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 힐링여행은 전국의 유명 관광명소를 직접 방문해, 마음과 건강을 치유하는 문화 프로그램으로, 경복궁 문화캠프의 연장선에서 진행되는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
서울교육방송과 국제문화교류봉사협회가 추진하는 ‘문화 힐링여행’으로 달월-힐링여행(월명동)을 5월 7일 실시했다. 달월 힐링여행은 매주 월요일 월명동의 월명수를 직접 마시면서, 공기와 물을 통해 건강을 회복하는 힐링 프로그램이다.
민찬기 운동학 전문가에 따르면, 공기가 세포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1분이고, 물이 세포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30분이라고 한다. 물이 세포까지 도달하는 시간을 계산해서, 1시간 단위로 월명수를 마시면서 자연경관을 산책하고,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서 미래를 설계하는 프로그램이 ‘달월 힐링여행’이다.
글을 쓰는 지금은 5월 7일 밤 11시, 서울의 집이다. 새벽 6시에 서울을 출발해,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마전까지, 마전에서 다시 월명동까지 도착하니, 오전 11시였다. 날씨는 가랑비가 내렸고, 인파는 붐볐다. 과일과 김밥으로 가방은 무거웠고, 월명동에 도착해서 맨 먼저 월명수를 향했다. 이번 방문 목적은 ‘건강 체험 치유 목적’이기 때문이다. 내려오는 길에, 인터뷰했던 분이 전화를 해서, 월명수에 대해 자랑했더니, ‘같이 가자’고 했다. 6월 즈음 달월 문화 힐링여행으로 그 분을 월명동에 데려올 생각이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니, 내가 직접 했던 것들이 남겨졌다. 현장을 누비면서 기록했던 취재수첩, 사람을 만나면서 작성한 인터뷰 기사, 세상을 내다보는 칼럼, 설교를 듣고 기록한 설교후기와 신앙칼럼 등등 모두 내가 매일 작성한 글들이 내게 남겨졌다. 내가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내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흘린 피와 땀이 글로 남겨짐을 깨달았다. 앞으로 10년을 어떻게 설계할까, 달월 힐링여행을 통해 나는 설계할 것이다.
월명수앞에 나는 하나님을 만난 듯 섰다. 언어는 약속이요, 상징은 실체이다. 루터가 말했다. “빵과 포도주는 상징으로 실체다”라고. 루터의 성체설은 쯔빙글리와 심각한 대립을 했지만, 상징은 믿는 자에게 실체가 된다. 상징의 약속을 나는 믿기에, 월명수를 하나님으로 믿는다는 약속의 언어로서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나는 나아야할 몸의 건강이 있고, 나는 고침을 받아야할 사업의 약함이 있고, 나는 능력을 받아야할 연약함이 있기에,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했다. 그리고 10잔의 물을 정성으로 마셨다. 배가 불렀다.
이번 프로그램으로 매주 월요일마다 월명동에 방문하기로 약속했다. 올 때마다 바위 하나를 정하고, 성경인물을 정하고, 나의 사연 하나를 기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오늘 바위는 성자바위다. 4번 정도 성자바위를 방문해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성자께서 바위로 나를 보셨으리라. 발가락도 만져보고, 볼에 볼을 가까이 대어보고,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면서 부드러워진 부분도 알게 됐다. 그 부분은 마치 손바닥처럼 매끄러웠다. 성자바위는 정말로 신비하다.
성자바위를 소개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2012.5. ‘성자의 기도’ 기간에 10월에 돌축제하려면 돌이 필요하니 새로운 돌을 달라고 21일 기도했을 때 성자께서 자연성전을 만들고 14년 섭리 무덤기간이 지나면 성자바위를 갖다 놓으려고 이미 60년전부터 선생이 친척집에 오가는 길에 이 바위를 오르내리면서 돌 나물도 뜯고 사연을 남기게 하여 마침내 바위를 갖다 놓은 후, 옛 사연 이야기를 하게 하신 것이다. 성자 바위에는 총 일곱가지 형상이 있다. 성자 형상, 인독수리 형상, 하나님 형상, 성령님 형상, 치타 형상, 발바닥 형상, 팬텀기 형상이 있다.
비가 내렸다. 나는 우산을 폈다. 성자바위는 자세히 보니, 소나무를 우측에 펼치고, 머리부분은 이끼가 있었다. 정말 자연석 그대로이다. 비가 내리니 그 은은함이 우렁차다. 근엄하고, 볼수록 늠름하고, 영원성이 느껴졌다. 무게에서 주는 안정감과 형상의 조화는 모든 각도에서 머물게 한다. 나는 발바닥 부분에 손을 대고, 오랫동안 서 있었다. 지구 세상을 다녀가신 아름답고 거룩하고, 아픈 맨발의 성자 주님,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성자 주님의 순결함이 그곳에 있음을 믿기에, 눈을 감고 심장으로 마음을 느껴 보았다.
