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승리(勝利)는 ‘이김으로 이익을 얻은 것’이다. ‘이김과 이익’이 곧 승리다. 승(勝)은 月拳力의 합성이다. 주먹에 힘을 불끈 쥔 모습, ‘파이팅’하는 모습이다. 이기기 위해서는 모든 힘을 하나로 뭉쳐야 가능하다. 축구팀이 이기기 위해서는 전략과 전술과 체력을 하나로 뭉쳐야 가능하다. ‘뭉침’은 팀원들이 각각 전체를 향해 하나로 움직이는 것이다. 군대가 강한 이유는 깃발과 명령에 따라 한 사람처럼 움직여서 그렇다.
5월 26일 섭리사 평화배구대회가 월명동에서 열렸다. 그날 나는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주일설교말씀을 통해서 평화배구대회의 개최취지 및 신앙적 운동의 근본을 듣고, 배움으로 깨달았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팀이 결국 승리한다는 것, 그것은 실체로 그러하고, 또한 상징으로 그러하다.
일반적인 사회단체는 단체의 리더가 상석(上席)에 앉아서 경기를 관람하고, 우승자에게 상을 주거나, VIP를 만나면서 인사를 나눈다. 섭리사 평화배구대회는 사회단체의 형식과는 거리가 멀다. 오직 신앙의 관점에서 운동도 ‘생활신앙’이라는 긴장감을 불어 넣는다. 섭리사 평화배구대회의 최고 가치는 ‘자리 만들기’였다.
평화배구대회가 열린 무대는 월명동 야심작 하나님의 백보좌 앞이다. 사람의 눈으로 본다면, 유형의 돌조경 건축물이지만, 상징성과 예술성으로 하나님의 백보좌는 ‘하나님의 의자 디자인’으로서, 특별히 예비된 지정 좌석이다. 지정석은 오직 그 사람만 앉듯이, 하나님의 의자는 하나님을 위해 마련되었다. 믿음과 사랑으로 그곳을 바라보는 자에겐 하나님이 앉아 계시니, 평화배구대회는 하나님 앞에서 개회가 선언된 것이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이던가!!!
하나님이 보실 때, 섭리사 평화배구대회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운동행사가 되었으니, 신과 인간이 함께 어울어지는 무대가 된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깃발을 꽂는다. 산을 정복해도 깃발을 꽂는다. 우승자는 깃발을 꽂듯 월계관과 메달을 목에 건다. 깃발과 메달과 월계관은 ‘승리의 표시’다. 깃발은 곧 왕(王)을 상징한다. 왕(王)은 곧 주(主)다. 왕은 국가의 최고 위치이고, 주(主)는 크고 작은 모든 단체의 최고 위치를 뜻한다. 깃발이 꽂히면 ‘이김’의 표시다.
성경에서도 야곱을 놓고 라헬과 레아가 서로 데려가려고 언쟁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자기편으로 삼아야 잠자리를 할 수 있다. 잠자리를 해야 생명을 잉태할 수 있다. 남편(男便)은 곧 내 편이 된 남자를 말한다. 그처럼 모든 삶에서 주(主)를 자기 편으로 삼는 팀이 생명과 승리를 얻는다.
창세기 사건에서 아담은 하와의 말을 들어줬다. 아담이 아내인 하와 편이 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이다. 하나님 편이 못 된 아담은 신앙에서 실패했다. 베드로는 계집종이 “예수님과 같은 편이다”라고 따지자, “나는 예수님을 모른다”라고 말하면서, 예수님 편이 안되었다. 나중에 참회하고, 산헤드린 국회의원들 앞에서 “나는 예수님의 제자다”라고 시인하면서 증거의 삶을 살았다.
섭리사 평화배구대회가 개최되면서 팀별 리그전으로 수십번의 경기가 펼쳐졌는데, 팀마다 평화배구대회의 대회장(정명석 총재님)께 코치를 받은 팀이 있고, 함께 경기에 뛰어주길 부탁한 팀이 있었다. 함께 경기에 뛰어주길 부탁한 팀은 ‘자리’를 만들고서 했다. 함께 배구를 하는 것과 배구경기를 보여드리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하나님의 백보좌를 지정석으로 마련하듯, 자리를 특별히 마련한 팀은 함께 배구경기에 참여하면서, 그날의 신앙적 승리를 했고, 운동경기에서도 실력 이상의 결과를 이뤄냈다. 예수 그리스도를 깃발로 삼고 살아낸 기독공동체는 로마의 주인이 되었고, 기독교를 핍박한 로마제국은 패망했다. 십자가 문양을 투구에 새기고 전쟁에 참여한 콘스탄틴대제는 전쟁에 승리해 황제가 되었다. 신앙적 승리는 곧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 달려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하나님의 사명자’가 함께 함으로 운명이 결정된다. 배구경기가 그러하듯 생활속 모든 삶이 그러한 것이다. 신앙의 승리가 생활의 승리이다.
사람은 누구나 유익(有益)을 얻길 원한다. 이익(利益)은 좋은 것이다. 이익을 얻으려면 ‘이겨야’ 한다. 이김은 곧 이익이다. 이기면 모든 것을 차지한다. 이겼다는 것은 ‘주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주(主)와 하나가 되면 주인이 되어서 그 모든 생활의 경기에서 승리를 얻는다. 이것이 신앙의 승리가 생활의 승리로 이어지는 것이다.
