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실과 미래
[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왜 사람들은 실패할까? 왜 유대인은 실패했을까? 왜 기독교는 점점점 세상으로 흘러갈까? 현실에서 미래를 준비하면서 살아가는 것인데, 왜 사람들은 실패할까?
앎(知)은 화살과 과녁판이다. 그 무엇을 안다는 것은 화살로 과녁판을 명중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지식의 본질’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자랑하고, 율법을 암송하는 일은 잘했는데, 예수님을 맞지 못했다. 성경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는지 근본을 몰라서 그랬던 것이다. 지금 이 시대도 동일하다. 모든 삶이 그러하다.
왜 요시야는 느고왕을 통한 도움을 못 받았을까?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외교력을 활용해서 갈그미스를 없앴을 수도 있었는데 왜 그렇게 못했을까? 이 모든 일은 몰라서 그런 것이다.
요시야가 잘한 것은 성전 재건축 사업이고, 못한 것은 본인이 모든 것을 하려고 했던 것이고, 치명적 실수는 돕기 위해 왔던 국방 전문가를 믿지 못하고 오히려 방해했던 것이다. 하려고 했던 그 일을 하도록 길을 열어주고 협조했으면 되는데 요시야가 못하게 해서, 하나님이 계획한 일의 혜택을 못 받은 것이다.
자기 것만 귀하다고 생각한다. 내 것이 귀하면, 상대도 귀하다. 남자와 여자 모두 귀하다. 그 눈을 떠야한다. 일방적인 것은 없다. 요시야가 성전을 재건축하듯, 리모델링을 하듯, 확대해서 평화의 역사가 점점점 좋아지도록 원수국가가 협력국가로 달라지게 된 것인데, 요시야는 그것을 몰랐다.
인생은 항상 2가지를 생각해야한다. 내가 행하는 것, 상대와 협력하는 것이다. 요시야는 자기가 모든 것을 하려고 해서 문제가 발생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것은 반드시 받아야한다. 전문가의 실력을 당할 자가 없다. 돼지는 새처럼 노래할 수 없고, 새는 돼지처럼 포동포동 살을 찔 수가 없다. 모두 개성의 전문이다.
유대인이 왜 실패했을까? 율법에 대해서만 잘 알았고, 새로운 시대에 대해서는 몰랐다. 늘 자신에게 새로운 일이 온다. 새로운 일은 새로운 사람을 통해서 온다. 그것에 대해서 알아야한다. 사람의 사연을 들어보면, 그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잘 모른다.
2가지 부류가 있다. 자기가 모든 것을 하려는 사람, 상대와 협력하는 사람이다. 골을 넣는 것은 어시스트와 슈팅의 협력이다. 골챤스를 만드는 것은 절대로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생명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야 가능하듯 그렇다. 남자는 남자로서 전문 개성이고, 여자는 여자로서 전문 개성이다.
어시스트와 슈팅은 반드시 함께 필요하다. 요시야와 느고는 그렇게 짝이 되어서 협력하는 것인데, 요시야는 느고를 무시했다. 하나님을 믿는 요시야가 느고를 통해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결국,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행하신다. 또한 하나님은 상대를 통해서 행하신다. 하나님은 만물, 사람, 여건, 생각 등등 모든 것을 활용해 그 뜻을 이루신다. 이런 개념을 갖고 근신(勤愼)하며 사는 것이 삶의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