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풍수지리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형상보다 ‘바라봄’이다. 각도 때문이다. 풍수지리설의 기본 원칙은 어떤 각도에서 어떻게 보이느냐이다. 어떤 각도는 곧 위치이며, 관점이다. 산(山)이 곧 관점이다. 풍수지리 전문가들이 산의 능선을 타고서 이곳 저곳을 다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가령, 월명동의 풍수지리를 정말로 알려고 한다면, 전문가라고 한다면, 주변 산을 모두 밟아본 자여야한다. 인대산에서 볼 때, 월명동이 왕좌처럼 보이는 것, 그와 같다.
청와대를 놓고 터가 안 좋다고 하는 이유는 우백호(右白虎)라고 불리는 인왕산이 청와대를 보고 있지 않아서이다. 살짝 다른 곳을 보고 있어서, 말들이 많은 것이다. 풍수지리학적으로 대통령의 수난시대는 논리적인 근거는 된다. 그렇다고 풍수 때문에 이 나라 정치가 그렇겠는가? 왕권은 권력이라서 늘상 쟁(爭)이다. 아무리 풍수가 좋은 곳에 있어도 사람끼리 싸우면 그것은 헛일이다. 아무리 좋은 잔치를 벌여도, 마음이 맞지 않으면 즐겁지 않은 것처럼, 사람과 사람의 풍수, 인맥풍수가 자연풍수를 다스린다.
월명동 그 사람, 정명석 목사님은 월명동에서 했던 많은 일중에 ‘앞산의 큰 나무들의 가지치기’라고 들었다. 이유는 하나다. 대둔산이 보이게 하려고. 풍수지리학적으로 ‘대둔산이 월명동을 보게 하려고’와 같다. 대둔산의 정기가 월명동에 오려면, 보여야한다. 월명동에서 대둔산이 안 보이면, 대둔산도 월명동을 못 본다. 이치는 같다. 보여야 그 기운이 도달한다는 것이 풍수지리학적 관점이다. 사람끼리도 중간에 장애물이 있으면 서로 통하지 못하듯 그렇다.
풍수지리학을 배우면 자주 나오는 전문용어로 주산, 안산, 좌청룡, 우백호이다. 중심은 ‘터’이고, 터는 곧 자신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할 것이 하나 있다. 터와 관찰자다. 관찰자는 항상 터를 마주 본다. 여기서 혼동이 생긴다. 가령, 동대문은 동쪽에 있어서 동대문이다. 동(東)은 해가 뜨는 쪽이므로 항상 ‘양’(陽)이다. 또한 오른쪽이 왼쪽보다 양(陽)이다. 그런데, 왕과 관찰자의 입장에서 정반대가 된다. 왕과 신하는 항상 마주보므로, 신하들이 우측을 양(陽)이라고 하면, 그 방향이 왕의 왼쪽이 된다. 그래서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순서로 서열이 정해진 것이다.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관찰자와 터는 항상 좌우가 바뀐다. 그래서 돌아서서 좌청룡, 우백호가 되고, 뒷산은 주산(主山)이고, 앞산은 안산(案山)이 된다. 주산은 든든한 산으로 ‘아버지의 역할’이고, 안산(案山)은 편안한 산으로 ‘아내’의 역할이다. 좌청룡과 우백호는 협력하는 동역자요, 친구 개념이다. 산이 4개인데, 모두 중요한 산들이며, 뒷산은 터의 뿌리이고, 앞산은 터의 짝이다. 개념이 그렇다. 경복궁이 왕의 터이니, 경복궁을 중심으로 남산이 안산(案山)에 해당되고, 북악산은 주산(主山)이고, 인왕산은 우측산으로 우백호(右白虎) 낙산은 좌청룡에 해당된다. 그래서 남산에는 숭례문(崇禮門)이 있고, 신하의 충성을 상징한다. 조선시대 왕들은 현재 세종대왕이 보는 방향으로 앉아 있었다.
풍수지리에서 주산과 안산과 좌청룡 우백호를 정할 때는 동서남북의 방향이 아니다. 터를 중심으로 뒷산이 주산이고, 앞산이 안산이며, 옆산이 각각 좌청룡 우백호이다. 앞산에는 물론 배산임수(背山臨水)로서 물이 흘러간다. 이것이 풍수의 가장 기본 원리이다.
** 나는 월명동의 풍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언제든 기회가 된다면 산맥을 타고 월명동을 중심으로 풍수여행도 해보고 싶다. 직접 보면서 느끼는 ‘순례의 행복’은 체험을 통해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 주산(主山)은 주인공 산으로, 터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핵심의 산이다. 주산(主山)은 산맥의 끝이며, 주산(主山) 밑에 명당 자리가 나타난다.
** 풍수지리는 관찰자 중심이 아니고, ‘터’ 중심이다. 왜냐면 터에서 사람이 살기 때문이다. ‘터와 산’의 관계를 논하는 것이 풍수지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