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드라마 안보고 10:10에 잤다. 2시에 눈이 떠졌다. 새벽기도 가려고 찬물에 씻고, 넥타이 차림에 양복을 입고 택시를 탔다. 아!!! 월명동 그 사람, 눈앞에 오시다니!!! 꿈같은 현실이다.
오늘 새벽 말씀은 크게 2가지다. “반응”과 “새벽부터”이다. 새벽은 곧 미리부터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신약을 구약부터 시작하고, 성약도 신약부터 시작한다고 하셨다. (학생도 예습을 잘해야 우등생이듯 하나님도 그러하신 것 같다) 손자를 얻으려면 아들을 낳아야 하듯이 하나님은 미리 행하시고, 새벽에 얻을 것은 새벽에 해야 얻는다고 하셨다.
2번째는 반응이다. 반응의 중요성을 말씀하면서, “와스디와 에스더 사건”과 월명동 흔들바위를 비유로 드셨다. 와스디는 왕의 부름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폐위됐다. 에스더는 왕의 부름에 반응을 보였다. 월명동 황금솔 옆 흔들바위는 손가락으로도 움직이고, 손바닥을 살짝 얹어도 살아서 움직이듯 반응하는데 사람이 무감각해서 반응이 없으면 죽은 시체와 같다고 하셨다. 정말 충격적 비유다. 돌도 반응하여 살아 있는데,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감동에 흥분이 없다면 안 될 것이다.
말씀을 듣고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이다.
반응은 반사적으로 응한다는 뜻이다. 반응은 말씀의 행함이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말씀을 지키지 못했다. 반응을 못한 것이다. 응(應)한다는 개념은 “매(鷹)”가 주인에게 온다는 의미로 주인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이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여 이사를 했고, 이삭을 바치라는 말씀에 순복하여 행함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와스디는 왕의 부름에 반응하지 못해 폐위됐고, 에스더는 모르드개 부름에 반응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살려, 왕비의 권좌를 지켰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름에 반응하여 사도가 되었고, 바울도 예수님의 질책에 반응하여 참회함으로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다.
“반응”과 “새벽부터”를 합하면 새벽반응이다. 오늘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나는 날이다. 하나님의 사명자가 행하는 평화의 역사에 세상도 반응하여 그 모형과 그림자처럼 행하고, 손바닥만 얹어도 12톤 바위가 흔들려 반응하는데, 월명동 그 사람이 새벽에 불렀는데, 반응하지 못하면 안된다는 묵직한 교훈이 엄습한다. 사랑하려면 만나야 한다. 하늘은 새벽에 나타났으니, 반응은 곧 새벽기도에 나오라는 뜻이리라. 행함외에 무슨 말이 필요하랴.
내일도 새벽을 깨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