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판문점(板門店)에서 남북정상이 영원한 평화를 맹약(盟約)했다. 야당은 “트로이 목마”의 눈빛으로 의심의 비판을 하지만, 두 정상의 판문점 선언은 공증되었다. 평화를 향한 문이 열린 것이며, 그 씨앗이 뿌려진 것이다. 결실을 맺기까지 8천만 국민이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할 것이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며, 평화는 그저 오는 것이 아니다. (Freedom is not free)
널문리로 불린 판문점은 임진왜란과 연결된다. 1592년 4월 일본의 침략으로 선조는 피난을 가야 했다. 줄행랑을 쳐야했던 슬픈 왕 선조는 널문리에서 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백성들이 자신들이 집에서 대문을 뜯어 다리를 놨다고 해서, 훗날 널문리가 되었다. 넓은 대문으로 다리를 놓은 백성들의 민심(民心)이다. 선조는 백성의 도움으로 문을 만들어 북쪽으로 생명길을 얻었다. 그리고, 광해군을 중심으로 분조(分朝)를 만들어 전쟁의 위기를 모면했다.
1545년에 태어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선조는 고종의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육로는 이미 점령당했고, 해로(海路)가 뚫리면 한반도는 통째로 일본의 차지가 되었고, 일제 식민지 치하는 더 일찍 시작되었을 것이다. 물론, 명나라의 도움으로 전세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명나라는 명나라일 뿐이다. 일본과 조선의 전쟁은 당사자가 결정하는 것이다. 휴전협정에서 왜군은 한사코 이순신을 물고 늘어졌다.
국가를 위해 살았으나, 누명을 쓰고 옷을 벗어야 했던 충무공, 그는 십자가의 고통을 감내했다. 죽음으로 12척의 배를 이끌고 다시 일본군과 맞서 싸움으로 승전보를 안겨준 위대한 장군, 그는 세종대왕과 함께 광화문에 기념될 만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가 태어난지 400년후, 대한민국은 광복되었다. 1945년이다.
충무공 이순신을 생각하면, 나는 내가 존경하는 정명석 목사님이 자주 생각난다. 400년의 차이로 태어난 해가 일치한 것도 있고, 청년들을 멘토링하는 모습에서도 ‘동고동락’(同苦同樂)의 심정을 느낀다. 국가의 모함을 받으면서도 국가를 위해 헌신했던 위대한 인물 이순신 장군처럼, 어려운 역경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굽히지 않고 묵묵히 실천하는 모습에서 ‘신앙의 깃발’을 본다.
군사 리더십 전문가 에드거 퍼이어는 미국 지휘관 1000명을 인터뷰로 연구하면서, 리더의 조건을 4가지로 압축했다. ▲인품(人品) ▲결단력 ▲도전정신 ▲위임이다.
인품은 곧 인격이다. ‘사람 만들기’는 정명석 목사님의 멘토링 핵심이다. ‘나로부터 출발’이 그것이다. 행하지 않고는 말씀하지 않는다. 요즘은 가지치기를 통해 멘토링 말씀이 진행된다. 가지치기를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지시하지 않고, 사다리를 직접 타고 올라가서 하늘로 쭉 뻗은 소나무 가지를 향해 팔을 뻗어 싹뚝싹뚝 전지를 하면서, 야간작업을 강행하면서 ‘조경관리의 정신’을 몸으로 보이자, 조경 관리 책임자는 비로소 ‘관리의 책임감’을 깨달았다고 다음날 고백하는 모습을 보았다. 인품(人品)은 따뜻함도 있고, 너그러운 관용도 있다. 인품의 핵심은 ‘나로부터 자기 만들기 완성’이다. 좋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 행하고, 좋은 말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행함이 곧 인품의 출발이다.
결단력은 곧 판단력이다. 결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점이다. 한번 결정하면 그 방향이 달라지므로, 옳은 판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조감도(鳥瞰圖)처럼 위에서 내려다보는 미래지향적 판단을 해야만, 인생은 후회가 없다. 곧, 하나님의 지혜를 통해 인생을 내다보고 살아야한다. 정명석 목사님은 항상 성경말씀을 기준으로 인생을 살도록 권면한다. 성경을 통해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면, 어떻게 결정할지 지혜가 보인다. 버릴 것 버리고, 지킬 것 지키기, 그것이 핵심이다.
성경은 하라, 하지 말라 2가지다. 하라는 것을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을 안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 / 정명석 목사님 멘토링 말씀
도전정신(挑戰精神)은 전쟁을 북돋는 정신이다. 지금은 전쟁보다 평화의 시대이니,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자신을 격려하는 정신이 바로 도전정신이다. 인류역사에서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은 ‘촛불혁명처럼’ 죽음의 댓가를 지불하게 한다. 1980년 서울의 봄이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던가? 정치적으로 거제도 출신 김영삼 국회의원이 부마항쟁을 벌였고, 종교적으로 월명동 출신 정명석 목사님이 하나님의 뜻으로 선교사역을 시작했던 때이다. 보이는 정치와 안보이는 종교는 항상 두겹줄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룬다. 40년이 지난 2018년에도 거제도 출신 문재인 대통령과 월명동 출신 정명석 목사님이 각각 뜻을 따라 남북평화 회담의 작품을 이루었다. 정치는 보이는 세계를 담당하고, 종교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담당하여 서로 맞물려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시대가 새롭게 열리는 것은 엄청난 댓가가 따른다. 생명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생명의 댓가가 지불되어야하다. 구약에서 신약의 문을 열었던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았다. 구교에서 신교 기독교를 열었던 루터는 ‘이단과 마귀’의 오명을 뒤집어 쓰고서 독일에 기독교의 뿌리를 내렸고, 성경을 번역해서 성도들이 읽을 수 있게 했다. 생필즉사 사필즉생(生必則死 死必則生)의 심정이다.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문이 열리는 것은 십자가의 헌신이 필요하다. 백성이 대문으로 엮어 다리를 만들 듯 십자가의 희생이 있어야만 새로운 문이 열리는 것이다. 이 시대는 신약에서 성약으로 나아가는 문이 열리는 때이다. 내가 30년 넘게 배웠던 성경의 깊은 인봉의 말씀들은 그 어디서도 듣지 못했던 비밀의 말씀들이며, 십자가 고역의 10년 기간에도 직접 집필한 설교말씀이 끊이지 않았다. 그 또한 도전정신의 표본을 보여준 것이다. 정명석 목사님의 모든 도전정신은 ‘하나님의 사랑‘과 연결되어 있음을 나는 믿는다.
위임(委任)은 곧 맡김이다. 맡겨야 새롭게 된다. 열매는 절대로 줄기에서 열리지 않는다. 가지끝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린다. 전지(剪枝)는 맨 끝의 나뭇가지를 남기고 모두 자르는 것이다. 위임(委任)은 지방분권 체제다. 기독교복음선교회 시스템은 중앙집권적 지방분권 체제이다. 2가지는 보수와 진보처럼 함께 필요하다. 씨줄과 날줄이 함께 엮여서 옷이 되는 것과 같다. 중앙에서 모든 것을 다스리면서, 지방이 독립권을 가지고 생명력을 발휘하는 것,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면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하고 자유의지를 준 것과 같다. 자유의지를 주면서 ‘진리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도록 그 한계를 설정했다. 이것이 곧 위임이다. 맡기고, 그 한계로 다스린다. 기독교복음선교회의 각 교회는 정명석 목사님의 설교원문을 토대로 말씀을 전하면서, 각자 자신들이 깨달은 말씀을 첨언해서 증언하는 설교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