가지다. 좋은 기업은 경쟁률이 높다보니, 합격과 불합격의 희비가 엇갈린다. 입학사정관은 대입의 면접관이다. 이들은 도대체 누구를 뽑는 것일까? 이 질문의 열쇠는 의외로 간단하다. 모르면 복잡할 뿐, 알면 간단하다. 아는 것은 해가 뜬 것과 같다. 해가 뜨면 모두 밝고, 해가 지면 모두 어둡다. 알면, 열쇠로 문을 여는 것과 동일하다.
하버드대학교 가드너 심리학 교수는 아주 오래전에 ‘다중지능이론’을 발표했다. IQ만 있는 줄 알았더니, EQ도 있었다면서 한동안 교육계를 떠들썩하게 달궜다. 원자를 쪼갰더니 중성자가 나오고, 미립자가 나오고….. 계속 뭔가 발견되듯이, 사람의 두뇌를 분석하니 새로운 것이 나온 것과 같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학생은 점수로 평가될 수 있다고 봤는데, 그게 아닌 것이 입증됐다.
최고 대학의 수석으로 졸업해서, 법률을 주름잡아도 ‘인성’없는 인재는 기계와 같아서 법위의 독재자로 군림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사람의 탈을 쓴 기계인간의 통치가 지금 우리위에 있다. 로봇이 다스리는 시대를 두려워하면서, 왜 로봇보다 잔인한 ‘사람의 탈’을 쓴 기계인간의 통치는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인성없는 인재들의 군림이 이와 같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입학사정관제도이다. ‘학생부종합전형’과 같다.
점수만 보는 시험은 정시라고 한다. 정시(定試)는 정해진 시험을 뜻한다. 수시(數試)는 수시로 보는 시험을 뜻한다. 정시는 ‘수능시험’을 말하고, 수시는 ‘학생부종합전형’과 ‘학생부교과전형’을 뜻한다. 점수는 수능점수도 있고, 내신점수도 있다. 학교시험은 학년별 등급으로 환산된다. 정시의 수능시험은 수능등급으로 학생을 선별하고, 수시의 학생부교과전형은 내신등급으로 학생을 선별한다. 나머지는 학생부종합전형이다.
학교마다 동아리를 만들고, 과목마다 수업방식이 토론수업과 발표수업으로 바꾸는 이유가 있다. 학생부종합전형을 대비해서 생기부 풍성한 기록을 위해서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연결하는 것, 생기부다. 정시는 수능점수가 ‘고등학교와 대학의 연결다리’가 된다. 반면, 수시는 생기부가 고등학교와 대학의 연결다리다. 생기부는 1학년, 2학년, 3학년 1학기 및 8월까지 추가로 기재된다. 상황이 이쯤 되면 교사의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 학생은 인지해야한다. 무소불위 교사권한은 입학사정관보다 월등하다. (걱정할 것은 없다. 교사의 성적표는 학생이므로)
교사는 학생으로 평가받는다. 교사를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평가받지 못한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반면, 교사는 학생의 대학진학률로 평가를 받는다. 또한, 학생이 교사를 평가한다. 열정있는 수업을 하면, 학생은 그 교사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교사는 사람을 얻을 수 있는 직업을 가졌다. 졸업후 은사를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생은 원한다. 생기부에 잘 기록해주길. “잘”의 뜻이 뭔가? 생기부의 두께일까? 여기서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는 ‘딜레마’에 빠진다. 3사람은 모두 같은 마음이다. 학생이 대학에 입학하길 원하는 것, “잘” 기록해야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잘 기록하는 것일까? 누구 마음에 들어야하나? 학부모? 학생? 교사? 여기에 빠진 인물은 입학사정관이다. 입학사정관의 마음에 드는 기록은 뭘까? “잘”은 입학사정관이 보기에 “잘”이다.
