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나는 생명을 전도할 때는 배수진(背水陣)이다. 성경말씀에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고,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을 벗어주라”고 했다. 그렇게 함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얻고, 나는 전도를 한다.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오래전, “왜 선교부흥이 안될까요?”라고 누군가 내게 물었다. 내가 대답할 질문은 아니지만, 나는 전도할 때마다 “전도한 사람의 애절한 심정으로 강의하는 사람의 절대적 부족”이라고 생각했다. 믿고 맡길만한 강사 1명 만나기가 정말로 힘들다. 나는 지금도 전도할 생명이 수십명이다. 모두 나와 연결된 사람들이다. 인터뷰를 해주고, 홍보를 해주고, 명예로운 상을 선물하면서 인맥을 맺어온 사람들이다.
가끔, 내가 직접 강의할까, 라고 생각도 했고, 그렇게 강의안도 만들었지만, 연결하는 것과 강의하는 것이 반드시 나뉘어야 생명전도에 효과가 높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렇게는 하지 않는다.
내가 위안을 받는 근본은 월명동 그 사람, 정명석 목사님 덕분이다. 월명동에서 그때 봤던 그 모습, 땡볕에서 탁구를 하고, 비가 내리는데 배구를 하고, 우산을 쓰지 않고서 ‘우천 골프’를 치시던 그 모습을 보면서, 영광을 받을 분인데, 제자들이 이끄는대로 모든 것을 행하면서, 할 수 있는 모든 한계까지 실천하시던 그 모습이 눈에 아른거른다.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라던 그 성경말씀을 따라 지금도 오리를 가자면 백리, 천리도 가시는 헌신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운동행사가 끝나고, 비에 젖은 그 모습 그대로 1사람 1사람 호떡을 나눠주시던 그 모습이 가슴속에 맺힌다. 간혹 ‘무참한 심경으로 생명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는 회의감이 들 때마다 월명동 정명석 목사님이 보여주신 그 모습을 통해 나는 ‘생명을 위한 희생’이 옳음을 확인한다.
마음이 세모처럼 뾰족해질 때도,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둥근 원이 되어야한다. 지난달, 그토록 많이 도와줬던 어떤 분이 교회에 잘 나오지 않았다. 성직자 한 분이 내게 그 분과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해서, 연결이 되었다. 그렇게 3명이 월명동에 방문했고, 다시 교회에 나오기로 약속했다. 더불어, 나도 그 분의 일을 도우면서 생명을 관리하기로 다시 다짐했다.
3년 전에 내가 어렵게 전도한 생명인데, 섭리에서 살아남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다시 깨닫는다. 다행히 이번에 다시 연결되면서 내가 몇가지 사건을 도와줬더니, “장국장님 덕분에 큰 도움을 받았어요”라고 했다. 그때를 기회로 눈을 쳐다보면서, “월명동에 방문했을 때, 먼발치지만 월명동 그 분을 만난 것을 기점으로 하늘이 빛을 비추신 것이죠. 주일은 반드시 교회로 가야해요. 틈이 나는대로 말씀을 체계적으로 배우셔야하구요. 알았죠?”
그녀는 그렇게 하기로 나와 약속했다.
가끔, 누군가 내게 멘토링을 요구하면, 나는 항상 ‘에린 브로코비치’ 영화를 추천한다. 그 주인공처럼 열정적으로 행하면 안될 것이 없다고 조언한다. 전도와 관리와 강의에 진정 필요한 정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처한 곳으로 들어가야한다. 생명을 살리기위해서는 옷이 더렵혀지는 것이 당연하다. 농부가 양복을 입고 농사를 짓지는 않는다. 모세가 이집트 백성을 빼내려고 다시 이집트로 들어갔듯이, 성자가 지구행성 생명을 구원하려고 지구촌에 내려왔듯이, 생명을 살리는 것은 ‘여봐라’(영광)에서 되지 않고, ‘소금의 희생’으로만 가능하다고 나는 확언한다.
오늘, 에린 브로코비치 영화 다운 받아서, 다시 정신무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