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신앙칼럼 / 장창훈]=여호수아 1장은 사실 아주 슬픈 비극이며, 새로운 희극으로 출발이다. 40년, 이집트를 탈출한지 40년동안 신광야를 떠돌았던 이스라엘 민족, 약속이 40년이나 연장되었다. 얼마나 지리한 삶이었을까? 이집트 탈출의 대역사를 이룬 기성세대가 모두 죽고, 모세까지 죽자, 하나님은 유일한 두 생존자 중 1명인 여호수아에게 나타났다. 여호수아도 나이가 많이 들 수 밖에 없었고, 이집트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서 가나안 약속을 이루기 위한 여호수아의 어깨는 무겁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모세의 비서실장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故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듯이 그러했다. 사람들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노무현 정신이 있다고 한다. 친서민 정책과 통일노선 등등이다. 그와 같이, 여호수아에게는 모세와 동일한 절대신앙관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 주의였다. 신앙은 정치와 다르다. 이스라엘 백성이 정치제도로 움직였다면, 어찌 대제국 바로의 손아귀에서 탈출하고, 이주민으로서 가나안 토착민족을 물리칠 수 있었을까? 감옥에서 탈출도 어렵고, 이미 차지한 성을 점령하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 이스라엘 민족은 2가지를 모두 이뤄냈다. 물론, 탈출역사는 모세를 통해, 정복역사는 여호수아를 통해 해냈다.
여호수아 1장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모세가 죽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했던 말씀의 약속이다. 모세의 시종으로서 충성을 다했으니, 여호수아에게 함께 하겠다는 것이 절대 아니다. 세상 정치제도라면 그러할 수 있다. 정치권력은 권력자가 결정권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다. 태종 이방원이 그러했다. 죽는 날까지 신하들의 마음을 떠볼려고 권력을 이양하지 않으면서 넘겨줄 것처럼 쇼를 했던 것으로 유명한 태종 이방원, 세종대왕은 자신의 아버지에게 충성을 다함으로 권력을 무사히 넘겨받았다. 권력을 쥔 자는 태종이니, 태종에게 순복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하나님의 세계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종교세계는 그 근본이 하나님에게 있다. 하나님은 2가지를 말씀하신다. 하나는 율법을 날마다 묵상하는 것, 둘째는 그 율법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 두가지를 멀리하면 사람은 하나님과 멀어질 수 밖에 없다. 만약 하나님과 멀어지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 경계하면서 더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한다. 직업에 귀천은 없겠지만, 사람에게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그러한 직업, 경찰이나 검찰이나 사채업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살 확률이 매우 높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그 위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면서 달팽이가 서서히 기어가듯, 각자의 속도로서 하나님을 향해 더듬이를 세운다면 구원의 길은 열릴 것이다. 여호수아도 알고보면 이성계처럼 군인으로서 전쟁을 통해 그 시대 구원의 역사를 이룬 신앙인이었다. 누구가 자신의 직업에서 하나님을 붙들고 최선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사람들은 기도한다. 복을 달라고, 형통하게 해달라고, 모든 일이 잘되게 해달라고, 하나님은 이미 말씀하셨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라고, 성경은 인류에게 선물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서이다. 성공한 사람들, 실패한 사람들, 시대를 통해서 살아간 다양한 인물들의 실상이 종류별로 펼쳐진다. 물론, 소설책이나 역사책에도 그러한 내용이 나오지만, 성경에는 하나님과 함께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읽으면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삶의 미래가 보인다.
특히, 말씀을 읽으면서 그 말씀을 생활속에서 실제로 실천하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천하지 않는다면 무익하다. 실천해야 그 효력을 발휘한다. 가령, 맛있는 밥이 있다고 하자. 그 밥이 밥상위에 있는데, 숟갈로 떠서 입속에 넣어야 밥의 효력이 발휘된다. 그처럼 말씀은 실제로 실천해야만 자신의 것이 된다. 말씀을 듣는 것은 밥을 보는 것과 같다. 밥은 보는 것으로 절대 배부르지 않는다. 밥은 먹어야 배가 부르다.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면 밥값을 지불해야하고, 집에서 밥을 먹으려면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해야하듯이 말씀을 실천하는데는 그만큼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다. 말씀이 그저 자신의 것이 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구하는 최저인금 1만원이 실제로 실현된다고 해도, 1시간의 수고를 해야만 1만원이 생기는 것이다. 지하철 입구에서 동냥하는 거지도 손을 위로 올리는 고생을 해야만, 누군가 마음이 열려서 돈을 나눠주는 법이다. 어디에도 공짜는 없다.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이랴. 하나님의 형통을 얻으려면 하나님의 법을 실천해야한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함으로 그의 보호를 받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