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빠릇빠릇 교회 성전 바닥청소를 했다. 깨끗함은 더러움을 가져간다. 밀대를 깨끗한 물에 정결케 해서 있는 힘껏 밀었다. 때밀 듯 힘을 주고, 부드러운 살결을 만지듯 힘을 조절했다. 장의자마다 바닥은 먼지가 있었고, 앞서 성도들은 각자의 역할을 전문적으로 맡아서 꿀벌들처럼 일했다. 누가 어떤 지시를 하지 않아도 로봇 청소기가 청소하듯이 교회청소는 일사분란했다. 제법 숙련공(熟練工)이 되어서일 것이다. 한 사람이 했다면 1주일 내도록 품을 팔아도 청소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여럿이 함께 힘을 합하니 향약(鄕約)처럼 일은 금새 속도가 붙었다. 여자 성도들은 작은 손걸레를 가지고 장의자 위를 닦았고, 남자 성도들은 무거운 진공 청소기를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성전 바닥 구석의 먼지를 제거했다. 나는 맨 끝 마무리하는 밀대 청소부, 쓱쓱쓱 장의자를 그대로 두고서 밀대가 쑥쑥쑥 들어가서 말끔하게 해냈다. 모든 문제는 해결하는 것이 핵심이다. 정치인들은 문제와 사건을 만나면 해결보다는 ‘구호’로 끝나고, 문제를 더 엉키게 만든다. 청소는 정치인들처럼 하면 안된다. 오직 먼지를 제거하는 것, 그것이 관건이다. 쉽고 편하게 교회가 맑아졌다. 복도도 누군가 청소를 하고 있었고, 창문틀도 깨끗한 것을 보면 누군가 청소를 마치고 다녀간 것이다. 깨끗한 흔적은 청소의 결과이다. 하물며 인생이랴. 마음의 거울이 맑아진 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깨끗해진 것이리라. 봄(春)만 와도 자연 만물이 소생하는데, 하물며 국제사회가 점점점 따뜻해지는 것은 성령의 봄(春)이 왔음을 예고하는 표시가 아니겠는가? 나는 오늘 교회청소에 동참했다. 집안청소하듯, 마음청소하듯, 내 손과 몸이 그리스도의 몸된 성전청소에 함께 했다는 것, 뿌뜻하다. 깨끗해진 것은 교회인데, 왜 이렇게 내 마음도 뿌뜻한 것일까? 청소하는 내도록 누군가 내 마음바닥도 청소를 한 것일까? 소리없이 나를 청소함으로 성결케 하시는 그 분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봄의 꽃향기, 벚꽃여왕이다.
벚꽃 활짝 핀 거리를 지나 까페에서 글을 남긴다.
2018.4.7.오후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