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과연 지구에서 태양과 달이 같은 크기로 보이는 것은 누구의 행함일까? 상상할 수 없는 크기의 차이는 코끼리와 개미의 차이보다 더한다. 달은 가깝고 태양은 멀어서 상대적으로 같게 보인다. 누군가 위치를 설계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과연 누구의 행함인가?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그 우연의 손을 활용해 창조의 설계를 하신 이는 누구인가?
국가 정책도, 단체 행사도, 누가 행했느냐를 따진다. 그것을 따져야 감사할 방향을 알기 때문이다. 떡을 누군가 줬다면 무슨 이유로 줬는지 알아야 감사의 마음이 우러른다. 모르면, 짐승이다. 짐승은 그저 주어진 대로 먹을 뿐이다. 화가도 그림을 그리고 반드시 ‘서명’을 그림속에 넣는다. 자신이 그렸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표식이다. 하물며 만물의 예술가 하나님이시랴.
하나님은 그 행하심을 어떻게 나타낼까? ‘때’(時)의 방법으로 하나님은 그 행하심을 나타낸다. 때는 곧 시간이며, 시간표를 따라 그 어떤 것이 행해진다는 것은 하나님이 행하셨음을 인지하는 것이다. 봄의 때에 봄이 오듯, 아침에 태양이 뜨듯 그렇다. 정명석 목사님께 고등학교 때 배웠던 한때두때반때(3년 6개월 하나님의 시간표)의 말씀이고, 오늘 주일예배에서 동일한 말씀이 나왔다.
성경적 근거는 다니엘서이다. 다니엘은 구약의 위대한 선지자요, 국무총리였다. 구약에 국무총리를 한 인물이 3명이 나온다. 1명은 요셉, 다른 1명은 모르드개, 다른 한명은 다니엘이다. 여왕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했던 에스더도 있고, 왕자로서 그 직분을 버리고 하나님의 사명자가 된 모세도 있다. 다양한 직업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행하는데, 다니엘은 특히 국무총리의 정치활동을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의 조건을 세운 위대한 신앙인이다. 그가 결심하고 기도한즉, 하나님께서 왜 하나님의 민족이 이방민족의 포로생활을 하는지 근본을 깨달았다. 그것은 힘이 없는 약소민족이라서 당한 것이 아니었다. 그와 정반대였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범죄함으로 하나님께서 강대국을 들어서 때리신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다니엘은 베옷을 입고 슬픔의 눈물을 강처럼 흘렸다. 비통한 심정은 바벨론의 포악을 향해서가 아니라, 바로 이스라엘 조상과 당시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무지몽매함을 향해서였다. 한 사람이 깨달은즉, 그때부터 이스라엘 백성은 서서히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이 쌓여갔다. 그리고, 그때 다니엘이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 기도제목은 바로 ‘이스라엘의 완전한 독립’이다. 본래 이 예언은 예수님때 이뤄졌을 것인데, 그들이 십자가에 못을 박음으로 연기된 예언이다. 마태복음은 다니엘의 예언이 다시 예언되는 정황이 나온다.
[다니엘서 12:11~13]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 이백 구십일을 지낼 것이요 기다려서 일천 삼백 삼십 오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
[마태복음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마가복음 13:13]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마태와 마가는 동일하게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라고 적었다. 그것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이 적혔던 그 당시 성도들에게 은밀히 말했던 것으로 빌라도가 헤롯성전에 세운 독수리 문양을 암시했다. 로마 황제를 향해 우상숭배를 한 그 기점을 통해 한때두때반때가 계산된다는 것인데, 그렇게 약속이 실현될 줄 알았으나 이스라엘 민족은 오히려 패망했다. 즉, 다니엘의 예언은 다시 예언된 것이다. 예수님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때’로부터 계산된다. 하나님의 축복도 ‘하나님의 사람이 출현한 때’로부터 계산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행하심을 아는 시간적 표적이다. 수학에서 좌표값은 원점에서 계산하는 것과 같다. 음수도 원점에서 계산하고, 양수도 원점에서 계산한다. 심판은 하나님이 싫어한 것이 세워진 때부터 한때두때반때, 축복도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행한 때부터 한때두때반때이다.
