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4월 25일 월명동에 방문했을 때 선물로 받은 오렌지를 나는 먹을 수 없었다. 슈퍼에서 파는 그 오렌지와 거의 흡사하지만, 먹는 순간 그 오렌지가 사라지므로, 나는 3일동안 보관하다가 얼렸다. 냉장실에 넣었더니, 날마다 오렌지가 싱싱하다. 10년은 넘게 오렌지의 사연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때론, 먹는 것보다 그 의미를 위해 먹지 않는 것이 더 가치가 있을 때도 있다. 잘한 것 같다.
오늘은 밖에 까치가 운다.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 신앙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명한 설렁탕집과 새롭게 리모델링한 톰앤톰스에서 희망찬 미래와 살아온 사연에 대해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어떤 책에서 “사람은 마음을 먹고 산다”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진심으로 생각해서 마음의 소리를 전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다.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의 어원은 ‘사람’이다. 사람과 사랑은 뿌리가 같다. 사랑하는 것은 살아가는 것이다. 문학인들은 사랑과 사람을 구분하지만, 본질은 같다. 살아가는 모든 것이 바로 사랑의 반응이다. 밥을 먹는 것도 밥과의 사랑이다. 밥을 통해 사람이 하나님과 사랑하는 것이다. 마음의 각도를 조금만 바꾸면 삶은 행복으로 넘친다. 어떤 큰 사건이 없어도 스스로 감각이 민감하면 소소함도 크게 깨달아진다. 현미경처럼 그렇다.
슈츠(suits)라는 드라마를 얼마전 봤었다. 장동건이 법무법인 수석 변호사로 나오는데, 헤어진 여자친구도 변호사다. 서로 소송을 통해 재회를 하는데, 모든 소송이 끝나고 그 여자 변호사가 “이번에 싸우면서 사랑했다”라고 고백한다. 사랑은 곧 무엇이든 행하는 것이다. 느낌이며, 감정의 교감이다.
내가 오렌지를 먹지 못한 이유는 그 감정의 의미 때문이다. 볼 때마다 그때의 의미가 되살아난다. 사람은 생각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편지를 받았으면 그 내용을 펼쳐서 자꾸 보듯, 그림을 선물로 받았으면 액자에 해서 걸어놓듯, 오렌지를 선물로 받았으니 그 형상을 오랫동안 보관하는 것이다. 냉장보관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얼마전 깨닫고, 날마다 나의 오렌지는 싱싱하다.
나는 달팽이를 키운다. 취미생활이다. 1마리는 8달 넘게 키웠고, 다른 1마리는 2달 정도 키웠다. 3일전에 꽃나무를 사와서 화분을 만들고 그곳에 두 마리 달팽이를 풀어놓았다. 밤새도록 달팽이를 찾았는데 보이질 않았다. 눈이 무척 아팠다. 흙속에 묻혔나? 탈출했나? 온갖 상상력이 머리를 뚫고 나왔다. 걱정이 쌓였다. ‘달팽이 때문에 무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마음이 쓰이면 신경이 가는 법이다.
오늘 아침, 스타벅스에서 신앙칼럼을 작성하고, 오후의 시간을 보내고, 흐믓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화분을 들여다보니, 밤새 찾았던 그 달팽이가 눈앞에 있었다. 나를 마중하듯 기다리고 있었다. 믿기질 않았다. 오늘 하루 내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잃었던 것을 되찾는 시간이었나? 혼자 생각했다. 잃었던 달팽이를 찾아도 이렇게 기쁜데, 잃어버린 첫사랑을 다시 찾으면 얼마나 행복하고, 빼앗긴 믿음을 다시 회복하면 얼마나 기쁠까?
달팽이 1마리는 물속에 더듬이를 담그고 명상중이고, 다른 1마리는 유리컵 속에서 잠을 자고 있다. 평온한 오후, 까치소리 반가운 장한평의 어느 곳에서 아름다운 하루가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