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오늘 정말 맑다. 오전 일찍 집에서 출발해 교회에 왔다. 내가 맨 먼저 도착한 것 같다. 내가 무슨 특별한 도움이 될까싶지만, 1달에 1번 혹은 2달에 1번 정도 정기적으로 내게 도착하는 교회 식사 당번(當番)은 내 삶의 소중한 시간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니, 교회의 봉사는 곧 그리스도의 육체와 함께 일하는 삶이다.
시장에서 미리 야채와 재료를 사온 성도가 교회 문앞에 도착해, 함께 짐들을 올리고 나니, ‘양파 까기’ 임무가 주어졌다. 칼로 빙그르르 양파 뿌리를 자르고, 껍질을 벗기니, 눈이 몹시 맵다. 채 10개도 작업하기 전에 눈물이 흐른다. 여자 성도들도 눈이 맵기는 비슷할텐데, 매운 표정이 없다. 모든 사역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배가 많이 고파서 김밥을 먹고 이제 눈을 붙여야겠다. 내일 베트남 쌀국수 맛있겠다.
20180520 AM 1:13
잤다가 다시 일어났다. 어제 교회 봉사했던 일이 생각났다. 양파 다듬은 일이며, 향초로 유명한 고수풀 냄새며, 베트남 쌀국수를 준비하는 성도들의 손길은 정성이 가득했다. 어디 쉬운 일이 있겠는가? 모든 일이 그렇지만, 김치를 만드는 일에도 온갖 양념과 온갖 손길과 온갖 마음이 들어가야 맛이 스민다. 육수를 내는 것도 그저 고기를 삶는 것이 아니다. 육수를 삶을 고기를 정결하게 하는 작업은 청결함 그 자체다. 어찌 보면, 구약의 제물을 씻는 과정이 음식에도 적용된다. 가족이 먹는 마음으로 닭의 내부를 깨끗이 씻고 씻은 다음에 그제서야 육수를 만든다.
맨 마지막 사역은 닭가슴살 잘게 나누기였다. 메디컬 드라마에서 의사들이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하는 일이 있다. 손을 소독하는 일이다. 손을 정결하게 씻은 다음에 수술용 장갑을 낀다. 닭가슴살을 찟기 위해서 손을 퐁퐁으로 정결하게 씻은 다음에 1회용 장갑을 끼고 하나하나 잘게 찟었다. 그 닭고기는 베트남 쌀국수 위에 올려질 것이다.
그 작업을 하는 동안, 초등학생 1명이 돕겠다고 왔다. 1회용 장갑을 끼더니, 제법 손길이 빠르다. 쓱쓱쓱…..
내가 물었다.
“너는 책 좋아하니?”
“예”
“무슨 책이 제일 재밌었니?”
“음…. 챨리와 초콜릿 공장요!!”
“그래? 내용이 뭐야?”
내가 물으니, 그 초등학생은 챨리와 초콜릿 공장의 내용을 주인공 이름까지 말하면서 자세히 설명하는데,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낸다. 평소 자주 책의 내용을 요약해서 설명한다면, 책을 통한 토론훈련에 탁월한 실력을 갖출 것 같았다. 손은 계속 닭고기를 잘게 자르면서, 귀는 그 학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챨리가 결국 초콜릿 공장의 후계자가 되었다는 내용으로 마침표를 찍자, 내가 “나는 어린왕자를 읽었는데, 너도 읽었니?”라고 하니, 그 학생도 “예, 어린왕자 정말 재밌었어요”
“어떤 장면이 제일 재밌었니?”
내가 물으니, 이런 저런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어린왕자에 대한 인상이 재밌었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음식도 맛있으면 기억에 남듯, 책도 음식처럼 재밌으면 그 내용과 장면이 맛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교회 식사 봉사는 즐겁게 마쳤다. 그 아이에게 내가 “나는 날마다 일기를 쓴단다”라고 하니, 놀라는 눈치다. 나는 날마다 일기쓰는 것을 습관으로 가지고 있다. 아이들도 이런 일기쓰기 습관을 가졌으면 좋겠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길, 잠시 눈을 붙였다가 집에 와서 청소하고, 드라마를 보고, 잠을 잤다가 이제 일어나 일기를 쓰면서 하루를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