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이 발생하면, 그 갈등이 중대하고, 심각하면, 제3자가 개입해야한다. 경찰이 동원될 정도의 갈등은 이미 치유가 불가능할 것이고, 그 정도로 악화된 상태가 아니라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갈등 조정자를 불러서 전문치료를 받는 것이 시급하다. 사람은 감기만 발생해도 약국에서 약을 사먹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데, 왜 조직의 부서가 아픈데도 치료를 하지 않는 것일까? 치료보다는 갈등의 증상을 ‘술’의 환각제로 망각하는 것으로 치료된 듯한 착각으로 무리하게 사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갈등은 놔두면 조직의 해로운 병이 된다.
옛날 가부장적 제도에서는 윗 어른의 따끔한 충고, 양측을 불러서 입장을 듣고서, 각각 잘못한 것을 훈계하고, 공동체 생활과 품어주는 도리를 논하게 되면, 싸움도 그냥 스르르르르 사라졌다. 그때는 행정제도가 지금처럼 발달하지도 않았고, 전통사회는 통제사회여서 윗 어른의 말을 듣지 않았을 경우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시대였다. 지금은 그때와 완전히 다르다. 부서와 부서의 갈등에서도 사장이 말한다고 해서 따르는 직원은 거의 없다. 따르지 않았다고 해서 해고를 시키면 그것도 부당해고가 되어서 결국 회사의 불이익이 발생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갈등의 표출은 과거보다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내재된 갈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차가운 갈등이라고 불리는데, 이런 갈등이 사실은 극히 위험하다. 뜨거운 갈등은 갈등이 이미 밖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치료의 과정만 남았으나, 차가운 갈등은 갈등이 드러나지 않아서 계속 조직의 해로운 작용을 하게 된다.
갈등이 터지면, 양측은 적대관계가 된다.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려고 해도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제3자가 필요하다. 갈등 당사자가 아니라면 모두 제3자가 되겠지만, 갈등조정을 해본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조직갈등 해결에 실질적 도움이 된다. 왜냐면, 갈등은 조직을 진단하는 요소이며, 조직의 변화를 요청하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갈등을 일으킨 당사자들도 제3자를 통해서 자신들의 입장을 들어보면, 갈등이 다소 누그러지면서 갈등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할 확률이 높다. 그런데, 무조건 당사자끼리 화해하게 한다면 그것은 자칫 갈등을 키울 수도 있다. 제3자를 일컬어 ‘관찰자’라고 한다. 관찰자의 역할은 당사자들의 말을 들어주면서, 당사자가 자신이 자신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이다. 관찰자의 시점에서 자신들의 입장이 다시 말해진다면, 사람의 심리는 새롭게 정립되면서 감정적으로 폭발되었던 가짜 갈등들이 제거되고 본질적인 문제만 남게 되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스스로 결정하는 일만 남게 된다.
갈등(葛藤)을 칡과 등나무의 얽힘이라고 해서, 양측의 다툼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정의는 과거식이다. 다투면, 누가 칡이고 누가 등나무인가? 양반은 등나무이고, 종은 칡인가? 을은 등나무이고, 갑은 칡인가? 혹은 그 반대인가? 권력이 있으면 등나무이고, 거기에 붙어서 살아가면 칡인가? 다툼이 과연 이렇게 이분법으로 나뉘어질까? 곳곳에 다툼이 발새하는데, 칡과 등나무만 과연 싸울까? 이런 의문을 제기하면, 우리는 칡과 등나무를 사람으로 분리하는 것이 얼마나 모순된 것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요즘의 분리는 갈등과 가짜 갈등의 분리를 의미한다. 갈등이 발생하면, 갈등속에 내재된 다양한 이슈들을 분석할 수 있어야한다. 어떤 것이 등나무이고, 어떤 것이 칡인지, 즉 어떤 것이 갈등의 근본이고, 어떤 것이 갈등 때문에 발생한 곁가지로서의 가짜 갈등인지 분석하면, 등나무만 남게 된 그 갈등을 다시 분석하면서, 등나무의 원뿌리를 찾듯이 갈등의 근원지, 진원지를 거슬러 올라가서 조직의 구조적 문제점을 진단할 수 있다. 시작은 아주 사소한 두 사람의 다툼이지만, 두 사람이 주장하는 것을 면밀히 분석하다보면, 부서와 부서의 문제점, 직장내 잘못된 관행으로 겪게 되는 직장인들의 충돌 문제점이 재발견되면서, 그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분석할 수 있게 된다.
