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신앙칼럼 / 장창훈]=말씀을 듣고 집으로 가는 길은 흐믓하다. 말씀의 배가 충만하고, 같은 구역 집사님이 내게 건강식품을 선물로 줘서 또한 기쁘고, 성도들이 모두 말씀으로 은혜가 넘쳐서 행복하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초기기독교 공동체처럼 살아 숨쉬는 생동감과 생명력이 있다. 창세기에서 땅과 바다를 만든후, 생명의 창조사역이 펼쳐지면서 땅과 바다는 살아서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동물창조 이후 사람을 만들면서 ‘의미의 창조역사’로 모든 만물은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고 새롭게 탄생하게 되었다. 살아있다는 것은 말씀을 지키면서 진리와 더불어 진리를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소속된 교회는 진리에 철저하고, 진리를 지킴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약속을 받았던 아담이 그 약속의 축복을 받지 못한 것은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이다. 말씀을 지킴이 곧 축복의 절대적 조건이다. 수학적 용어로 말하면 조건명제인 것이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약속의 자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에서 에서는 약속의 자손이 되지 못하였다. 그 행실이 부모와 하나님의 눈에서 벗어나서 그렇다. 에서는 이삭의 재산을 상속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은 상속받지 못하고 늘상 근심거리였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사람이 이와 같다. 결국 말씀을 얼마나 지키고, 그 말씀을 준행하느냐가 인생의 현실을 좌우한다. 이런 측면 내가 다니는 교회는 최적의 말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총회장 목사님의 신앙철학도 ‘말씀중심’이라서 성도들의 신앙심이 견실하고 독실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다니는 교회가 좋다.
나는 순천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명문고등학교다. 3학년 7반 동기생들은 날마다 요즘 모인다. 학창 시절이 그리워 모이면 그때를 추억하지만, 고교의 순수함은 사라진지 오래다. 세상의 음주문화를 비판하고 싶지는 앉지만, 술은 취함으로 다른 추악함을 생산하므로 나는 반대한다. 담배도 동일하다. 함께 창문을 보며 공부했던 동창들은 대부분 늙은 중년을 보내고 있다. 반면, 내가 다니는 교회의 성도들은 참으로 견실한 사고관을 가지고 있으며, 성서에서 말하는 금욕주의를 선언함으로 향락주의와 쾌락주의를 배격하고, 생활속에서 성실한 삶의 표준을 지켜 행하기 위해서 참으로 아름답게 살아간다. 말보다 실천을 앞세우면서 생활속에서 가족 공동체가 말씀중심으로 부활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내가 다니는 교회의 탁월한 점 3가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우선 때에 맞는 말씀이다. 배고플 때 밥먹는 것, 잠올 때 자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 때를 벗어나면 드라마조차 재방송이나 다운로드를 받아서 봐야한다. 본방 사수로 드라마를 보는 것과 재방송은 시청하는 맛이 다르다. 국가 정책도 과거의 것은 폐기되고 지금 실시되는 정책이 실제로 적용된다. 법률도 개정법률이 판결문에 반영된다. 그 무엇이든 살아있어야 그 효력이 있다. 개도 살아있으면 주인이 개밥을 챙겨준다. 살아있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역사요, 기록이므로 과거다. 과거는 곧 죽은 시간이다. 성경은 누가 뭐라고 해도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으로 남겨져 죽은 것이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여주인공 손예진이 아무리 살아있다고 해도 실제는 죽은 것이고, 사진도 VDO도 죽은 것이다. 과거는 곧 죽음이다. 성경의 기록은 과거를 담고 있어서 갇힌 것이다. 갇힌 성경의 기록이 재해석됨으로 지금 살아있는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 그것을 일컬어 성경은 ‘인봉의 해제’라고 한다. 역사는 역사해석으로 현실에 다시 살아 숨쉬듯 성경의 인봉해제는 말씀이 현실에 존재하게 한다. 꿈도 해몽이 중요하듯이 성경도 인봉의 해석으로 성도들이 하나님을 깨달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성경을 보는 관점의 눈을 뜨게 하는 성경 프로그램이 있으며, 총회장 목사님부터 신실한 기도생활과 말씀 실천의 삶을 살기 때문에 말씀이 지금 현재 살아있다. 성경은 과거의 기록이지만, 그 성경을 읽고 설교단상에서 전하는 말씀이 현재 지금에 해당되게 재해석되어서 선포됨으로 살아있는 말씀이 된 것이다.
둘째 소통이다. 총회장 목사님과 교역자들의 소통, 각 성도들이 성도들과 소통, 교역자들의 합동교역 등이 성도들의 귀감이 된다. 소통(疏通)은 트여서 통한다는 뜻이다. 소통의 본질은 ‘진리와 하나님’에 있다. 이사야는 소통과 관련해 이사야 11장에서 이상세계를 예언했다. 이상세계는 동물처럼 약육강식의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사회가 화목한 세계로 달라진다는 묵시이며, 계시이다. 법률체계로는 UN을 예언한 것이고, 신앙체계로는 말씀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의 화목을 말한다. 핸드폰이 핸드폰과 통하려면 전파 기지국이 있어야한다. 핸드폰이 아무리 가깝게 있다고 해도 서로 통하지 못한다. 오직 전파국이 있어야만 그것을 통해 통하는 것이다. 중간의 매체역할, 연결자 역할이 바로 ‘진리의 말씀’이다. 사람이 아무리 사람과 통하려고 해도 진리의 길이 없다면 통할 수 없는 것이다. 단군왕검때부터 한반도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이념을 내세우면서 사람의 관계를 매우 소중히 여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관계는 여전히 통하지 않는다. 통함의 근본은 말에 있지 않고 말씀에 있기 때문이다. 그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진리이며, 성경에서 말하는 창조주과 인간의 소통체계이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말씀중심 조직을 운영함으로 성도와 성도가 말씀으로 소통하는 사랑과 화목이 넘친다.
마지막으로 엄격함이다. 조금 느슨할 수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사랑은 느슨함에 있지 않고 긴장감에서 샘솟는다. 모든 사랑의 근원은 말씀을 실천함에서 비롯된다. 성경에서 예수님도 “나를 사랑하면 나의 말을 지키라”고 말하고 있다. 신명기 28장에서도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에게 양면성의 축복을 주면서 “말씀을 지키면 2가지 축복을 받고, 말씀을 어기면 2가지 저주의 재앙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고 경고했다. 잘하면 잘되고, 못하면 못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며, 저주이다. 교회가 말씀에 굳건히 서야만 진리로서 세상을 다스리고 성도들의 정신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바꾸니 그것을 기적이라고 했다. 최초의 가나안 결혼식 기적이다.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기적인가?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맹물같은 인생이 하나님의 신본주의로 바꾸면 그것은 기적의 기적인 것이다. 물을 포도주로 바꾼다는 것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기적이고, 예수님의 근본적 기적은 베드로를 사도로 택해 인생을 변화시킨 것이다. 먹을 것을 위해서 살던 한 청년이 하나님의 생명역사를 위해서 살게 되었으니 그것이 기적인 것이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교육할 때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너는 닭울기 전에 3번 나를 부인할 것이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다”라고 매우 매몰차게 대했다. 엄격함이 곧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말씀의 실천을 매우 엄격하게 규율하면서 성도가 진리위에 굳건히 서도록 항상 권면한다. 그 덕분에 청년들의 가치관이 상당히 건절하고 보기에 신실하다. 그 어디서 내가 다니는 교회를 만날 수 있으랴. 말씀을 듣고 집에 오는 길에 기록으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