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을 평가하는 데 있어 ‘답’은 수학 공식의 답같이 ‘한 가지’가 아니니라.
– 2018. 5. 11. 정명석 목사님 멘토링 잠언 1번
[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오늘도 까치처럼 정명석 목사님의 멘토링 잠언이 내게 왔다. 짧은 잠언은 모두 정명석 목사님이 직접 쓴 내용이고, 오늘은 2번이 매우 길게 설명이 되어 있었다. 1번 멘토링을 2번에서 풀어서 설명하니, 1번이 더욱 심오하게 느껴졌다. 인생을 어찌 살아야하는지, 나의 단점이 생각났다. 잠언(箴言)에서 잠(箴)은 바늘이다. 바늘처럼 톡 쏘는 맛이 잠언이다. 내가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생각의 근육이 움찔 살아나는 순간이다. 한의원에 가면,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그곳과는 전혀 다른 곳에 바늘을 쑥 찌른다. 그렇게 10분 정도 3~4번 반복하면 어느새 아픈 곳이 치유된다. 잠언 멘토링은 그런 효과가 있다. 내 마음의 뭉친 곳이 잠언 멘토링으로 가만히 생각하면, 마음에서 서서히 풀린다. 그래서 나는 잠언 멘토링을 참 좋아한다. 보물 모으듯 매일매일 잠언 메토링을 읽고, 프린트해서 또 읽으면서 살아간다.
오늘은 ‘수학 공식의 답’에 마음이 꽂혔다. 구구단만 외우면 모든 곱셈이 풀리고,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만 숙지하면 모든 소리를 쓰고 읽을 수가 있으니, 사람을 평가하는 그런 기준이 있을까,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미스코리아를 뽑는 기준도 정해진 것이 없다. 이유는 심사위원이 뽑아서 그렇다. 사람의 생각은 천차만별이다.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고,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는데, 여기에 조감도(鳥瞰圖)처럼 하늘에서 생각하는 영적인 입장까지 고려하면, 변수는 수백가지가 된다. 결국 답은 없다. 마치 성자바위같다. 보는 각도에 따라 모두 다르게 아름다우니, 정칠면체같다.
아름다움은 미(美)로 표현한다. 아름다울 미(美)라고 하는데, 양(羊)과 대(大)가 합쳐졌다. 큰 양(羊)은 곧 큰 희생양으로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늘의 사명자를 의미한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곧 하늘이 선택한 그 시대의 번제물이다. 구약은 종으로서 충성과 죽음의 번제물이었다. 신약은 순종과 믿음의 번제물이었다. 성약은 사랑과 생활의 번제물이다. 사랑의 번제물은 사랑하는 자가 정한다.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는 자, 그가 곧 하늘의 큰 사람이요, 사명자이다. 누가 그를 알아볼까? 하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사랑하는 자가 누구인지 알려준다.
화행론과 의사소통은 정보사회에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언론을 읽으면서 ‘사실의 뉴스’를 본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조선일보를 읽으면 조선일보가 보여주고 싶은 사실만을 접할 뿐이다. 한겨레도 마찬가지다. 뉴스의 가치는 ‘팩트’에 있는데, 언론사마다 정치적 이념과 편향이 있어서, 그 프레임을 무시할 수가 없다. 한겨레는 한겨레 입장의 뉴스이고, 조선일보는 조선일보 입장의 뉴스일 뿐이다. 이미 평가된 사실인 것이다. 특히 한국은 진보와 보수의 가치가 극한 대립관계여서, 양측의 기사를 함께 읽으면 내면에 감춰진 진실이 점점점 드러난다. 양측의 사실을 모두 보도하는 그런 기사는 드물다. 결국 독자 스스로 진실을 찾기위해 노력해야한다. 정명석 목사님의 멘토링 잠언 1번이 적용되는 것이다.
뉴스 보도처럼, 언어 전달도 동일하다. 사람의 단순한 착각은 말을 하면 그 말이 입술에서 떠나 상대의 고막으로 들어간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마치 투수가 공을 던지면 포수가 받듯 말을 듣는다고 착각한다. 결코 경청은 받아쓰기로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화법이론의 기본이다. 의미는 화자와 청자 사이에 서로 다른 영역이다. 그래서 역지사지(易地思之)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진정 깨닫는 자는 엄청난 언어 전문가에 속한다. 쉽지 않다.
