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드라마 칼럼 / 황금빛 내인생]=서지안의 바이러스인가? 자신이 옳다고 믿으면 그 믿음으로 독립을 선언하고, 마이 웨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 갑질하는 권력자들의 겁박과 협박이 어떠하든지 자신의 영역이 굳건하면 그러한 풍파에도 휩쓸리지 않는 것, 서지수는 자신이 서지안처럼 보여지는 것을 보고, 너무 놀래서 도망쳐버렸다. 쌍둥이로 살았다고 하여도 서로 다른 것인데, 똑같이 분장하고서 나타날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소스라치게 놀래 도망친 것이다. 가족의 희생양으로 자신이 살아갈 문을 열기가 두렵고 겁났던 것이다. 비서실장으로 근무하는 그 여자의 행위가 뭔가 이상하다. 분장을 과도하게 하면서 지수가 마치 겁을 먹도록 연출을 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작가의 의도는 아직 알 수가 없다. 복선이 깔리는 그 음흉한 미소, 뭔가 꺼림직하고면서 엄청난 음모가 뒤에 도사리고 있는 듯 하다. 회장은 완전히 체면이 구겨졌다. 도경은 급한 불을 꺼야겠다는 마음으로 급성장염으로 병원에 지수가 입원했다고 변명했으나, 오히려 할아버지 회장은 그것을 “뱀의 꼬리”를 만들었다고 호통친다. 가족 상견례를 하자고 하면 그때는 복막염에 걸렸다고 할 것이냐는 것, 차라리 오늘 잠깐 소개하고서 유학을 보내면 간단하게 해결할 것인데, 그것을 거부한 서지수에게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서지수는 본래 자기가 살았던 집으로 택시를 타고 갔으나, 곧 붙잡혀 들어왔고, 사지가 부들부들 떨리면서 한 마리 새가 비에 젖은 듯 떨었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서 부들부들….. 다음날, 출근을 하려고 하자, 지수 어머니는 겁박하면서 나가지 못하게 한다. 강압적으로 다루면 다뤄질 것으로 생각한 것인데, 오산이다. 지수는 더 마음의 문을 닫고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자식을 다루는 것이 반드시 엄하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최도경은 소라와 결혼을 아애 깨버린다. 다른 여자를 사랑하면서 소라와 결혼할 수는 없다는 것, 한편, 서지안은 평생 잃어버린 꿈을 다시 찾아서 조각가로서, 디자이너로서 살아가는 하루하루 삶이 너무 행복하다. 어떤 보여지는 삶, 보여지는 대기업의 스펙은 아니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이 너무 행복한 것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과거가 화려하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폐자전거를 수집해서 재활용하는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 지방대를 나와서 그럭저럭 밥벌이를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 등등, 지안이는 그런 사람들의 소신있는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이 얼마나 잘못된 방향으로 살았는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발버둥쳤던 것인지, 참회하는 마음으로 돌이킨다. 서럽게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에 연기자의 혼신의 힘이 발휘된다.
“당신 인생은 당신이 사는거야. 남들 보라고 사는게 아니야”
장소라는 서지안이 누군지 알아보려고 직접 가구점을 찾아서 함께 밥까지 먹는다. 서지안은 친밀감있게 접근하는 장소라가 누군지 모르니, 밥을 먹으면서 디자인까지 해서 보여준다. 그런데, 그녀가 장소라였다. 기분이 무척 상한다. 의도적 목적을 가지고 접근했으니, 장소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유하는 사람이 주인ㄴ이다”라고 하면서도 “마음은 갖고 싶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최도경의 마음을 잡지 못한 자신의 입장이다. 서지안이 최도경의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최도경의 마음은 최도경이 결정하는 것이다.
“디자인은 자기 취향으로 고객을 유혹해 제품을 사게 하는 것이죠”
장소라가 서지안이 묻는 ‘고객 취향’에 답한 내용이다. 자신은 서지안의 취향을 알고 싶은 것인데, 디자이너의 취향으로 고급스럽게 포장해서 돌려 말한 것이다. 그러나, 조명등에 이름을 새기는 것, 그때 이름을 말해주니, 서지안은 기분이 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이 말을 하지 않죠. 때론 행동이 더 많은 말을 할 때가 있죠. 오늘 여기에 오신 것은 괜히 하셨어요”
행동의 언어는 말보다 강력하다. 장소라가 서지안을 만나러 온 그 행동 자체가 이미 불안하다는 증거이고, 최도경의 마음을 붙잡지 못했다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서지안은 그것을 말한 것이다. 주문을 취소하고 싶은데, 고객의 요청이라고 하니 서지안은 담담히 모든 상황을 받아드리기로 결정한다.
서태수도 전세로 있는 보증금을 받아서 장남에게 돌려주고, 각자 모두 뿔뿔히 흩어져서 살기로 결정한다. “가장으로서 졸업”을 스스로 선포한 것이다. 평생 가장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가족을 위해 헌신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경멸과 무시밖에 없었다. 서지안은 서지안으로 살아가고, 장남도 그렇고, 이제 부인도 부인으로서 독립하고, 자신은 자신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 것이다. 가족의 따뜻함, 가족의 울타리가 더 이상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니, 서태수는 극약을 처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