관찰자는 반드시 객관성을 유지해야한다. 여기서 객관성은 공정성을 의미한다. 공정성을 유지했다는 것은 상대방이 인정할 정도의 공정성이다. 상대방이 만약 “한쪽 편에 치우쳤다”라고 느끼면, 그 관찰자는 이미 공정성을 잃은 것이다. 한쪽편에 치우쳤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할 것도 없다. 그렇게 보여지게 한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때는 공정성이 상실되었으므로, 그렇게 느낀 이유를 묻고, 관찰자가 고칠 수 없다고 판단하면 스스로 관찰자로서 조정을 멈춰야하고, 조정을 멈추겠다고 양측에 알려줘야한다. 공정성이 결여된 조정은 그 자체가 새로운 갈등을 일으킬 뿐이다. 보여지는 갈등은 해결되어도 그것으로 더 차가운 갈등이 내부로 숨게 되면서 조직의 발전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그래서 관찰자의 입장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1. 양측은 무엇을 주장하는가?
2.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3. 요구사항 뒤에 숨어있는 진짜 목적은 무엇인가?
4. 요구사항에서 일치하는 부분이 있는가?
5. 갈등이 본질인가? 혹은 갈등에서 파생된 가짜 갈등인가?
6. 갈등은 왜 발생했는가?
7. 갈등이 증폭된 결정적 사건이 있었는가?
8. 갈등이 발생하기 전에 서로 좋았던 경험이 있었는가?
9. 현재 갈등은 내재된 것인가? 표출된 것인가?
10. 갈등을 알고 있는 다른 조직원이 있는가?
11. 갈등 해결을 위해서 당사자들은 어떻게 했는가?
12. 자기입장을 정직하게 주장하면서 상대방을 이해시키려고 했는가? 상대방을 파멸시키려고 힘을 행사했는가?
13. 상대방의 반응에 대해 각각 어떻게 대응했는가?
14. 갈등해결을 위해서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15. 갈등해결을 진정 원하는가?
16. 실질적 갈등 당사자는 누구인가?
17. 부서와 부서의 갈등이면, 실권자는 누구인가?
18. 해당 조직의 의사결정구조는 소통이 활발한가?
19. 의사표현에 있어서 해당 조직은 공정한가?
20. 조직의 권력구조는 어떻게 되어있나?
21. 갈등이 발생하면서 이익을 보는 집단이 있는가?
22. 갈등이 발생하면서 각 당사자는 불이익을 보는가?
23. 갈등을 해결하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24. 갈등이 해결되면, 그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가?
25. 갈등이 해결되면 어떤 유익을 볼 수 있을까?
조직갈등관리(학지사) p171
갈등진단을 위한 기본틀 참고
이러한 질문은 다양하게 만들어서 적을 수 있다. 질문을 통해서 사건의 실체를 보려는 것도 있지만, 관찰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질문을 통해서 갈등 당사자들이 자신을 스스로 볼 수 있도록 ‘거울’이 되어주는 것이다. 이때 거울은 ‘질문’을 통해서 형성된다. 거울은 맑아야하고, 보는 사람을 비춰져야 한다. 그렇듯, 관찰자는 당사자들이 관찰자를 통해서 스스로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공정하게 질문하고, 공정하게 듣고, 공정하게 양측의 주장을 각각에게 전달하면서, 각자가 상대방에 대해서도 다시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다. 각자가 자신을 들여다보고, 그 이후에 상대방을 들여다보면, 갈등과 가짜 갈등이 자연스럽게 분리되면서 갈등해결의 방법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