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사회학을 지탱하는 양대산맥, 하버마스와 루만. 루만의 기능구조적 체계이론은 독일을 중심으로 EU의 사회, 경제, 학문, 교육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 루만이 정의하는 사회는 사람이 아닌 사람의 소통구조이다. 사람의 관계를 사회의 구성요소로 구성하고, 사람을 사회에서 배제하는 독특한 사회이론이 불러일으킨 사람에 대한 관찰자적 관점은 비판의 도마에 자주 올랐으나, 오해에서 이해로 전환하면 루만의 체계이론은 사회의 기능과 변화에 매우 탁월한 해석과 문제해결능력을 제공한다. 루만의 체계이론이 뭔지 알려면 9년을 공부해야한다하니, 매우 복잡한 사회이론임에 틀림없다. 분명한 것은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론이다.
피고인 13회, 드디어 1회의 연장선이다. 피고인 1회에서 박정우 검사가 사형수 판결을 받고 탈옥하는 장면이 먼저 나왔다가, 역순으로 돌아가면서 과거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12회가 지나고 오늘 비로서 탈옥했다. 최고의 검사로서, 아내를 죽인 살인범, 사형수로 확정되었다가, 이제는 검사로서 탈옥수로 신분이 바뀐 박정우 검사는 오직 딸을 찾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루만의 체계이론이 피고인 드라마를 보면서 겹쳐져 보였다. 특히 두 인물, 박정우 검사와 성규, 강준혁 검사와 차선호(차민호). 절묘한 대비다. 4사람의 관계는 본래, 박정우 검사와 강준혁 검사가 서로 신뢰가 두터웠다. 박정우와 강준혁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였다. 절친이었으나, 한명의 여자친구를 놓고서 박정우 검사가 결혼을 하면서, 그저 강준혁 검사는 배제당한 느낌 정도였는데, 어느날, 박정우 검사가 누명을 쓰고서 아내를 죽인 살인범이 되면서, 강준혁 검사는 차민호를 만나게 된다.
차민호와 성규는 서로 범죄를 저지른 공범관계다. 차민호가 성규를 사주해서, 박정우 검사의 딸을 납치했고, 차민호는 박정우 검사의 아내를 살인했다. 둘은 서로 관계성이 매우 돈독하고, 공범은 곧 협력관계인데, 성규는 결국 차민호를 배신한다. 차민호가 약속을 지켜주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12회가 지나면서, 관계가 완전히 달라졌다. 박정우 검사와 강준혁 검사는 서로 절단났고, 절대관계가 되었다. 둘의 관계는 검사와 범인의 관계로서 소통구조로 본다면 대적관계다. 반면, 박정우 검사와 성규는 서로 협력관계다. 성규가 박정우 검사의 딸을 보호하고 있어서다. 차민호와 강준혁 검사는 서로 협력관계인데, 범죄를 조작한 공범관계다. 참으로 절묘한 대비관계다.
왜 강준혁은 차민호가 범죄자이고, 살인범인줄 알면서도 범죄자를 잡지 못하는 것일까? 옥상에서 차민호가 “내가 박정우 검사 아내를 찌른 칼이 있어요. 재심을 열 증거물인데, 박정우 검사가 그것을 찾을 겁니다”라고 하니까, 강준혁은 그 증거물을 자신이 찾아서 없애주겠다고 한다. 증거인멸을 돕겠다는 것인데, 서로의 소통구조가 바뀌니까, 선악의 구도도 바뀌고 판단방향도 바뀐다. 강준혁이 박정우 검사와 친분이 두터웠다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판단인데, 강준혁이 차민호와 너무 많은 관계를 형성하면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결국 차민호가 범죄자인줄 알면서도 강준혁은 거부할 수 없는 공범관계가 되버린 것이다. 좋은 일을 도모했다면 공생관계이겠지만, 차민호의 범죄사실을 알고도 묵인했으니, 강준혁 검사는 공범관계에 불과하다.
사회집단을 검찰집단, 범죄집단으로 해석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을 드라마에서도 드러난다. 검찰집단이나 친구집단으로 해석하면, 박정우와 강준혁은 서로 친구면서 검사인데, 둘의 소통구조는 적대관계로 변질됐다. 그러나, 소통구조를 사회의 구성요소로 규정하면, 박정우 검사와 성규는 서로가 지속적인 교감이 진행됐고, 교도소에 함께 수감되면서, 이후 성규가 하연이(박정우 검사의 딸)를 돌보면서 서로의 소통구조가 탄탄해졌다. 또한 차민호와 강준혁 검사는 서로 비밀스런 만남을 자주 갖게 되면서, 나중에는 서로의 은밀한 범죄사실을 알게되면서,(강준혁 검사는 범죄사건 당일 그곳에 있었으나, CCTV에서 스스로 삭제했었다.) 차선호는 강준혁이 원하는 UN파견 검사직을 후원하면서, 둘의 관계는 매우 끈끈해진다. 관계적 사회로 본다면, 박정우 검사와 성규의 관계가 더욱 친밀한 사회체계가 형성되었고, 차선호와 강준혁 검사의 관계도 범죄를 목적으로 성립되었으나, 어쨌든 서로의 목적이 부합하는 친밀집단의 체계가 형성된 것으로 해석된다. 자주 만나서, 서로가 서로의 신뢰성을 확보하면서, 진실하게 의사소통을 하는 것, 친밀체계를 형성하는 기본요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