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 장의자는 지하철과 다르다.
[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교회에 가면, 안내위원이 있다. 안내위원은 자리를 안내하는데, 간혹 앞좌석부터 앉게하는 경우가 있다. 예배를 주관하는 입장에서 영상촬영 때문이다. 이러한 안내문화는 타율적이다. 자율적 안내문화를 형성하면, 안내위원도 좋고, 성도들도 좋을 수 있다. 사람마다 의향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자율적 자리배치는 교역자의 의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자율적 자리배치가 진행되는 교회는 얻는 효과가 많다. 질서를 성도들이 스스로 지키는 훈련이 예배때마다 진행되므로, 그 무엇을 하더라도 질서의식이 스스로 갖게 된다. 예배를 통한 문화운동이 실시되는 것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러한 주장을 했지만, 실현된 교회는 본 적이 아직 없다.
지하철은 맨 끝 좌석이 명당이다. 나도 끝좌석에 앉길 선호한다. 거기에 앉아야 한쪽만 신경써도 되고, 팔을 얹어서 잠시 눈을 붙일 수가 있다. 참 편한 좌석이다. 지하철이 텅 비어있다면, 나는 맨 끝좌석에 가서 앉는다. 교회 장의자도 지하철처럼 생겼는데, 나는 교회장의자에 앉을 때 안쪽부터 앉는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지하철은 모든 좌석이 오픈형인데, 교회 장의자는 오픈형이 아니다. 끝좌석을 통해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끝좌석에 앉는 것은 장의자 출입구를 막는 것과 같다. 이 단순한 사실을 인지하는 사람이 참 드물다.
자율적 좌석배치는 간단하다. 장의자에 만약 4명이 앉는다면, ‘앞쪽부터, 안쪽부터’라고 알려주면 된다. 그러면, 앞쪽의 적당한 곳에 안쪽에 자리를 앉게 된다. 만약, 중간에 일어나야할 성도가 있다면, 안쪽이 이미 앉은 좌석에 가서 끝좌석에 앉으면 된다. 안내위원이 모든 성도들의 좌석을 지정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성도들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서 자신이 앉고 싶은 좌석을 선택할 수 있고, 늦은 성도는 선택권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교회안내에서 성도들에게 반드시 교육해야할 것은 ‘안쪽부터’이다. 왜 교회 장의자에서 맨끝좌석에 2사람이 각각 앉아있을까? 가운데는 텅 비어있다. 그만큼 성도들의 교통이 멀어졌다는 것일까? 멀어졌다면 예배를 통해서 서로 인사하는 운동을 하면 된다. 예배를 준비하는 사회자는 ‘옆사람과 가볍게 인사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라고 1마디만 해준다면 교회분위기는 금새 온화해진다. 찬양을 하다보면 인사하는 타이밍을 놓쳐서 서로 서먹해질 수도 있고, 안내위원에 따라서 의무적으로 앉다보니, 불편한 사람과 앉는 경우도 있다. 이런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해서 서로 인사하는 시간은 반드시 가져야하는데, 교회마다 그 중요성을 잘 알지 못한다.
끝좌석부터 앉는 문화만 개선되어도 교회 좌석배치는 상당히 개선될 수 있다.
“교회 장의자는 지하철이 아닙니다”라는 캠페인을 예배때 광고로 하면 좋다. 캠페인은 매달 1개씩 실천하는 것인데, 그저 구호로 끝나면 안된다. 구호를 끝나지 않으려면 교역자의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 교역자가 의식이 없으면 성도들은 잘 고쳐지지 않고, 항상 안내위원이 움직여야 질서가 잡힌다. 안내위원이 해야할 부분이 있고, 성도들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선택의 폭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내가 앉는 의자가 만약 특별히 지정되어 있다면, 교역자의 좌석처럼 지정되어 있다면 그때는 대우받는 느낌을 받는다. 반면, 평신도로서 교회에 도착했는데, 그 많은 좌석에서 1군데를 지정해서 거기에만 앉아야한다면, 얼마나 불편한가? 특별석과 개념이 전혀 다르다. 누구나 자유의지가 있다. 자유의지가 제한당한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자유의지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 교회예배문화의 질서를 잡는 방법이 있다면, 문화시민으로서 실천하는 것도 바람직한 것이다.
월명동에 가면, 안내소에서 ‘사진촬영금지’ 스티커를 각자가 붙인다. 만약, 월명동에서 모든 성도들을 따라다니면서 핸드폰 촬영을 감시하거나, 혹은 핸드폰을 강제로 수거한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월명동은 최소한의 질서로서 성도들에게 자유의지를 준 것이다. 스티커를 떼고 간혹 사진을 촬영하는 성도가 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 작은 실천으로 질서문화가 잡혔다. 교회 장의자도 충분히 자율성으로 좌석배치가 이뤄질 수 있다는 나는 생각한다.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