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한문칼럼 / 장창훈]=친일파로 알려졌지만, 서정시로서 한국문단의 중심축을 이룬 서정주 시인의 ‘국화옆에서’는 한국정서의 밑바닥에 흐르는 고요의 감정이다.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한국인은 국화한송이를 들고 각자의 도시에서 침묵의 장례를 올렸고, 그 여론은 폭풍처럼 태풍처럼 꺼지지 않는 촛불이 되어 정권을 불태웠다. 광화문(光化門)이 광화문의 이름값을 한 듯 ‘촛불’(光)을 든 사람들의 촛불집회가 탄핵의 결과물로 꽃피웠다. 국화는 슬픔과 고독과 침묵과 성숙의 상징물이다.
‘국화옆에서’ 시(詩)에서 첫 문장은 ‘소쩍새’가 등장한다. 봄부터 울었던 그 소쩍새, 그것은 사람의 상징이다. 봄이 되면 희망과 애닯음과 기다림으로 노래한다. 여름에는 천둥이, 겨울이 오기 직전 ‘서리’가 내리면서 국화꽃은 피었다.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자연만물들이 모두 수고하고, 애닯게 각자의 노력을 하고 몸부림을 친다. 봄, 여름, 가을, 겨울까지 모두 국화꽃을 피우기 위한 눈물과 슬픔이다.
1년의 목표를 성취한다는 것은 봄은 소쩍새처럼, 여름은 천둥처럼, 가을에는 서리가 내리듯 간절함이 있어야한다. 그냥 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허송세월하는 것이다. 로또에 당첨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성도에게 천사가 꿈에 나타나 “그럼, 편의점에서 로또를 사면서 기도하세요”라고 조언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것을 원한다면, 간절히 바란다면, 그것을 해야한다. 호랑이도 토끼를 사냥하거나, 사슴을 사냥할 때는 들판으로 어슬렁 어슬렁(處) 나가야한다. 굴안에 있으면서 토끼와 사슴을 호출한다고 그들이 오겠는가? 쥐새끼도 도망갈 것이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소쩍새처럼 울어야한다. 천둥처럼 발버둥을 쳐야한다. 서리가 내리듯 지독한 고통을 감내해야한다. 그때 비로소 거울앞에 선 누님처럼 국화꽃이 피는 것이다.
국화를 비유하는 많은 단어가 있었겠지만, 쌀알로 비유한 것은 그 의미가 깊다. 쌀은 벼의 최종결과물이다. 벼는 농업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식물이다. 벼가 들어가면, 그것은 가장 가치있다는 의미가 전제된다. 지금은 흔한 밥이지만, 한자에서 밥은 흔한 것이 아니다. 가장 핵심이고, 중요하다는 뜻이 들어있다. 국화꽃이 그렇게 소중했던 존재로 여겨진다.
국(菊)은 매란국죽의 4군자에 포함된다. 菊은 풀(草)과 움킬 국(匊)의 합성이다. 匊은 손에 쌀알을 가득 담은 모습이다. 국화꽃을 보면 꼭 쌀알이 손안에 가득 담겨있는 모습이다. 그 모습을 연상해서 菊이 나온 것이다.
菊과 비슷한 글자로는 우선, 움킬 국(匊)이 있고, 氣 迷가 있다. 氣는 밥을 먹으니 기운이 난다는 뜻이고, 迷는 쌀알이 바닥에 쫘악 흩어져서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도록 길이 여러갈래로 갈라진 모양이다.
우리는 가끔, 혹은 어린 시절 자주, “장래희망”에 대해 듣는다. 장래희망을 물으면 그 질문을 피하기 위한 방패로서 적절한 직업을 선택해서 대답하곤 했다. 그 직업이 바로 ‘국화꽃’에 해당한다. 장래희망의 큰 목표는 1년의 작은 목표들의 합으로 이뤄진다. 1억원은 1천만원이 10개 합쳐져서 되는 것이다. 그처럼 인생의 목표는 연간 목표가 합쳐져서 된다. 1년의 목표는 분기별 목표로 나누는 것이 좋다. 분기별 목표는 4계절에 따라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목표가 정해지면, 그 목표에 맞게 내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분석해야한다. 그것이 바로 소쩍새와 천둥과 서리를 찾아내는 과정이다. 나에게 간절한 목표가 있는가? 나에게 활과 화살이 있다면, 겨냥하고 싶은 목적물이 있는가? 그것이 있다면, 사람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는 것이고, 살아있음의 확실한 증거이다. 심장이 뛴다는 것은 오늘의 희망이 해처럼 떠올랐다는 것이다.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