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내게 글을 잘 쓰는 비결에 대해 물으면 나는 편지와 일기라고 말한다. 하나 더 꼽으면 시련과 갈등이다. 시련과 갈등은 신앙적 언어로 십자가를 말한다.
2009년 나는 정명석 목사님과 편지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첫 편지답장은 내 책상위 지금도 액자로 놓여있다. 문자 메시지로 전달된 편지이지만, 그 사연은 내 심장에 날마다 기록된다. 그 첫 편지를 받고서 나는 1주일에 1번, 때로는 2번씩 내 삶에 대해, 말씀에 대해, 다양한 사연에 대해 편지를 드렸다. 7년을 꾸준히 하다보니 어느날 사건을 분석하는 능력이 내게 생겼고, 특히 집필의 열정이 내게 임했다. 그리고 지금은 낮은 마음으로 고백한다. 하나님의 사람과 소통하므로 하나님께서 글쓰는 신비한 능력을 허락했음을. 나는 하나님의 펜이 되길 그래서 지금도 기도한다.
편지는 글쓰는 능력을 확실히 높인다. 화법(話法)은 곧 표현인데, 내가 아는 것과 아는 것을 표현하는 것은 다르다. 나의 사연을 누군가에게 전달하면서 사건은 재정립된다. 처음엔 무척 힘들지만, 자주 하게 되면 자신만의 개성적 문법이 생긴다. 지금은 정명석 목사님과 편지쓰기 소통을 하지 않고 있다. 대신에 매주일 설교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을 설교후기로 기록하면서 새로운 편지문학을 진행중이다. 소통은 곧 말함과 들음이며, 그것은 반응이다. 설교는 정명석 목사님이 직접 집필해 모든 성도에게 전하는 말씀이다. 태양이 빛을 발하므로 지구에 도달한 그 햇빛으로 만물이 소생하듯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전달되므로 나도 그 혜택을 받는다. 말씀을 듣고 설교후기를 작성하는 것으로 나는 글쓰는 영역을 확장한 것이다.
나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정명석 목사님의 첫 편지답장의 은혜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다. 오늘도 그 편지를 읽고 교회를 향하고 있다.
다음으로 글을 잘 쓰는 비결은 일기다. 일기(日記)는 2가지가 중요하다. 하나는 날마다 쓰는 것, 다른 하나는 자신이 의미있게 생각하는 것이다. 일기는 날마다 시간을 정해놓고 써야한다. 시간을 정해놓고 쓰려면 자신에게 익숙한 필기법이 필요하다. 노트에 펜으로 작성하는 것이 편하면 그것으로 하면 된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일기를 써도 좋다. 그림도 사건을 표현하는 기법이다. 글의 어원은 긋다이며, 긋다에서 글과 그림이 파생되었다. 글과 그림은 뿌리가 같다. 일기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다시 생각하므로 글로 번역하는 것이다. 생각으로 과거를 추적하려면, 그 사건이 너무 멀리 있으면 안된다. 그래서 일기는 3~4시간 후에 작성하는 것이 좋다. 나는 일기를 현장에서 작성한다. 나의 일기는 기사요, 수필이요, 삶의 기록들이다. 나는 노트북으로 바로 일기를 쓰고, 그것이 수필이다. 그렇게 쓴 에세이가 몇만개는 넘는다. 지금도 내가 무엇을 썼는지 알지 못할 정도로 글을 쓰고 모았다. 엄청난 양이다.
다음으로 십자가이다. 사람이 편안하면 글을 잘 쓸 것 같아도, 사실은 괴로워야 글이 나온다. 갈등이 생기면 그때 사람은 새로운 각도를 알게 되고, 언어가 열린다. 갈등과 고통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문(門)이다. 전통적 조직관리기법에서는 ‘갈등’을 위험한 폭탄으로 판단하지만, 요즘 현대적 조직관리기법은 갈등을 변화의 시작으로 생각한다. 현대적 조직관리에서는 갈등을 매우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 갈등이 없다면 그 조직은 평온한 것이 아니고, 죽은 것으로 판단한다. 갈등은 존재해야 생명력을 발휘해서 그렇다.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갈등이 발생하면 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갈등이론은 곧 새로운 변화의 신호다. 예수님이 성경에서 “나는 평화를 주러 오지 않고 검을 주러 왔다”라고 했고, 루터도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양심을 배신할 수 없다”면서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했다.
역사의 수많은 사건들을 분석해보면 갈등을 통해 인류문명은 새롭게 발전했다. 세종대왕이 한글과 과학문명의 결정을 이뤘다고 우리가 평가하는 배경에는 태종 이방원의 피흘림의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갈등을 겪은 다음에 새로운 평화가 열리는 것이다. 고진감래(苦盡甘來)는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사람이 스스로 역경과 고통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없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현재 삶에 만족하고 안주(安住)하면 글은 나오지 않는다. 글은 수도꼭지를 틀면 나오는 것이 아니다. 글은 상처에서 나오는 피와 같다. 접붙임을 할 때 나무에 상처를 내듯, 상처난 조개에 눈물의 진주가 생기듯, 상처(傷處)의 고통이 글쓰기의 자양분이 된다.
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건을 짧은 글로 날마다 자주 많이 쓰도록 권면한다. 날마다 밥을 먹는 것, 그것이 보약이듯 날마다 글을 쓰는 것이 최고의 글쓰기 비결이다. 편지는 상대를 향해 사건을 번역하는 화법의 문학으로 최고이고, 일기는 사건을 생각으로 분석해서 정리하는 글쓰기 능력을 배양한다. 가족끼리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시청하고,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 혹은 가족회의를 하면서 토론문화를 가지는 것, 이러한 모든 생각의 공유가 글쓰기 능력의 뿌리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