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생활 에세이]=요즘 전지(剪枝)가 생활단어가 되었다. 주일말씀에 왕왕 나오므로, 내 삶속에 그대로 적용된다. 전지(剪枝)는 조경의 전문용어다. 생활단어는 자르기 또는 절단(切斷)과 단절(斷切)이다. 어제 월명동에서 전지하는 조경 전문가들의 모습을 보면서 삶의 전지(剪枝)가 얼마나 힘겹고, 필요한 것인지 진지하게 깨달았다. 전지(剪枝)는 진지함과 지속성이 필요한 작업이다.
전지(剪枝)에서 剪은 앞 전(前)과 칼 도(刀)의 합성이다. 칼을 앞으로 내세워서 자른다는 것이다. 나무의 가지치기를 할 때, 가위를 앞으로 쭉 뻗어서 자른다. 그것이 전(剪)이다. 이와 비슷한 글자로 전(煎)이 있다. 부침개로 알려진 ‘전’(煎)이다. 부침개도 불위에 앞으로 내밀면서 굽는다. 특히 부침개는 앞과 뒤를 번갈라 반복하면서 굽는 특징이 있다. 前의 의미가 들어있다. 부침개는 계속 앞면을 보면서 뒤집는다. 지(枝)는 나무 목(木)과 지탱할 지(支)의 합성이다. 나무에 붙어서 지탱하는 것, 가지를 말한다. 전지(剪枝)의 순 우리말은 가지치기다.
삶의 가지치기를 머리 손질처럼 생각하면 낭패를 당한다. 삶의 가지치기는 전지(剪枝)처럼 해야한다. 머리 손질은 머리전체를 가위로 손질한다. 반면 가지치기는 가지 하나씩 손을 대서 자른다. 소나무의 원줄기는 위로 곧장 뻗는다. 뻗으면서 계속 점점 작은 가지들로 자신의 형상을 나타낸다. 가지는 가지를 내고, 새로운 가지에서 새로운 가지를 내면서, 사람이 후손을 형성하듯이 생장점은 끝을 향해서 번창한다. 맨 끝에 몇 개를 남겨두고 모두 잘라야한다. 끝의 몇 개는 자르지 않아야 하므로 가지의 굵은 부분은 자를 수가 없다. 반면, 몇 개만 남겨야 하니 대부분 작은 가지들을 잘라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한올한올 자르듯 가지치기를 하는 것이다.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머리손질은 위에서 아래로 손을 내려서 가위질을 하지만, 전지(剪枝)는 하늘을 올려보면서 해야하는 일이다. 중력의 반대방향으로 팔을 뻗어서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사람이 만약 자신을,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지 않는다면 삶의 전지(剪枝)는 불가능하다. 이 세상은 즐거운 향락이 즐비하므로, 기쁨을 주는 요소를 없앤다는 것은 자기절제의 엄격함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삶의 전지(剪枝)다.
국가대표선수로 발탁되는 것은 엄청나게 힘들다. 거의 친구들과 교류를 끊어야한다. 화려한 피겨의 여왕 김연아 선수만 보더라도 어찌 달콤한 10대를 보냈겠는가? 7분의 화려운 무대를 위해서 거의 매일, 7시간, 7일, 70일, 7달, 7년…… 날마다 얼음판의 차가움을 발 끝에 메달고 살았다고 자신의 삶을 회고했다.
모든 분야 전문가는 달인이 되기까지 그 일에만 몰입한다. 그 일에만 몰입한다는 것은 사회학적 용어로 ‘지칭’이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다른 모든 이름을 배제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전지(剪枝)다. 남길 것만 남기고 모두 버리기, 그것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오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고 하므로, 베드로가 “모든 그물을 버려두고 따랐다”고 했다.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를 향해 전념하는 것, 그것은 소나무 끝에 남아있는 몇 개의 생장점을 의미한다. 생장점과 원줄기는 남기고 모두 잘라야한다. 그것이 사람이 해야할 인생의 지향점이다.
‘남길 것 남기고 모두 버리기’는 내년을 위해 씨앗은 남기고 나머지는 식량으로 먹는 것과 같고, 전문가의 전공분야 몰입과 같다. 전문가는 전문분야의 성공한 사람이다. 전문(專門)과 전공(專攻)에 사용되는 오로지 전(專)은 물레를 본떴다. 물레는 요즘 기계가 아니므로 역사적 서술에 따르면 한쪽 방향으로 밤이 새도록 돌려야 천이 만들어지는 기계이다. 산업혁명을 통해 방직기계가 만들어져서 섬유산업이 활성화되었는데, 그 전까지 모두 사람의 손으로 옷이 만들어졌다. 옷만드는 일은 그 일에 몰입하고, 물레를 한쪽으로 오랫동안 돌려야 가능했다. 전문가는 그 분야만 쳐다보고, 생각하고, 연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몰입하면 결국 ‘단어’로 고착된다. 어떤 분야의 대명사가 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단어로서 대명사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믿음으로 인생을 살았다. 베드로는 사도로서 충성의 대명사가 되었다. 다윗은 왕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사명자’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렇게 살아서 그 분야 전문가로서 단어가 된 것이다.
단어는 그 뜻이 하나, 또는 둘이다. 뜻이 분명하다. 뜻이 하나 또는 둘이 된다는 것은 다른 모든 뜻이 되지 않는 것이다. 울타리를 쳐서 뜻을 고정하면 나머지는 밀려난다. 여러 가지 뜻으로 단어가 흐려지면, 뜻이 불분명해서 단어가 되지 못한다. 단어가 되면, 작가는 그 단어를 들어서 자유롭게 사용한다. 단어가 된다는 것은 그 분야 전문가로서 실력을 갖추는 것이다. 그 단계는 새가 날개를 다는 것이고, 차가 바퀴를 다는 것이고, 용이 구름을 만나서 하늘로 오르는 것이다. 한비자에 나오는 비룡승운(飛龍乘雲)과 같다. 다른 말로 전지(剪枝)가 끝나 미용실을 다녀온 듯 작품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하고싶은 많은 일들이 있으나, 그 중에서 보다 중요한 신앙의 일에 몰입하여 이 글을 쓰는데 전념하였다. 전념(專念)하여 생각의 전지(剪枝)를 하였으니, 나도 생활의 가지치기를 실천한 것이다. “출발, 일터로”의 구호가 오늘도 실천되니, 그 또한 행복의 시간이다. 평생 이 사상을 삶의 가치관으로 삼고 나는 살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