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오늘 주일예배 말씀은 ‘사연’(事緣)이다. 사연은 사건(事件)의 인연(因緣)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문화는 한국적 정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했던 동이족의 문화가 지금까지 면면히 흐르고, 이스라엘 민족도 사연을 소중하게 생각했고, 오늘 주제 말씀이 되었다. 어제 행사의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말씀이 오전에 도착했고, 교역자는 평소 실력대로 힘껏 설교를 전했다. 월명동 자연성전의 연못 팔각정에 새겨진 돌조각 작품을 만든 조각가 사연이 핵심이었다. 들어보니, 결국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작품이라고 깨달으신 내용이다.
말씀중에 “성도끼리 은혜받은 내용을 사연으로 간증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라”는 말씀도 있었는데, 내가 소속된 팀은 그 말씀을 따라 월명동에서 1달 동안 자원봉사했던 회원의 간증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그 회원은 준비한 자료가 상당했는데, 간략하게 요약해서 “오늘 말씀처럼 사연을 알고 보면 깨달음이 깊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간증을 시작했다. 새로운 전환을 하기위해 빈 공백의 시간을 하늘앞에 드리는 것이 어떻겠냐는 아내의 권유를 받아드린 것이 기적의 출발점이다. (아내의 권유는 항상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것 같다.)
1달 동안 묵묵히 자원봉사를 하면서, 실체로 월명동 사역에 동참했다는 기쁨은 피곤도 먼지처럼 가볍다는 그 회원은 1달의 자원봉사가 모두 끝나고, 뭔가 특별한 사연을 만들길 원했는데 그 사연이 없어서 아쉬움을 남기고 1주일간 월명동에 남아서 기도하는 동안, 그 어느날 전국 사연편지 사진속 인물이 된 것이다. 작지만, 당시 교회 성도들은 모두 그 회원인 것을 알았다. 듣고보니, 하나님과 연결된 사연이 있음을 알게 됐다.
달팽이 바위와 정도령 바위에 대해 그 회원이 설명한 사연은 참으로 공감이 된다. 정도령 바위는 치타솔로 가는 길목의 그네타는 곳에 놓여 있는데, 본래 그 바위는 바로 근처에 엎어져 있었다. 마치 교실에서 엎드려 잠자는 학생처럼 세 바위는 엎드려 항상 그곳에 있었다. 그곳에 작업을 마친 정명석 목사님이 “저 돌 세워봐!!”라는 말에 따라, 세웠더니 사람 형상이었다. 피카소의 작품 ‘황소의 머리’(Bull’s Head)가 떠올랐다. 자전거 핸들과 안장을 길을 가다가 발견한 피카소는 황소의 머리라는 작품으로 새롭게 재해석했다. 예수님은 그물에 잡혀 살던 베드로를 불러 세워서 사도로 만들었다.
약수샘에 가면, 달팽이 바위가 있다. 본래 그 달팽이 바위는 항상 그곳에 있었다고 한다. 단지, 엎드려 있었다. 장점과 단점이 뒤집어져 사는 인생처럼, 영과 육이 뒤집어서 살아가는 인생처럼, 땅과 하늘의 가치가 뒤바뀌어 살아가는 인생들처럼, 달팽이가 뒤집혀서 항상 그곳에 있었는데, 그 어느날 정명석 목사님이 조깅을 하다가, “저 돌 세워봐!!”라고 했는데, 달팽이 형상을 가지고 있었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간증인가!!
예배를 마치고, 성도들의 내면에 감춰진 사연들을 꺼내서 서로 대화하는 소중한 시간을 갖고, 모두 행복한 은혜였다고 간증하는 모습들이 참으로 좋았다. 그 회원이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찍은 ‘새 사진’은 마치 익룡(翼嶺)을 보는 듯 했다. 소나무 전지 작업도 동참한 그 회원은 “전지작업을 하기 전에는 울창한 소나무가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전지를 하지 않으면 가지와 가지가 엉켜서 소나무 가지가 부러지고, 소나무의 본래 자태가 보이지 않게 된다”면서 “전지작업을 해야 소나무의 본래 수형이 나오듯이, 삶속 가지치기의 중요성을 깨닫는 자원봉사였다”고 고백했다.
그 회원의 말로는, 월명동에 달팽이 바위 작품이 3개나 있다고 한다. 약수샘에 작은 달팽이와 중간 달팽이, 연회장 오른쪽에 엄청나게 큰 달팽이가 있다고 한다. 월명동에 가면 꼭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