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 경희궁(고궁) 탐방
학생기자 : 소 명 희
취재장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 새문안로 45
취재날짜 : 2017. 12. 23 (토)
문화재 소개 : 금번 주말은 특별한 날이었다. 바쁜 일상속에서 무거워진 머리도 식힐겸 새로운 힐링 장소로 고궁을 찾았다.
찾아가고 싶은 고궁 중 하나로 경희궁으로 가게 되었다.
경희궁은 조선후기 궁궐로 광해군 9년(1617년)에 건립한 이후 10대에 걸쳐 임금이 정사를 보았던 궁궐로 원래 명칭은 경덕궁이었으나 원종의 시호와 겹쳐 영조(1760년)때 지금의 경희궁으로 변경되었다 한다. 도성의 서쪽에 있어 서궐이라고도 불리었으며, 인조이후 철종에 까지 많은 임금이 머무른 곳이다. 경희궁의 규모는 둘레는 6,600자였으며 흥화문, 흥원문, 개양문, 숭의문, 무덕문의 5개 문을 두었다.
숭정전은 신하들의 조회를 받던 곳이며 뒤쪽에는 자정전은 임금이 업무를 보던 곳이었다. 1908년에 일제의 일본인 중학교를 세우면서 조선왕조의 5대 궁 중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다. 1988년부터 복원 작업을 시작하여 2002년 자정전과 숭정전, 숭정문 등을 복원하는 1차 복원 공사를 마치고 시민들에게 공개되었다.
경희궁은 서울시에 있는 5대 궁궐 중에서 서쪽에 자리하여 서궐로도 불렀으며, 새문안 대궐, 새문동 대궐, 아주개 대궐이라고도 하였다. 경희궁은 경복궁, 창경궁과 함께 조선왕조의 3대궁으로 꼽힐 만큼 큰 궁궐이었으며 본래는 100여 동이 넘는 전각들이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심하게 훼손되어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정문이었던 흥화문과 정전이었던 숭정전, 그리고 후원의 정자였던 황학정까지 세 채에 불과하다. 경희궁은 순조 29년(1829년) 10월 화재로 인하여 전각 대부분이 소실된 것을 1831년에 중건하였다. 경희궁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일제에서 가장 많이 파괴된 궁이며 민족의 항일 정신과 독립운동가들이 탄압 받았던 현장을 돌아보며, 슬픈 역사를 마주하는 코스로 경희궁 방문은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내가 선정한 보물 : 흥화문
유형문화재 19호로 지정되어있는 흥화문은 조선시대 광해군 8년(1616년)에 세운 경덕궁(현재 경희궁)의 정문이다. 1910년 일제가 경성중학교를 세우기 위해 경희궁의 전각들을 헐고, 몇몇 건물들을 매각하고 이전하면서 흥화문도 1915년 남쪽 담장으로 옮겨졌다가 1932년 장충동 박문사로 옮겨져 정문으로 사용되었다. 그 후 박문사에 영빈관이 들어서고 신라호텔이 서면서 호텔 정문으로 사용 되다가 1988년 경희궁의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경희궁의 정문이었던 흥화문은 원래 궁궐의 동남쪽 모퉁이, 지금의 구세군 회관 빌딩 자리에 동향하여 서 있다가 1915년 도로공사로 남쪽으로 이전 되었으나, 현재 복원된 흥화문은 원래의 위치와 향이 다르게 남향으로 되었다. 원래 경희궁에는 동문인 흥화문 외에 흥화문 왼쪽에 흥원문(興元門), 오른쪽에 개양문(開陽門), 서쪽에 숭의문(崇義門), 북쪽에 무덕문(武德門)이 있었다.
흥화문의 초석과 기둥은 원형이며, 가운데 기둥 열 3칸에는 문짝을 달았다. 문틀 위에는 홍살을 달았고, 기둥 위에는 창방과 평방을 두었다. 천장은 가운데 칸은 연등천장, 좌우 협간은 우물천정으로 되어 있다. 지붕마루에는 취두·용두·잡상 등이 장식되어 있다.
문화재 찾아가는 방법 :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45번지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