하나님이 가장 좋아했던 사건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렸던 사건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1천년이 지난 그 시점에 다윗왕이 출현하고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졌고, 아브라함의 때로부터 2천년이 지난 시점에 예수님이 태어났다.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사람이 조건을 세운 그 기점에서 때를 계산한다. 목수가 자(ruler)를 측량할 때 0을 기점으로 길이를 측정하는 것과 같다. 기점에서 한때두때반때에 소원이 성취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며, 기점에서 한때두때반때에 사업이 망했다면 그 또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이루시고, 하나님이 허무신다. 하나님의 행하심인 것이다.
[요한계시록 2:10]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이 성경구절은 정명석 목사님이 수백번은 넘게 설교로 인용하신 말씀이다. 중국에서 악평자들의 모함으로 억울한 조사를 받았던 시기, 믿음으로 붙들었던 성경구절이다. 10일은 곧 1일을 1달로 계산해서, 중국에서 10달의 조사기간을 거쳤고, 엄격한 중국법으로 무죄방면되어 한국으로 오신 후, 그때도 역시 1일을 1년으로 환산해서 10년의 십자가 기간이 정해졌다. 1일은 곧 1달, 1년으로 환산된다. 이는 시간의 닮은꼴 계산이다.
그가 나오시고, 68일째 되는 날, 나는 월명동에 있었다. 처음 얼굴로 정명석 목사님을 만난 날이기도 하다. 평온해 보이셨다. 얼굴은 깊은 산속 계곡을 보듯 고요했다. 전날, 전지작업(가지치기)을 하셨던 말씀을 멘토링으로 전해주시면서, “오늘이 몇일이지? 며칠째지? 68일? 하나님은 날짜를 계산하신다”라고 하셨다. 그리고, 영어(囹圄)에서 자유의 몸이 되신 후, 70일이 지난 4월 27일 남북평화회담이 개최되었고,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는 평화의 선언이 합치를 이루었다. 또한 북한과 한국이, 평양과 서울이 30분의 시간차를 일치했다. 30분은 성경적 용어로 ‘반때’이다. 북한이 30분의 반때를 서울의 표준시로 맞추겠다고 약속했다. (정명석 목사님의 설교에서 늘상 한때두때반때에서 한때와 두때는 지났고, 이제 반때가 남았다는 말씀이 왕왕 있었다.)
과연 사람의 행함인가? 하나님의 행하심인가? 하나님의 사람은 1일을 1달로 10달을, 또한 1일을 1년으로 환산해서 10년을, 중국과 한국에서 2번씩이나 십자가 고역을 보내시고, 모든 십자가 사건이 끝나고 1일을 1년으로 환산해서 70일째 되는 날, 70년동안 해결하지 못한 민족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십자가는 땅과 하늘의 어긋남을 다시 합치하는 거룩한 제사이다. 남과 북의 평화는 곧 땅과 하늘의 하나님을 암시하는 방향의 일치가 아니던가? 본래 한반도는 하나였으나, 러시아와 미국이 각각 소군정과 미군정을 내세워 38선을 나눔으로 나뉘었다. 분단이 전쟁을 낳았고, 공포와 혼란은 올해 초까지 지속되었다. 그런데, 평화의 봄이 왔다. 그 봄은 누구로부터 온 것인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아름다운 역사가 시작되었고, 그 기점은 ‘70’으로 화룡점정이다.
이스라엘은 예수님의 육신이 십자가에서 살아나지 못함으로, 이스라엘 민족은 영원히 전쟁의 늪에 빠졌다. 디아스포라의 흩어짐은 곧 하나님과 결별이다. 회교도와 유대교는 영원한 앙숙이 되어서 지금도 전쟁의 기운이 그곳에 머물러 있다. 트럼프의 사위가 유대인인데도, 이스라엘은 자신의 수도 예루살렘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람인 예수님을 뺏김으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모든 축복의 근원이며, 민족의 운명을 해결하는 열쇠임을 다시 확증한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나는 ‘70’의 기점을 믿는다. 1일을 1년으로 환산하여 하나님의 사람이 십자가 기간을 모두 끝낸 날을 기점으로 70일 째 되는 날, 70년동안 해결하지 못한 남북분단 문제를 해결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시다. 1948년 김일성과 김구가 본래 하려고 했던 그 통일정부의 시작이 2018.4.27. 비로소 이뤄진 것이다. 사람이 하는 듯 하여도 사람을 통해 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확증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