‘주를 내 편으로 삼는 것’의 생활속 적용은 다양한 해석이 있다. 나의 경우, 내가 쓴 수천권의 책들중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수십권이다. 그 중에서 한자 쉽게 나누기, 블로그 마케팅, 저품질 블로그 탈출기 등은 인기서적이다. 저렴한 가격에 수십만권이 팔렸다. 2013년 주일말씀에 ‘왕의 돛’이란 말씀이 있었다. 왕의 돛을 달 듯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자는 승리한다는 내용이다. 베스트셀러가 된 나의 모든 책들을 조사해보니,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모든 책의 머리말에 정명석 목사님이 내 인생의 멘토이고, 글쓰는 방법을 지도해주셨다는 내용을 기록했다. 하나님의 사람을 만난 이야기를 머리말에 마련하듯, ‘증거의 자리’를 마련한 그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아서 ‘베스트셀러의 영예’가 선물로 주어졌다고 나는 고백한다. 앞으로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활속 승리의 신앙을 꾸준히 살아야겠다.
– 가장 쉬운 한자공부 책에 쓴 글
<나의 인생 멘토 정명석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결혼의 결별은 깨진 항아리처럼 과거는 금(線)이 가있다. 항아리는 깨져도 다시 붙일 수 있지만, 사람과 사람의 깨어짐은 결코 그럴 수 없음을 경험자는 수긍할 것이다. 아주 인생이 절망적이었을 때, 정명석 선생님도 그러한 절망의 벽에 갇혀서 고독한 지구에서 태양의 빛줄기를 기다리듯 ‘희망의 방향’을 제시했었다. 가장 불행한 순간, 정명석 선생님은 “나는 행복하다”고 스스로 믿고, 불행속에서 행복을 꽃피운 위대한 실학적 사상가로서 나는 정명석 선생님을 존경한다.
내가 삶의 모델로서 삼고 존중하는 정명석 선생님이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아서 다행이기도 하고, 때론 인생이 너무 괴롭다 보니 고독의 상징과 같은 세상의 유혹이 그리울 때도 없지는 않지만, 그럴 때마다 내 손을 붙잡아준 인물은 정신의 지도자로서 정명석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나의 책은 언제나 내 인생의 멘토 정명석 선생님께 드리고 싶다.
나와 그는 사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고, 함께 인생을 살았던 시절이 너무 부족해서 때론 그가 나를 기억함이 마치 공자와 맹자처럼 시간과 공간의 간격이 너무 많을 수도 있겠다. 정명석 선생님을 향한 나의 존중은 어쩌면 나의 일방적인 마음일 수도 있다. 그래도 나의 젊음이 아름다웠었고, 그 젊음이 낙옆처럼 쓸쓸한 적도 있었고, 겨울이 오랫동안 깊었을 때 나는 정명석 선생님이 외친 설교말씀으로 따뜻한 봄을 맞이했었다. 내 인생의 진솔한 고백이다.
때론 내가 나의 정명석 선생님을 인생의 스승으로서 글에 기록하는 것이 혹시 ‘결례’가 되지는 않을까, 스스로 고민도 된다. 내 삶 자체가 깨어진 항아리처럼 아주 볼품이 없으니, 스승을 위해서 스승의 존함을 기록함이 제자로서 부끄러운 기록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조선왕조실록의 탄생은 다양한 각도의 사초(史草)가 존재했기때문이듯이, 나의 작은 기록이 누군가의 위대한 역사를 위해서 ‘사초(史草)’가 될 수 있다면….
– 저품질 블로그 탈출법에 쓴 글
‘나는 말보다 실천이다’는 철학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승화시키며, 열정적 도전 정신을 교육해주신 내 인생의 스승인 정명석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나는 그를 통해 글이 곧 삶이고, 삶이 글과 하나인 것을 배웠고, 그 정신을 생활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정명석 선생님은 서울교육방송에서 주최한 ‘2013 가장 아름다운 인물’ 서울문학상 대상에 선정됐다. 이 책의 진실한 마음을 나의 스승에게 바치고 싶다.
– 3일만에 작가되기에 쓴 글
나의 근본자, 모든 인류의 근원자가 되시는 우주의 창조주께 진정 감사드린다. 우주의 부모로서 불효자식과 같은 인류를 향해 얼마나 슬퍼할까? 아직 부모로서 경험이 없는 나로서 그 심정을 깊게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창조주를 우주의 부모로서 믿는다.
더불어 나에게 창조주의 창조목적을 알게 해준 정명석 선생님께도 깊은 고마움과 감사를 드린다. 그는 언제나 정직했고 진실했다. 단지 세상이 지구처럼 그를 향해 배반의 밤을 보였을 뿐이다. 그는 언제나 신실함의 종교인으로서 사랑의 목회자였다. 그는 말보다 실천이었다. 실천보다 말뿐인 이 비겁한 정보 홍수의 시대에 그가 걸어간 ‘실천적 진리’의 길은 나의 가야할 인생의 지표가 되었다. 나도 묵묵히 그의 발자취를 따라 가기로 작정했다. 정명석 선생님은 나의 진정한 인생 멘토이다. 이 책을 그에게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