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남한과 북한이 평화협상을 맺었다. 4월 27일 그 열기는 아직도 식지 않는다. 더불어 민주당이 선거유세까지 그 힘을 끌어가려고 연출하는 것도 있고, 평화협상의 의미가 핵폭탄급 사건이어서 더더욱 그렇다. 이스라엘과 이란은 핵폐기의 무효를 선언하면서 전쟁의 도가니에 휩쌓였고, 유럽도 IS 폭탄테러가 끊이질 않는 상황이다. “내 책상에 핵폭탄 스위치가 있다”면서 스위치 발언으로 4월 한반도 전쟁위기설이 감돌았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평화의 봄이 찾아왔다. 전쟁의 핵무기를 없앤 평화의 스위치를 과연 누가 눌렀을까?
남한과 북한은 사과와 배, 남자와 여자의 관계이다. 서로 다르지만, 협력해서 살아가야할 공동 운명체이다. 서로 등을 돌리면 北이 되고, 싸우면 反이 되지만, 서로 협력하면 友가 된다. 남자가 여자보다 낫다? 여자가 남자보다 아름답다는 논쟁은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 사과와 배는 서로 맛이 다르지만, 과일로서 사람의 입맛에 모두 맞다. 북한은 북한으로, 남한은 남한으로 그 가치가 있는 것이지, 누가 옳고 그름의 정의로 논할 것은 아니다. 핵심은 백성을 위한 정권이다.
본래 이 논쟁은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사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념이 러시아에서 성공해 정치실험을 했지만 70년만에 실패한 것으로 끝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사상은 여전히 남겨져 있다. 단군왕검의 정치이념도 사회주의 사상이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것으로, 사회복지를 뜻한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극단적 개인주의로서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문제가 발생한다. 경제적 계급주의는 왕권체제보다 무섭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는 서로의 장점과 단점이 있어서, 보수와 진보처럼 상호보완적 관계이다. 좌익과 우익은 그 한자어처럼 좌측 날개와 우측날개로서 모두 협력해야만 새는 날개짓으로 하늘을 비상하는 것이다. 이것이 남한과 북한이 공동 운명체로 놓인 관계인 것이다.
이제, 내면(內面)을 들여다볼 시간이 왔다. 내면(內面)은 곧 내용(內容)이며, 내게 있는 것이다. 남의 것에 신경쓰면서, 다른 사람의 성공신화를 따라하려는 경향이 한국인의 특성이다. 남의 것은 모방하는 것도 좋지만, 결국 사과나무는 사과만 열린다. 물론, 돌포도를 접붙이면 거봉이 될 수도 있다. 같은 종자에서 품질향상은 접붙임으로 가능하다. 그렇다고 사과나무가 접붙여서 거봉이 열리지는 않는다. 자신의 내면은 곧 개성(個性)이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특기가 무엇인지, 날마다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파악해야한다. 혹시, 지금 없더라도 좋아하는 일이라면 10년동안 꾸준히 그 일을 할 수 있으니 개발하면 된다.
자신이 포도나무인지, 사과나무인지, 배나무인지, 무슨 일을 하면서 시간에 열정을 쏟는지,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지, 혹은 혼자서 글쓰는 것을 좋아하는지,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사람의 문제를 듣고 해결하고 갈등을 풀어주는 것을 좋아하는지, 앞에서 전체를 총괄하고 회의를 주재하면서 핵심을 이끌어내는 데 재미를 갖는지, 자신을 파악해서 그 특징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한은 남한으로, 북한은 북한으로 각각 그 존재를 인정하면서 상호 협력한다면 21C의 국제사회의 주역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확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