성경인물로는 나아만 장군을 골랐다. 왜냐면, 나아만 장군은 엄청난 권력을 가졌으나 불치병이 있었다. 인생은 누구나 말못할 불치병이 있다. 불치병은 사람이 치료할 수 없는 병이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되거나, 지혜로 해결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일제 식민지 치하’의 불치병이 있었는데, 1945년에 해결이 되었고, 분단의 불치병이 있었는데 2018년에 남북평화회담이 열리면서 치유의 물꼬가 열렸다. 나라도 불치병이 있듯이 사람도 누구나 말못할 사연이 있다. 나도 있다. 그것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1999년에 나는 월명동과 대둔산을 방문해서, 나의 불치병을 놓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때 불치병은 담배였다. 금연을 하고 싶은데 절대로 고쳐지지 않았다. 대둔산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담배를 끊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내려오면서 담배를 피웠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의 간구를 들으시고 신앙의 치유를 통해 담배를 끊는 기적을 보이셨다.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면, 은밀하게 보시는 하나님께서 생활속에서 모든 응답을 이뤄주신다. 응답은 곧 문제해결이다. 나는 그것을 믿기에, 오늘도 나아만 장군의 심정으로 하나님께 매달린 것이다. 몸의 고침도 필요하고, 내가 살아온 삶도 고침이 필요하다.
나아만 장군은 ‘나만 아는 장군’으로 인식하면 된다. 교만병이 들 수 밖에 없는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바로 나아만 장군이다. 내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많다. 세상적 명예와 권력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부류들이다. 그러나, 그러한 권력과 명예는 하나님과 상관이 없으면 그저 바람같은 것이다. 들판의 백합화가 그들의 명예와 권세보다 낫다고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과 연결되지 못하면 그 모든 것이 무슨 의미랴!!
나아만 장군이 왕의 친서를 가지고 엘리사를 만나러 갔다. 엘리사는 비서를 보내서 “요단강물에 7번 씻으세요”라는 말만 남겼다.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가 직접 나와서 환대할 줄 알았다. 푸대접을 받은 나아만 장군은 “이런 xx 요단강물이 뭐가 좋다고”라고 생각했으나, 함께 따라간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전한 말씀이니, 7번 씻어봅시다”라고 권면하니, 나아만 장군이 마음을 고쳐먹고 그대로 행함으로 고침을 받았다.
‘믿음’에 대해 사람들은 ‘마음의 확신’으로 생각한다. 믿음의 본질은 ‘행함’이다. 성경은 “행함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야고보서에 나와 있다. 믿음은 곧 행함으로 그 효력이 입증된다. 믿을 신(信)은 사람과 말씀이 합쳐졌다. 말한대로 행했다는 의미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 말을 행한다. 나아만 장군이 고침을 받은 것은 그 마음의 믿음이 강해서가 아니다. 믿음은 약했으나, 의심이 있었으나, 하나님의 사람이 전한 말씀을 믿고 행함으로 불치병이 고침을 받는 혜택을 받은 것이다.
나는 1시간 단위로 월명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타임워치를 해놔서 1시간이 지나면 나의 발걸음은 월명동 약수를 향했다. 3번 정도 하니, 몸이 많이 가벼워졌고, 그때 정명석 목사님이 나오시는 모습을 운동장에서 뵀다. 깊은 산속 S형 소나무를 중심으로 청중이 집결했다. 조경 전문가들이 전지가위를 들고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고, 정명석 목사님은 직접 긴 전지가위를 들고 가지치기를 했다. 나는 처음 봤다. 어떤 모습으로 전지하실까, 많이 궁금했는데, 직접 전지가위를 들고 고개를 하늘로 올리고서, 손에 힘을 주고서 가지를 잘라냈다. ‘지도자는 말로 지시하는 위치가 아니고, 말을 실행하는 직분임을 목격한 순간‘이었다. 그가 행하니, 소나무 맨 위쪽에 나무 관리자가 온 몸을 나무에 바짝 붙이고 정성을 다했다. 소나무 맨 위쪽에서 전지하는 그 나무 관리자는 지난 4월 25일에 “밤이 늦도록 선생님께서 손에 쥐가 나도록 가지치기를 하는 모습을 보았고, 앞으로 저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마음을 결심했다”라고 고백한 사람이다. 그는 그 고백대로 그렇게 살고 있었다. 온 몸으로 가지치기하는 그 모습에서 나는 인생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인정하였다.
오늘 정명석 목사님의 전지작업 멘토링을 보면서, 나는 한자의 新과 親이 생각났다. 新과 親은 서로 비슷하면서 다르다. 新은 ‘새로움’이고, 나무의 가지치기, 나무의 접붙임의 의미가 있다. 親은 ‘서있는 나무위에 올라가서 멀리 내다본다’라고 보통 해석하는데, 약간 억지 해석이다. 누가 나무위에 올라가서 멀리 내다보겠는가? 친하면 함께 시장에 가고, 친하면 함께 대화를 나눈다. 친하면 마중나가서 맞이하는 것이다. 親의 핵심은 見이다. 친함은 ‘봄’에서 비롯된다. 자주 봐야 친해진다. 친하지 않으면 보는 것이 부담스럽다. 친밀감은 ‘눈으로 보는 것’으로 좌우된다. 오늘 나는 정명석 목사님이 청중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를 본다는 것, 또한 우리도 그를 본다는 것, 그처럼 생활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본다는 것, 우리도 진리를 통해 하나님을 본다는 것,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것, 그것이 바로 “親”이라고 알게 됐다. 매주 월요일, 자주 월명동에 와서 성자바위를 비롯해 하나님께서 구상하신 신비한 작품들을 보면서, 하나님과 사연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는 ‘문화 힐링 여행’이었다. 글을 쓰는 11시 50분, 정명석 목사님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고 월명동에 함께 있었던 지인(知人)이 문자로 알려왔다. 나는 지금 서울의 집이다. ‘달월 문화힐링 여행기’ 제 1편을 여기서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