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어제, 밤새 눈이 내려 수북히 쌓이더니, 그 눈길로 북한이 걸어서 내려왔다. 내가 걸어서 중랑천을 돌아 산책하듯, 장평교 다리를 건너듯, 그렇게 걸어서 내려오다니, 바로 옆동네에 살았던 북한이 왜 그렇게 멀리 있었을까? 걸어서 내려오는 그 짧은 최단거리가 70년이 넘도록, 넘어올 수 없는 투명의 벽에 갇혀, 중국으로 돌아 그들은 내려오고, 우리는 미국으로 돌아 그들과 대화를 해야했던 지난 세월, 북한과 남한은 ‘같은 한반도’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지붕 두가족보다 더 먼 ‘오월동주’의 이질적 민족이 되었을까?
북한 사투리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빨갱이’라는 주홍글씨로 인식해야했다. 그것도 세뇌다. 세뇌교육이 북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북한이 물론 우리의 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에 위치한 것은 아닐 것이다. 삼국시대로부터 고구려는 중국의 방패가 되어서 한민족을 보호했고, 신라는 일본의 방패가 되었고, 백제는 중국과 해상무역을 하면서 산둥반도까지 영토를 점령했다. 삼국이 서로 다르지만, 한반도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를 형성하면서 협력할 때는 고구려-신라, 백제-신라의 정치협력을 추구했었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북한과 남한은 다른 국가가 아니었다.
거리의 떨어짐은 ‘사상의 방향’때문일 것이다. 이념의 분쟁은 북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국과 한국도 이념적으로 서로 결이 다르고, 사상이 다르고, 추구하는 목적지도 다르다. 미국과 한국도 마찬가지다. 과연,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을 100% 지지한다고 선언했는데, 그 선언의 진정성과 의미는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전쟁은 당쟁(黨爭) 이상이다. 5.18광주민주화운동만 보더라도 군인이 민간인을 학살했으니, 그러한 전쟁은 동족상잔의 비극보다 더 잔인하다.
걸어서 내려올 수 있는 거리에 살았던 북한이 이제야 걸어서 내려오니, 2018년은 평화의 문이 비로소 열리는 ‘아름다운 봄’이 오려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