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전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진로상담 품앗이는 진로교사들의 “밑으로부터의 자발적 교사혁신 운동(T.V.M.B.)”이다. 어제도 수원의 모 고등학교의 진로상담 품앗이에 다녀왔다. 상담을 할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 아마도 수요자와 공급자의 만족도가 매우 높은 행사인 것 같다. 필자의 학교는 지난 11월 중순, 120명의 학생과 87명의 학부모님을 모시고 “부모와 함께 받는 진로상담”인 품앗이 상담을 진행했다. 그 행사에 대한 만족도는 학부모 98.7%, 학생 92.9%로서 매우 높은 만족도를 나타냈다. 여기에 오차를 감안하더라도 대단히 높은 수치이다. 그 동안 막연했던 진로에 대해 방향을 잡고 이에 따른 학습코칭 받은 후 기쁜 표정으로 돌아가는 학부모님의 표정을 보는 것도 교사로서 큰 보람이었다.
어떻게 학생과 학부모님들의 만족도가 이렇게 높은 상담이 가능할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다양한 입시전형 때문이라고 본다. 과거에는 성적위주의 대입제도였기 때문에 점수를 끌어 올리라는 상담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수시와 정시모집 그리고 수시모집 중에서도 내신 성적이 좋은 학생들만 선발하는 학업성적우수자 전형, 논술과 면접 능력이 탁월한 학생들을 선발하는 일반전형, 다양한 소질과 적성을 가진 학생을 선발하는 입학사정관제 전형, 그리고 기타 적성 및 외국어 특기자 등의 전형이 있다. 정시모집에서는 수능성적이 매우 중요한 전형요소이다. 다시 말해, 대입에 관한한 다양한 채널을 통해 학생들의 진로를 지도해 줄 수가 있기 때문에 학생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상담이 가능한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입학사정관제는 가장 “교육평등을 실현하는 미래지향적 대입제도”라고 본다. 왜냐하면, 빈부귀천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열심히 준비하면 좋은 평가를 받고 대학에 진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교육이나 과외를 받지 않고도 자아정체감이 높거나 진로성숙도가 높아야 대학에 들어 갈 수 있는 제도이다. 입학사정관제가 사교육비를 조장한다는 일부 언론보도는 입학사정관제도를 잘못 이해한 결과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입학사정관제는 내가 누구이며(identity),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dream), 또 그것을 위해 어떤 활동(activity)을 해 왔는지를 보는 제도이며, 학생들의 자기주도적인 노력이 없으면 도저히 대학에 들어 갈 수 없는 제도이다. 누군가 학생의 역할을 대신해 주었을 경우, 객관성 검증을 하는 면접단계를 통과할 수 없다.
요즈음 소위 선망 대학에 지원한 학생들의 면접지도를 하고 있는데, 과거와 달라진 것은 학생들의 가정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을 면접해 보니 필자도 감동을 받을 만큼 자아정체감이 높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사망,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편부모 가정, 신체적인 지병을 앓고 있는 학생, 학교 폭력으로부터 탈출한 학생 등이 대부분이다. 이런 시련을 겪은 학생들은 잘만 정제되면 자아정체감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입학사정관제는 “나만의 스토리(identity)”가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즉 입학사정관을 감동시키는 것은 자아정체감을 가지고 나만의 진로를 가꾸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어려움이 크면 클수록, 그 역경을 극복했다는 이야기가 감동스럽다.
모의면접 중 필자의 코끝을 찡하게 했던 한 학생이 있었다. 오빠의 교통사고, 친구의 사망으로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에 빠졌고, 방황하다가 삶의 소중함을 깨달은 학생이었다. 이 학생의 삶의 모토는 “오늘은 어제 죽어간 자들이 간절히 바랐던 내일이다.”라고 했다. 오늘의 소중함을 깨닫고 하루 24시간을 정말 효과적으로 사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몸부림치며 학교생활을 충실히 해 온 결과, 3학년 때는 전 과목 1등급의 성과를 올렸고, K대의 입학사정관제 1단계에 합격을 했고, 2차 모의면접을 지도할 때 학생이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강한 집념을 보여 면접에 참여했던 친구교사와 필자는 매우 감동했다. 오늘의 소중함을 일찍 깨달은 이 학생은 틀림없이 대학입시결과와 상관없이 성공적인 인생을 살 것이란 확신이 든다.
이런 입학사정관 전형을 폄훼하는 일부 언론보도는 대책 없는 꼬집기에 불과하다. 상대평가 제도 하에서 모든 학생이 1등급을 받는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러나 자신의 소질과 적성에 따라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하는 것은 등급에 상관없이 가능하다. 입학사정관제에 지원하려면 내신 성적이 좋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그 말은 옳지 않은 이야기다. 성적은 사정관이 고려하는 일부요소일 뿐 점수로 학생을 선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적이 부족하면 다른 활동이나 스펙 부분에서 보완하면 된다. 스펙도 좋고 성적도 좋으면 좋겠지요.
또 학생과 학부님들도 입학사정관제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스펙을 외부에서 받은 상으로만 생각하고 있었고, 상을 받지 못했다면 입학사정관제에 지원할 수 없다고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정관이 보는 상의 의미는 그 분야에 전공적합도가 있다는 정도이지 상이 있어서 합격이고 없어서 불합격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1학년 때 6등급, 2학년 때 3등급, 3학년 때 1등급을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이 학생은 전체 성적은 3.3등급이다. 그래서 학업성적우수자 전형으로는 서울권 대학을 지원할 수 없다. 그러나 성적의 내용을 들여다보는 입학사정관제에서는 매우 감동적인 독특한 “나만의 스토리”에 해당된다. 지금 성적이 낮은 학생도 이런 변화의 추이를 일궈낼 수 있는 여지가 분명 있는 제도이다. 스펙으로는 비단 성적뿐만이 아니다.
희망과 역경극복의 여지가 있는 입시제도가 입학사정관제이기에 학생도 학부모도 만족해하는 상담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전의 입시상담과는 판이하게 다른 풍속도이다. 그런데 입학사정관제를 바라보는 일반인의 시선은 곱지 않다. 필자가 판단하기로 일반인은 이 제도에 익숙하지 않고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본다. 종류가 다양하고 복잡하다는 것이 이유이고 예전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제도라 우호적이지 않다. 그러나 알고 보면 나만의 스토리를 엮어낼 수 있는 자아정체감과 적당한 아이디어만 있으면 나만의 맞춤형 대입준비가 가능한 쉬운 제도이고, 알찬 고등학교 생활을 가능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제도이다. 즉 교사는 인간다운 학생을 위한 교육에 전념하면서, 학생의 특징을 고려한 상담과 지속적인 관심을 베풀면 된다.
진로상담 칼럼 초고 2012년 11월 30일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