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오늘 방금 메일 한통을 받았다. 내 기억속에 아득한 친구 녀석이다. 잊고 있었던 친구이지만 연락을 받으니 얼굴이 가만히 떠오른다. 수평선에서 배가 떠오르듯 서서히 떠오르는 얼굴이었다. 멕시코에 산다면서, 변호사로 공인회계사로 살고 있다는 명함과 함께 보내온 짧은 반가운 뉴스였다.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하는 우주여행을 하는 동안에 아직 살아있으니 꿈틀꿈틀 달팽이처럼 각자의 영역을 보존하면서 살아 있으니 언어로 이렇게 주고 받는가보다. 인터넷의 발달은 이렇게 서로의 존재세계를 연결하고, 또한 각자의 기억을 새롭게 터치하고 그러면서 일어나는 아름다운 파문(波紋)은 그 어떤 음식의 맛과 비교할 수 없는 오묘함을 창조한다. 밥맛과 전혀 다른 느낌이다.
나는 국민대학교 91학번, 49회로 졸업했다. 기계설계학과, 지금은 자동차공학부이다. 김찬묵 교수님도 생각나고, 나머지 교수님의 이름은 가물가물하다. 어렵게 서울생활에 적응하느라 학교에 혼자 있던 시간이 많았는데 어느날 학교 운동장에서 해병대 전우회가 족구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해병대에 조기 입대한 후 혼자 개척하고, 사는 때까지 자립하며 사는 정신을 함양하고, 제대후에도 소신껏 살아왔던 것 같다. 국민대학교의 지금은 건물도 많고 구석구석 현대화되었으나 내가 다니던 시절에는 건물이 마치 호텔처럼 2호관이 있고 조형대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고…. 나의 공대는 기계적으로 있었다.내 친구가 보내온 소식 하나가 나의 오랜 기억들을 동시에 느끼고 떠오르면서 추억의 호수가 잔잔히 일어난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추억의 아이콘이던가.

교육강사 장창훈
부재(不在)는 그리움과 간절함으로 연결된다. 성경에서 베드로가 자신의 스승을 눈앞에서 잃고 피비린내나는 정치의 예루살렘을 목격한 후, 부활의 예수님을 만났으나 고향으로 낙향한 사건이 나온다. 디베랴 호수 사건이다. 베드로가 고기 잡으러 간다고 하니 친구들이 모두 같이 내려갔다. 예수님의 수제자들은 사실 갈릴리에 함께 다녔던 친구와 선후배들로 구성된 동아리 개념이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등등 모두 고향 갈릴리로 내려가니, 예수님은 부활후에 상당히 난감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베드로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이 옆에 없으니, 가끔 나타나시는 예수님이 느껴지지 않으니 예수님을 만났던 그리운 곳, 디베랴 호수로 내려갔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고향을 찾고, 그 고향에는 추억과 아픔과 사랑과 고마움이 모두 들어있다. 태어난 곳, 살았던 곳, 소중했던 곳, 모든 장소와 사람은 그렇게 다양한 고향으로 존재한다. 베드로가 디베랴 호수에서 그물질할 때, 요한이 “예수님이 나타나셨다”고 하니, 베드로가 모든 일을 제쳐두고 달려갔다는 장면이 나온다. 무척 그리웠던 것이다. 마치 그대를 만나러 갑니다. 그 영화처럼. 일본 원작이며 일본에서 영화로 개봉했고, 이번에 다시 손예진과 소지섭이 열연하는 한국영화 ‘그대를 만나러 갑니다’ 영화처럼 많이 그리웠던 것이다. 부재(不在)는 늘 소유권의 상실만큼 그리움으로 연결된다.
비가 온다. 잔잔히 빗물이 내 마음에도 떨어진다. 아득했던 많은 일들과 잊고 있었던 나의 대학시절, 컵차기 하면서 족구하면서 높은 곳에서 계란 깨지지 않게 떨어뜨리기 시합도 하면서, 야구도 하면서…… 참 열심히 살아냈던 그 시절이었다. 고마운 시간이었다. 지금 살아있으니 또한 모든 과거가 소중한 시간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 비가 내리는 지금의 시간을 비의 느낌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 모두 얼마나 행복한 일이던가. 새벽의 창문을 열고서 오늘도 희망찬 하루를 시작해본다.
반갑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