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드라마 비평 / 장창훈]=인생은 각 직업에 따라 해석방법이 다르다. 나의 아저씨는 구조기술사의 입장에서 인생이 재해석된다. 힘의 역학관계, 그것은 내력과 외력의 싸움이다. 건물의 안전도는 항상 3~4, 혹은 10 이상으로 높게 책정되어야한다. 생각할 수 없는 변수가 항상 외부에 작용하므로, 과거 삼풍백화점은 옥상에 올린 물건 때문에 무너져 내렸다. 안전도를 낮게 설정해서 건물을 지은 것이다. 박동훈 부장이 이지안에게 자신의 직업을 담담히 설명하면서, 중년의 아저씨들이 견딜 수 없는 고통과 고뇌와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버티는 배경을 말한다. 바로 내력(內力)이다. 내력이 강하면 외력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내력이 세면 어떤 외력도 이겨.”
“인생의 내력이 뭔데요?”
이지안의 당돌한 질문, 인생의 내력이 무엇이냐는 본질적 질문, 그것에 박동훈 부장은 대답하지 못한다. 그 내력이 뭔지 알려면 종교적 차원에서 접근해야한다. 지식이나 경험과는 많이 다르다. 부모에게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은 내력이 강할 수 밖에 없다. 내력은 잠재력과 비슷하고, 자존감과도 일맥 상통한다. 자신이 자신을 믿는 그 능력이 바로 내력이다. 외력은 외부에서 밀려오는 각종의 사건들이다.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 나를 지탱하는 기둥들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
박동훈 부장의 이 담담한 고뇌앞에 그 어떤 중년들이 공감하지 않을 수 있으랴. 물론, 이 드라마는 40대와 20대를 서로 마음의 공감으로 섞이게 한다는 논란에 부딪혔다. 설정 자체가 너무 어울리지 않지만, 이지안의 인물은 인생 자체가 평범하지 않다. 할머니를 봉양하기 위해서, 빚을 탕감하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내는 하루하루 버팀의 바둥거림, 월급과 알바를 해서 빚을 갚는데 모두 지불하면 남는 것은 겨우 생활비다. 그런데도 빚쟁이 친구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이지안을 졸졸졸 쫓아다닌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의 장난이다. 돈 때문에 얽혀버린 쇠사슬을 끊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이지안은 간절하지만 탈출할 수가 없다. 그런 상황에 만난 박동훈 부장의 담담한 인생이야기, 그것은 내력이다. 이지안에게는 그런 내력이 있었다. 아니, 박동훈 부장이 볼 때 내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건물도 튼튼해야 사람이 평안하게 살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떤 부부도 튼튼해야한다. 내력이 강해야, 외력을 이길 수 있다. 외력은 발생할 수 있는 모든 환경의 위험과 변수이다. 박동훈 부장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발버둥쳤으나, 아내를 잃어버리는 참담한 붕괴를 스스로 겪어야 했다. 다행시 붕괴직전에 사태를 파악해서 무너지지 않는 방향으로 건물을 보수할 수 있을지, 그것을 고뇌하면서 수습하는 중이다. 중년의 모든 가정들이 심각하게 고민해야볼 대목이 아닐까싶다. 인생은 과연 왜 사는가? 인생의 내력은 무엇인가? 자신을 버티게 하는 그 기둥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면…. 어찌 해야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