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화의 경청화법
전통적 대화구조는 ‘소음의 제거’에 있다. 조용한 곳, 밀실에서 분명한 문장으로 대화를 나눈다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 그것이 전통적 대화구조 이론이다. 말은 물건처럼 전달된다는 것, 말하면 상대는 듣는다는 것, 해가 떠서 지듯 말이 움직인다고 모두 생각했다. 대화할 때 ‘소음’만 없다면 모든 소통에 문제가 없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교실에서 과연 누가 떠드는가? 조회시간에 누가 말하는가? 드라마를 볼 때 누가 잡담을 하는가? 그런데, 대화를 나누고 나면 서로 전혀 다르게 생각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대화를 나누면 반드시 의견이 같아야한다는 그 생각이 문제인 것이다. 씨앗을 땅에 뿌리면 모두 똑같이 자라는 것이 아니다. 전혀 다르다. 봄이 오면 모든 만물이 획일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개구리는 봄이 왔으나 겨울잠을 잘 수도 있다. 해가 떴다고 모든 사람이 직장에 출근하는 것이 아니다. 하루는 공평하지만, 그 하루를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모두 다르다. 제각각이다. 말을 하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은 그 의미가 반드시 다르다. 같으면 그것이 문제다.
대화의 본질을 모르는 사람은 말을 했는데 왜 말귀가 안통하냐고 분통이 터진다. 말귀가 안 통한 이유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 말귀가 안통하는 것을 일컬어 ‘평행선’이라고 한다. 보수와 진보는 과연 평행선을 달린다. 그들은 왜 서로 다른 주장을 할까? 그 이유는 대화시간의 부족이 아니다. 끝장토론의 부족이 아니다. 서로 다른 것이 정상이다. 새의 두 날개가 다르듯 다른 것이고, 남자와 여자가 다르듯 다른 것이다. 남자는 여자를 이해할 수 없고, 여자는 남자를 이해할 수가 없다. 어른은 아이를 이해할 수 없고, 아이는 어른을 이해할 수 없다. 남한은 북한을 이해할 수 없고, 북한은 남한을 이해할 수 없다. 그 입장과 처지가 전혀 달라서 그렇다.
부부가 있다. 남편이 오랜만에 휴가를 얻었다. 아내에게 “이번 휴가에 뭐할까?”라고 물으니, 아내는 “이번 휴가는 가족끼리 휴식을 취해요”라고 말하니, 남편은 “그것, 정말 좋은 의견이네”라고 대꾸했다. 대화가 끝나고, 다음날 다시 만난 두 부부는 부부싸움을 했다. 아내는 남편에게 “동남아 여행”을 제안했고, 남편은 “집에서 휴식”을 말하면서, 대화가 안통한다면서 서로 싸운 것이다. 남편은 날마다 출장을 떠나고, 밖에서 일하느라 지쳤고, 아내는 집에서 쉬면서 지쳤다. 둘이 생각하는 ‘휴식’은 개념에서 차이가 난 것이다. 둘은 대화를 통해서 “충분한 휴식”에는 동의했으나, 그 의미가 전혀 다른 것을 몰랐던 것이다. 이것이 대화의 본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디테일의 악마를 넘어서자”라고 말했던 것이 이런 맥락과 같다. “핵폐기”라고 모두 말하지만, 그 온도차이는 모두 다르다. “검증과 공개”라고 말해도, 그 범위는 전혀 다르다. 어디를 공개하고, 어떻게 검증하느냐는 전혀 다른 의미가 존재한다. 디테일로 서로 말하지 않으면 엉뚱하게 해석할 수 있다. 아전인수(我田引水)처럼 서로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을 한다.
그 무슨 말을 하더라도, 상대는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한다는 것을 반드시 인지해야한다. 상대입장에서 과연 어떻게 인식할지, 그것을 파악하는 것이 통찰력이다. 대화에는 이러한 통찰력이 매우 중요하다. 상대의 입장을 알면, 내가 말하고싶은 내용을 상대에 맞게 단어와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 마크롱이 호주 총리의 부인에게 “당신의 맛있는(delicious) 부인”이란 표현을 사용해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프랑스 말로 ‘맛있다’를 뜻하는 ‘d´elicieux’는 사람에게 쓰일 때 ‘사랑스러운’ ‘유쾌한’ ‘매혹적인’이라는 칭찬의 의미로도 쓰이면서, 마크롱이 단어실수를 한 것이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단어는 화자가 말해도, 그 의미는 청자에 의해 해석됨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마크롱이 아무리 ‘사랑스러운’의 의미로 ‘delicious’를 말했어도, 호주에서는 ‘외설적인 표현’으로 ‘맛있는 여자’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대화할 때도 항상 상대의 입장에서 어떻게 이해될지 깊게 숙고하는 생각의 대화법을 갖는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대화의 경청화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