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우천(雨天)으로도 취소되지 않은 자원봉사에 참여함으로 나는 많은 교훈을 얻었다. 또한 영감(靈感)을 받았다. 영감은 영적인 신령한 감흥이다. 비가 내리는 늦은 오후 월명동을 거닐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또 어디에 있을까, 처음 보는 그 광경에 마음이 황홀하기도 했다. 그 어느 때와 전혀 다른 비오는 날의 월명동이었다. 빗물에 스미는 한폭의 수채화같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서울 나의 집, 오후 9시 30분이다. 오후 6시에 월명동을 출발해 벌써 도착해 글을 남긴다. 버스에서 잠이 들어 정신이 피곤하지도 않다. 뜻있는 일을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고 행복하다. 앞으로도 자원봉사에 자주 참여해야겠다.
오늘 자원봉사는 “봉사다운 봉사”라고 자부할 정도로 묵직하고 중요한 일이었다. 2년전 ‘통나무 제거 자원봉사’에 비견할 정도로 남자의 근육을 요하는 작업이었고, 나는 기꺼이 있는 힘을 발휘했다. 할 때 해야 끝나면 아쉽지가 않다.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매사가 그렇다.

테이블 조립 자원봉사에 사용된 드라이버들
오늘은 작업을 하면서 ‘디테일의 중요성’을 깊게 깨달았다. 내 삶에 지혜로 적용하기로 다짐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정명석 목사님은 10년의 십자가를 견디고 나오신 이후, 가지치기 멘토링을 지금껏 진행하셨다. 가지치기는 디테일을 의미한다고 오늘은 깨달아졌다. 가지치기를 하지 않아도 나무들은 살기는 살 것이다. 그러나, 가지치기를 해야 나무의 품격이 달라지고, 작품이 되고, 겨울의 눈폭탄이 걱정되지 않는다. 인생도 모든 일에 디테일을 말끔하게 해야만 만사가 편하다.
모든 자원봉사가 끝나고, 나는 자유시간에 월명동을 홀로 유유히 돌아다녔다. 그때 내 눈에 펼쳐진 고요의 아름다움을 잊을 수가 없다. 비오는 날의 월명동은 한 폭의 수채화이다. 폭포수와 운동장과 돌조경과 숲과 청기와와 잔디밭과 약수터와 자연성전과 모든 장면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내가 마치 그림속으로 들어가는 그런 느낌이다. 햇살 가득한 월명동과 완전히 다른 신비였다. 30년 신앙생활을 하면서, 오늘 본 월명동이 정말로 행복했다.
비가 오는데, 왜 이렇게 아름답지?
나는 노트를 꺼내 몇 줄의 느낌을 적었다. 빗물에 노트가 젖어서 글씨가 적히지 않았으나, 기록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 비오는 날의 수채화, 비옷을 입고 이곳을 걸어가니, 빗방울속에서 한 폭의 수채화가 펼쳐진다. 나도 그 속으로 흘러간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사람이 나무가 되어서 걸어다닐 수가 있을까? 나는 수채화 속에 들어와 바위며, 숲이며, 물이며, 자연성전 그 웅장함에서 작고 연약한 달팽이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한다.
게다가 오뎅과 떡복이와 파전과 호떡이 압권이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휴게소를 들르지 않겠다는 공지사항을 확인한 나는 벌써 배가 고팠다. 호떡집에서 호떡 3개를 먹고, 오뎅집에서 오뎅 5개를 먹고, 떡복이를 사서 함께 온 분들과 함께 나눠 먹었다. 그래도 배가 고팠다. 오뎅이 다시 생각났다. 비가 오는 것이 너무 좋은 월명동으로 아이처럼 뛰어가, 오뎅을 다시 집었다. 내가 서울에서 먹던 오뎅국물 맛이 아니었으나, 나는 비판의 국물을 속으로 삼키고 오뎅 파는 분께,
“오뎅이 쫄깃쫄깃하고 맛있어요. 국물도 맛있고, 시원해요”
“그래요? 쌤께서 비오는 날에 오뎅을 팔라고 해서 팔고 있어요. 비오는 날에 떡복이도 팔고, 오뎅을 팔면 좋지? 라고 했어요”
그 말을 듣는데, 얼마나 반갑던지 오뎅이 말씀처럼 확 당겼다. 배가 고플 때는 밥, 비가 내릴 때는 오뎅이다. 절묘한 아름다움은 ‘맛과 멋’이 어울어진 비오는 날의 월명동이었다.
나는 성자바위를 향해 달려가 그 품에 안겼고, 또 한걸음에 성령바위로 달려가 그 매력적인 입술에 안겼고, 또 하얀 성자주님의 조각상으로 달려가 모자를 벗고 내 마음의 고백을 드렸고, 상징의 언어로 하나님으로 인식되는 약수앞에서 하루의 고단함을 내려놓았다.
내 모든 인본은 씻겨가거라.
내 아픈 과거는 모두 치유되거라.
삶의 모든 슬픔은 안위되거라.
하나님의 손길을 간절히 붙들며 월명동을 내려왔다. 오늘 참으로 아름다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