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나는 1994년 신문배달원을 했었다. 세검정 지국에서, 한국일보를 배달했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도 함께 배달했다. 근면한 배달의 기수로서 세검정 지역을 책임졌다. 신문배달이 끝나면, 아파트에서 세차까지 했었다. 해병대를 전역하고 첫 사회생활을 하던 시기여서 밤이 두렵지 않았다. 매월 150만원 정도 수입을 벌었고, 지금으로 환산하면 400만원을 훌쩍 넘는 금액이다. 대학생이 그 정도 금액을 만질 수 있다는 것은 흔치 않았다. 그러나, 그때 나는 술과 담배를 했었다.
1992년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길 간절히 기도하고 간구함으로 해병대에 입대한 것인데, 독립정신은 강해졌는데 하나님과 상관없이 스스로 강해져서 물불 가리지 않고 사는 사람이 되었다. 신(神)을 믿지만 나와 약간 멀어진 상태였고, 군대에서 배운 몹쓸 습관은 전역하고도 그대로 따라왔다. 군대의 습관은 제대하고 그대로 유지된다는 사실은 사람의 운명이 살아서 미래까지 결정된다는 교훈을 말해주었다. 아무리 고치려고 해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 나의 애로사항이었고, 고등학교 때 그 순수한 첫사랑을 회복하려고 새벽의 먼 동을 바라보면서 홀로 기도했었다.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9년 나는 눈물을 머금고 모든 재산이 탕진한 상태에서 나의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누추하고, 보잘 것 없으며, 벌거벗었는지, 죄인이었는지, 강하다고 믿은 내가 얼마나 약한지, 눈물로 참회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었다.
나는 1989년 고등학교 2학년때 신앙생활을 시작했다가 해병대에 입대하면서 신앙이 바닥 아래로 떨어졌고, 제대하고서 그 생활이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가 1999년 극적으로 하나님께 돌이켰다. 사도바울이 다멕섹에서 극적으로 돌이킨 것으로 비유할 수 있겠다. 베드로가 인생의 낙을 찾지 못한 채 갈릴리 호수에서 그물질하다가 예수님을 만나면서 극적으로 돌이킨 것과 같을 것이다. 아무리 배달을 해도 남는 것은 거의 없었다. 직업을 전환한 것이 겨우 우유배달원이었다. 왜 나는 배달만 하다가 이렇게 청춘이 흘러가는 것인가? 당시 나의 곤고함이었다.
회한(悔恨)에 사무치는 내 인생앞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슬픔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두드렸다. 대둔산에서 산기도를 했던 적도 있다. 기도를 하고 내려오는 길에는 늘 담배를 피워야만 했다. 국민대학교를 졸업하고도 학교를 떠나지 못했던 당시 IMF 시절에 뒷동산에 올라가서 날마다 하나님의 마음을 두드렸다. 나아만 장군에게 문둥병이 있듯이 나의 고칠 수 없는 몹쓸 습관병을 고쳐달라고, 경제적 여건을 풀어달라고, 사회적으로 명예를 얻게 해달라고 간절히 눈물을 뿌렸다. 나의 학과 친구들도 내가 산에서 날마다 내려오니, ‘산에서 사는 사람’이라거나 ‘기인’(奇人)이라고 했으나, 기인(飢人)이었다.
1999년 청년부의 전도사님이 내게 다시 손을 내밀고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게 하므로 나는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새로운 삶을 부여받았다. 왜 내가 담배를 피우게 된 것인지, 왜 내가 술을 즐기게 된 것인지, 왜 내가 기도를 하지 못하게 된 것인지, 왜 내가 하나님과 멀어지게 된 것인지, 내가 추락하게 된 그 마음의 위치가 어디인지, 그 모든 근본 문제가 무엇인지 물이 흐르듯 내게 알려주므로, 내가 느끼고 깨닫고 시인하게 하므로 나는 지독한 죄의 감옥에서 나오게 해달라고 몸부림을 쳤었고, 이후 비로소 하나님께로 점점점 가까이 나가게 되었다.
만약, 그때 내가 돌이키지 않았다면 중년의 지금 나는 여전히 신문배달을 하거나 그럭저럭 중년의 가정을 이루면서 허름하게 살고 있었을 것이다. 술중독자로서 아마도 생을 일찍 마감했을 수도 있겠다.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지, 나의 과거를 생각나게 하는 어떤 어이없는 블로그의 내 이름 석자의 기록을 볼 때면, 지금의 내 모습의 가치가 다시 생각나게 된다. 내가 본래 이러하지 않았음을, 내가 본래 죄인이었고, 내가 본래 신문배달원이었고, 내가 얼마나 추악했고, 거지였고, 하나님과 등을 졌었는지를 나는 망각하지 않는다. 망각하면, 어느새 지금의 모습의 귀함까지 잃게 되므로…..
베드로는 고기 잡는 어부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직업이 바뀌었다. 누구를 만나느냐로 운명이 달라진다. 초대교황으로 베드로가 죽은 곳에 교황청이 들어섰다는 전설은 예수님의 위대함을 입증한다. 베드로보다 베드로에게 하나님을 교육하고 살게 해준 예수님의 위대함을 말로 어찌 모두 설명하랴.
유럽문명의 운명을 가른 고대사의 중요한 사건중 하나가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이다. 헬레니즘 문명으로 알려진 당시 사건은 이후 로마시대의 서막이 펼쳐지는 시작점이었고, 클레오파트라 여왕의 아름다운 사연도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정복과 연결되어 파생된다. 알렉산더 대왕은 2년동안 아리스토텔레스의 과외를 받았다. 소크라테스를 소크라테스로 만든 플라톤, 플라톤의 수제자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엘리트 교육을 받은 알렉산더는 자신의 부친이 암살을 당한 상황에서도 정국을 조기에 수습하고 유럽과 동방의 인도까지 점령하는 위대한 사역을 펼쳤다. 누구를 만나느냐가 이렇게 운명을 달라지게 한다.
나는 1989년 기독교복음선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만났고, 1999년 다시 한번의 기회를 붙잡고 하나님을 만났다. 모두 말씀을 통해서 나를 변혁시키는 기회였다. 뉴튼과 아인슈타인의 계보를 이은 故 호킹 박사가 우주의 시작이 있었다면 끝도 있다고 말했듯, 그 우주를 창조하기로 계획한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사람으로서 반드시 가져야할 절대적 사건이다.
하나님을 만나면 둘 중 하나다. 축복을 받거나, 심판을 받거나.
나는 다시 찾아온 기회를 붙잡고서 나의 고집스런 뿔을 꺽고 하나님께 순복하므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고, 신문배달원에서 신문기자로서, 언론사 대표로서, 3000권의 책을 집필한 작가로서, 국제문화교류봉사협회 부회장으로서, 교육성경 번역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누구나 기회는 있다. 기회의 문에 들어가면 새로운 삶을 얻고, 기회의 문을 발로 차면 영원히 막다른 벽에 부딪혀 인생이 끝난다. 기회의 문에 들어간다는 것은 얄팍한 기회를 붙잡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몹쓸 습관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복하면서 한땀 한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좁은문’이다. 오늘도, 나는 나의 하나님께로 어제보다 가깝게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