입학사정관이 알고싶은 것은 오직 하나다. 그것은 ‘학교’가 아니고 ‘학생’이다. 학생이 인재인지, 인성이 있는지, 그것을 미리 알고 싶은 것이다. 입학사정관이 학생을 불러놓고 “인재인가요? 인성이 있나요?”라고 물으면, 대답은 간단할 것이다. “예 맞습니다” 또는 “남들이 그렇다고 합니다”로 나뉠 것이다. 겸손하게 말해야 합격된다면 후자를 택할 것이고, 적극성이 합격된다면 전자를 택할 것이다. 입학사정관은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이런 질문은 인재를 분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재가 누군지, 그것을 분별하는 책무가 입학사정관에 있다.
1) 학생의 특징이 드러나야한다.
그림을 그리면 눈코입이 그려져야한다. 세밀한 기록이다. 교사는 학생의 행동을 기록해야한다. 생기부 기록이 입학사정관에게 전달되므로, 입학사정관이 1줄의 문장으로 그 학생을 눈치챌 수 있도록 기록해야한다. 그럼, 교사는 묻는다. 학생이 1년동안 활동한 분량이 책 10권보다 많은데 1줄로 압축할 수 있나요? 사람은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고를 때, 책을 읽어보고 고르지 않는다. 책제목과 디자인을 보고 고른다. 책제목과 디자인이 책내용을 대표한다. 학생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대표적인 활동사항을 1~2줄에 압축해서 표현하면, 그 문장이 학생을 대신해서 입학사정관에게 갈 것이다. 많은 말은 복잡하다. 점심을 먹을 때도 메뉴를 결정하듯, 학생을 대표할 특징적 활동은 반드시 정해야한다. 모든 학생마다 각각이다. 평소에 학생마다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이유로 강의수업에서 토론수업으로 변경된 것이다.
2) 학생의 배움이 드러나야한다.
교사가 무엇을 가르쳤는지, 학교 프로파일에 모두 있다. 대학은 고등학교 실적을 참고자료로 삼을 뿐, 학생에게 관심있다. 좋은 학교 출신이 좋은 학생을 지속적으로 배출할 수도 있지만, 그 학생이 과연 그런 인재에 해당하는지, 별개의 문제다. 교육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학생이 그 교육을 어떻게 배웠는지가 중요하다. 배운 내용과 교육 내용은 전혀 다르다. 교사입장에서 “그게 그것이다”라고 말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교사가 교육한 것은 교육과정의 진도에 맞춰서 교직활동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고, 학생은 그 교육을 학생의 인지능력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교육과 배움은 전혀 다르다. 지식전달은 물건전달처럼 진행되지 않는다. 내신등급이 정해지는 것도 학생의 배움이 각각인 것을 입증한다.
3) 학생의 성장이 드러나야한다.
입학사정관은 발전하는 학생을 높게 본다. 1학년~3학년까지 성적이 지속적으로 발전했다면 좋은 효과는 있겠지만, 점수상승은 점수상승일 뿐이다. 서류를 꼼꼼히 살피는 주된 목적은 그 학생이 학교생활을 얼마나 성실하게 하면서 스스로 발전적 성찰을 했는지, 교과활동을 통해서 스스로 꿈을 이루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고, 교사와 학우들과 함께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그 맥락을 살피는 것이다. 학생부에는 성장과정이 자세히 드러나지 않는다. 단지, 단서가 그곳에 적히고, 학생은 그 단서를 퍼즐로 조각해서 자소서를 써야한다.
4) 학생의 다양성이 드러나야한다.
학교안에서 학생은 담임교사가 있다. 대학은 담임교사와 과목교사를 구분하지 않는다. 학생중심의 평가는 학생과 어떤 관계를 형성하면서 각 과목수업이 진행됐는지가 중요하다. 학생 입장에서 각 과목별 교사들과 수업의 충실도를 높여야하고, 교과목과 연결해서 동아리 활동에 신경써야한다. 이런 모든 활동은 다양성이며, 그 다양성은 학생의 ‘진로’와 연결되어야한다. 진로와 연결되지 않고, 나열식 활동을 했다면 그 다양성은 집중도가 떨어지고, ‘하나의 그림’이 되기가 어렵다. 학생의 진로가 가장 중요하고, 학생 스스로 학교활동에 자신의 꿈을 중심으로 활동에 의미를 둬야한다. 그것이 생기부를 풍성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 자료제공 : 서울대학입시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