단적으로 “부부가 천국에서 결혼했다가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이혼한다”는 명언이 있다. 부부가 자동차를 타고 가면, 남편이 운전하고 아내는 옆에 앉는다. 둘은 분명 같은 것을 보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서로의 입장에서 앞을 볼 뿐이다. 전혀 다르다. 그래서 부부싸움이 일어나고, 둘은 영원히 평행선이다. 마치 성자바위와 같다. 어떤 위치에서 보느냐로 보는 것이 모두 달라진다.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것 같아도, 서로의 생각과 인식이 다르므로 전혀 다르게 보는 것이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과 조수석에 앉은 아내의 생각은 하늘과 땅 차이로 생각의 각도가 다른데, 둘은 그것을 모른다. 그래서 갈등이 발생한다.
단체를 운전하는 책임자와 그 단체에 소속한 회원의 입장은 또한 다르다. 나는 언론인으로서 비판적 사고를 가졌었다. 어느날, ‘모순’과 관련한 정명석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들었다. 자기 모순을 고치면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실속적이라는 말씀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내게 보이는 다른 사람의 모든 모순을 나의 거울로 삼으면서 ‘나 만들기’에 신경썼다. 그렇게 하다보니, 삶이 윤택해졌다. 모순(矛盾)은 창과 방패가 서로 다투는 것이다. 내가 남을 비판하면서, 내 자신이 비판한 그 내용으로 살고 있을 때가 많다. 얼마나 모순인가? 내가 나를 비판하는 것에 불과했다. 결국 입을 다물고, 나의 모순을 겸허히 수용하고 고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인생이다. 남은 곧 나의 거울이라고 생각하기, 그것이다.
아름다움은 모순이 점점점 사라진 상태이니, 오늘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겠다.
** 아름다울 미(美) 한자해석 **
아름다울 미(美)는 큰 양이다. 클 대(大), 양 양(羊)이다. 옛날에 양(羊)은 제사에 사용됐다. 제물은 사람을 대신해 희생했기 때문에 가장 아름답고, 가장 깨끗했다. 양 중에서 가장 큰 양이니, ‘아름답다’는 뜻이 됐다.
또, 양(羊)은 흰 색이고, 털이 부드럽고 따뜻한다. 옛날 유목민들은 양가죽을 머리에 둘렀었다. 아름다울 미(美)는 양가죽을 머리에 두른 사람을 말하고, 부족장을 뜻한다.
아름다울 미美는 2개의 한자가 합성된 글자다. 양 양羊과 클 대大가 위아래로 합쳐져 있다. 양은 성경에 나오는 그 양을 말한다. 아벨 즉, 선의 기준자를 뜻한다. 착할 선善에도 양羊이 들어있다. 양은 양고기가 맛있다지만, 여기서는 맛있는 양고기를 의미하지 않고, 제물을 뜻한다. 양은 옛날부터 신앞에 제물로 사용되었다. 제물은 깨끗하고, 정결하고, 순결하고, 구분되고, 완전해야한다. 제물은 흠이 절대 없어야한다. 병든 양은 절대 제물이 될 수가 없었다. 가장 좋은 것을 신앞에 드렸다.
클 대大는 양팔을 크게 벌린 모양이다. 아름다울 미美는 큰 양을 뜻한다. 큰 양은 제물로서 가장 완벽한 조건을 갖춘 것이다. 큰 양은 큰 희생을 의미한다. 성경적 의미로 해석하면, 아름다울 미美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인류를 위한 희생의 번제가 없었다면, 인류는 영원히 죄가운데 죽었을 것이다. 그의 희생으로 우리가 죄에서 자유를 얻은 것이다.
미인은 얼굴을 포함해 몸매의 곡선이 아름답고, 말하는 것을 포함해 다양한 조건을 구비한 여인을 의미하는데…. 본래 미인은 그런 뜻이 아니다. 아름다움의 근본은 마음에 있는 것이다. 마음이 아름답다는 것은 양처럼 희생하고, 배려할 줄 알고, 인내할 줄 알고, 참아낼 줄 알고, 형제의 허물을 덮어줄 줄 알고, 사랑할 줄 아는 그러한 마음인 것이다. 미스코리아선발대회에서 말하는 미의 기준은 얼굴에 국한된 개념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밀알처럼 땅에 떨어져 썩어지는 거룩한 희생 제단에 있는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 요한복음 12장
십자가 희생의 그 근본을 사람으로서 어찌 안다 할 사람이 있을까? 단지 매일 새벽 마음을 세수하면서 과거의 죄를 씻고, 매일 저녁 양심의 거울을 쳐다보면서 자신의 죄를 자백하면서 십자가의 가치를 가슴에 새기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