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오늘도 진리의 새벽별이 떴다. 새벽에, 그가 “하나님은 새벽에 좌정하시고, 역사하시고, 큰 인봉은 새벽에 풀렸고, 하나님의 백보좌 인봉도 새벽에 풀렸다. 새벽에 하나님도, 성령님도 말씀하시고, 낮에 그 말씀이 이뤄진다. 새벽을 잡아야 낮을 잡을 수 있다”라고 말씀했다. 즉, 새벽은 하루의 손잡이다. 칼자루를 잡듯 새벽을 잡으면, 시간의 칼을 잡은 것이다. 새벽기도를 하면서 가장 큰 기쁨을 느낀 새벽이었다. 앞으로도 꾸준히 새벽을 지키리라. 오늘 새벽의 핵심 키워드는 “근본, 뿌리”다.
“알고 대하라”
– R
근본은 한자어이고, 뿌리는 순 우리말이다. 뿌리는 나무를 지탱하는 실체로서 보이지 않는다. 월명동에 얼마전에 옮겨심은 ‘바위틈 소나무’의 사연을 전하시면서, 뿌리를 통한 ‘사연의 가치’를 말씀하셨다. 사연은 이렇다.
왕바위 옆에 150년된 소나무가 있었는데, 누군가 그것을 캐갔다. 마음이 많이 상해서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더 좋은 것을 하나님께서 주셨다. 바위틈에서 자란 소나무인데, 102~103년 정도 된 소나무이다. 보통 소나무는 분이 있는데, 이 소나무는 분이 없었다. 분이 없는 소나무는 귀한 소나무다. 왜냐면 산의 바위틈에서 캐온 소나무라서 그렇다. 뿌리도 없고, 줄기도 철사로 총총 묶어 놓았다. 정말로 못생기고, 볼품없는 소나무인데, 알고보면 정말로 귀한 소나무다. 중국 천산에 가면 못생긴 소나무가 있는데, 그것을 보려고 10만명씩 찾는다. 잘생긴 소나무는 100명도 안간다. 생긴 것과 근본은 다르다. 이처럼 사람도 그 사연을 들어보면 정말로 귀하다. 사연을 모르고 사람을 대하면 안된다. 속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로 사연곡절을 가지고 살아왔다.
** 성경 상고 / 사울과 다윗 **
통일왕국의 초대 국왕은 사울이었다. 키가 훤칠했다고 묘사된다. 뽑고 또 뽑고 또 뽑아서 첫 번째로 세운 왕인데 얼마나 인물이 출중했겠는가? 백성도, 선지자 사무엘도 엄청나게 고르고, 고르고, 골랐을 것이다. 그렇게 골랐던 사울은 인물은 좋은데, 정신은 썩었다. 그래서 선지자와 백성과 하나님의 속을 썩였다.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이끌 지도자에 적합하지 않아서 다윗으로 바뀌었다.
다윗은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방문했을 때, 형제들의 틈에 낄 만한 조건도 갖추지 못했다. 모두 사무엘앞에서 축복기도를 받기 위해서 얼굴을 비출 때, 다윗은 양을 치도록 배제됐다. 사무엘조차, 이새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다윗이었다. 양치기 소년으로 살던 다윗에게 무슨 인물이 있었겠는가? 그런데 하나님은 볼품없는 다윗을 선택해, 기름을 부었다. 그 정신을 보고 뽑은 것이다. 오직 하나님 정신, 그것이 하나님께 합당했던 것이다. 그것이 곧 ‘뿌리와 근본’이다. 사람은 얼굴이나, 학벌이나, 가문을 보면 안된다. 그 사상을 봐야한다. 가문과 학벌과 명예와 경제는 참고사항 정도다. 근본은 그 사상이 어떠하냐에 달렸다. 사상은 말을 들어보면, 행위를 통해 그냥 드러난다. 다윗은 오직 하나님 사상을 근본으로 해서 꾸준히 성장해 훗날 사울을 잇는 통일왕국 왕이 되었다.
사울처럼 아담이 그러했고, 다윗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그러했다. 아담은 출중했으나 추락했고, 예수 그리스도는 마굿간에서 태어날 정도로 볼품이 없었으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구약을 신약으로 개혁한 그리스도로 우뚝 섰다.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이며, 예수님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 시대 역시 동일하다. 세상의 유명한 목사들이 많이 있지만, 다윗처럼, 예수님처럼 오직 하나님과 성령님께 사상의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랑의 목회자가 어디에 있는가? 바위틈에 뿌리내린 소나무는 볼품이 없지만, 사연이 100년을 훌쩍 넘어가듯이, 정명석 목사님은 기독교의 핍박의 틈에 끼어서 40년 넘게 복음의 역사를 펼쳐왔다. 그 척박함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역경의 세월이었다. 계란은 바위를 깨뜨르지 못하지만, 소나무는 바위를 껴안고 살 수 있다. 그는 그렇게 지금에 이르렀다. 바위틈 소나무처럼, 인생의 사연을 가지고 오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