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免墻 面墻 面長
[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오늘의 말씀 핵심은 ‘배움’이다. 배움을 알려주는 격언으로 ‘알아야 면장한다’는 말이 있다. 면장(免墻)은 담을 넘는다는 뜻이다. 공자의 양화(陽貨)편에 나오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양화陽貨<10>
子謂伯魚曰, 女爲周南召南矣乎?
人而不爲周南召南,其猶正牆面而立也與?
공자가 백어에게 말하길, 너는 주남과 소남을 아느냐?
사람이 주남과 소의도 모르면, 그것은 담장을 마주 보는 것과 같다.
면장(面長)은 행정구역 면(面)의 장이다. 장관(長官) 이장(里長) 반장(班長) 동장(洞長) 등에 쓰이는 장(長)은 우두머리로서 ‘장자’(長子)를 말한다. 면장의 동음이의어 현상 때문에, ‘알아야 면장한다’고 하면, 면장처럼 높은 직위에 오를 수 있다고 인식한다. 이러한 해석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한자의 본질을 아는 것은 아니다. 근본은 알아야 담장을 면할 수 있다는 의미다. 모르면, 벽에 갇힌 것이고, 알면 벽을 넘어서 문이 열리는 것이다. 알면 면장(免墻)이고, 모르면 면장(面墻)이다. 양화편에서도 墻面이라고 사용되었다. 담을 얼굴로 보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무지(無知)는 막힘이고, 막다른 골목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반면 ‘배움’은 문이 열리는 것이다.
면장(免狀)은 곧 면허장(免許狀)이다. 免은 토끼 토(兎)에 꼬리가 없는 모양으로, 토끼가 덫에 걸려서 도망친다는 뜻이다. 생명을 구했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면허(免許)는 곧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즉, 한번 면허를 받으면 허락을 받지 않고서 그 무슨 일을 해도 된다. 운전면허증을 받게 되면, 항상 운전을 할 수 있다. 면허증은 한번 받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통한다. 알아야 면장한다는 뜻을 알아야 그 어떤 일의 면허증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동음이의어로 해석해서 그렇다.
“면장한다”는 말이 실제로 사용되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공부한다는 말처럼, 명사의 한자어에 ‘하다’가 붙는 경우가 많다. 사랑(思郞)도 한자어다. 여기에 ‘하다’가 붙어서 사랑하다는 동사가 되었고, 생각(生覺)도 한자어인데, 여기에 ‘하다’가 붙어서 생각하다가 되었다. 이처럼 면장하다도 ‘면장(免墻)’에 ‘하다’가 붙어서 “넘어선다”는 의미로 쓰인 것이다. 모를 때는 붙잡힌다. 알면 감옥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400년간 고역생활을 했다.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께 애닯게 간구했다. 모르니, 자신들이 받았던 하나님의 약속을 잃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그 약속을 다시 생각나게 했고,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을 알려주면서 바로에게 벗어날 수 있었다. 모르면 갇히고, 알면 벗어난다.
조선말, 식민지 치하, 백성들은 문자를 몰랐다. 그때 유행했던 사상이 개화사상이며, 계몽운동(啓蒙運動)이다. 계몽(啓蒙)은 무지몽매를 연다는 것으로, 면장(免墻)과 같다. 모르면 남의 밑에서 일하고, 종처럼 밭을 갈지만 알면 전혀 다른 차원으로 행해서 땅을 자기 소유로 만들어버린다. 지혜(知慧)는 인생에 날개를 달아서 하늘에서 내려다보게 한다. 다른 방법으로 행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 그것이 바로 면장(免墻)이다.
모세는 600만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법률과 제도가 미흡했고, 백성들이 법률을 지키는 것도 힘들어 했으며, 먹고 사는 문제가 심각했다. 게다가 가나안 정탐 실수 사건이 치명적이었다. 각 부족의 지도자들을 정탐꾼으로 선발한 것이 화근(禍根)이 되었다. 몰라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정탐대는 소수정예부대를 뽑아서 핵심만 은밀하게 보고 오면 되는데, 비전문가들로 구성된 지도자들을 보냈던 것이다. 그렇게 보냄을 받은 12명의 정탐꾼은 각자 의견이 제각각이었고, 지도자들의 발언은 여론을 형성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기(士氣)를 바닥까지 떨어뜨렸다. 결국 하나님의 심기를 상하게 해서 40년의 탕감으로 신광야에 갇혀버렸다. 반면, 여호수아는 2명의 특공대를 간첩처럼 적지에 파견해서 핵심을 보고 오게 해서, 정탐작전에 성공했다. 이렇게 알면 들어가고, 모르면 못 들어가는 것이다.
사도바울도 면장(面墻)에 갇힌 인물이다. 정통 유대교로서 당시 로마 시민권자였고, 산헤드린 국회의원으로서 기독교인들을 체포할 수 있는 영장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검사 직분이다. 그랬던 그가 다메섹에서 강한 빛을 봄으로 눈이 멀어버린다. 다메섹에게 그는 담이었고,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이었다. 그곳에 예수님이 계셨다. 예수님은 사도바울이 증오했던 인물인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구원주’였다. 결국 하나님이 어떻게 보느냐가 핵심이다. 사도바울은 그것을 몰랐던 것이다. 무지가 자신을 봉사로 만들어서 결국 예수님을 믿는 선지자에게 기도를 받고 나음을 얻었다. 그때부터 사도바울은 새로운 말씀을 배웠고, 방향을 전환했다. 면장(免墻)한 것이다.
인생은 누구에게 배우느냐가 운명을 좌우한다. 야당에 속하면 야당의 정책을 지지하고, 야당을 위해서 일을 해야한다. 여당에 속하면 여당의 정책을 지지하고, 여당을 위해서 일을 한다. 자녀는 부모의 울타리에 속하고, 부모의 성씨를 따라 이름이 정해진다. 유전자도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 그처럼 누구의 지도를 받느냐로 그 사람의 운명이 좌우된다. 성경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할 때만, 유독 “우리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자”고 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자신이 닮아가도록 하는 것, 그것은 진리를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다. 오늘의 본문 말씀에서도 에수님은 “내게 배우라”고 했다. 여기서 “나”는 곧 말씀이며, 시대의 사명자이며, 사명자가 전한 그 시대 말씀이다. 나는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다시 한번 하나님의 말씀을 내 인생의 등불삼고, 기준으로 삼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감사의 고백을 드렸다.
앎으로 무지를 면장(免墻)하리라!!!
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