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의견이 다르면, 분쟁이 발생한다. 이견(異見)이 분쟁이 되는 근본이유는 갈등이 커져서 그렇다. 의견의 차이는 그 자체로 의견일 뿐이다. 의견의 차이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감정적 공격을 하면서 분쟁이 되는 것이다. 조심해야한다.
성경을 통해 살펴보면, 의견이 다를 경우 어떻게 행할지 대략 보인다.
1) 예수님과 유대교 관계
예수님과 유대교는 시작부터 의견이 대립했다. 마치 배가 다른 형제처럼,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과 유대교에서 보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항상 대립했다. 유대교는 모세를 내세웠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내세웠다. 현실적으로 비교가 안되었다. 모세는 마치 세종대왕과 같고, 예수님은 지금 현재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로 있던 것과 같다. 누가 더 크냐고 하면, 당연히 세종대왕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예수님은 유대교가 막았을 때, 정면승부를 많이 했었다. 급기야 십자가 사건까지 겪으면서 정의의 깃발을 들었다. 십자가 사건 이후 선교정책이 달라졌다. 반대자인 유대교보다 이방인들을 전도하는 쪽으로 달라졌다.
2) 사도들과 산헤드린 의원
사도들이 예수님의 바톤을 이어받고 복음선교 사역을 진행했다. 목숨을 내놓고 전도에 몰입했다. 산헤드린 의원들이 불러서 “복음을 전파하지 말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베드로가 대답한 말이 의미심장하다.
[사도행전 4:18]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종교 지도자의 말을 듣는 것과 하나님의 말을 듣는 것이 서로 대립한 경우다. 베드로에게 역사하는 성령과 산헤드린 의원들이 믿는 하나님의 말씀이 정반대로 나뉜 것이다. 베드로가 산헤드린 의원들의 말을 따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을 따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3) 베드로와 사도회의
베드로가 어느날 기도하는데, 요상한 곤충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먹어라”고 했다. 베드로가 싫어하는 것들이었다. 그 사건은 비유였다. 이방인 고넬료를 전도하기 위함이었다.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사건이다.
[사도행전 10장]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또 두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환상을 보고서 베드로는 무슨 계시인지 깊게 궁금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문제를 주고, 그 다음에 답을 주신 것이다. 현실속에 이런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을 연결할 때, 하나님은 생각속에 비유의 암호를 주고, 그 암호에 해당되는 인물을 연결시킴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 베드로가 옥상에서 내려오는데 그 순간에 고넬료가 보낸 사람이 들어와서 베드로를 초대한 것이다. 그래서 가보니, “나를 전도해주세요”라는 인물이 있었으니, 성령께서 감동으로 이미 전도한 인물이고, 베드로는 가서 ‘성령의 선물’을 기도로 행했다. 성령께서 밥상을 차려놓고, 베드로는 숟갈만 얹은 것이다.
이 사건이 사도들에게 퍼졌는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비판이 거셌다. 원칙에서 벗어난 일을 베드로가 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사도회의에 가서, 초근초근 되어진 일을 설명하고, 사연을 꺼냈다. 베드로 본인조차 원하지 않은 일을 했으니, 성령께서 하시는 일에 베드로가 쓰임을 받은 것이다. 성령이 고넬료를 전도했다면, 누구라도 그것을 막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막으면 유대교와 똑같은 짓을 행한 것이다.
[사도행전 11장]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힐난하여 가로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베드로가 저희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중략)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 받으리라 하신것이 생각났노라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4) 요시야와 느고
의견대립의 극적인 인물을 거론하면, 요시야와 느고다. 요시야는 남유다의 마지막 왕으로 우리나라로 비유하면 고종과 같은 존재다. 마지막에 조선의 부흥을 꾀하려고 했으나 결국 식민지 치하로 넘어갔던 것처럼, 남유다도 그러했다. 요시야가 모든 성전 청소(리모델링)를 마치고, 하나님을 기념하는 유월절을 국경일로 정하면서 백성들의 신앙이 하나님을 향하도록 다양한 종교정책을 펼쳤다. 이후, 이집트에서 대군이 몰려왔다. 느고가 말하길, “하나님께서 갈그미스를 치라고 했다. 나를 막지 말라”고 했다. 이 사건은 무지속의 상극세계라는 성경 강좌에 나오는 이야기다.
[역대하 35:18]
선지자 사무엘 이후로 이스라엘 가운데서 유월절을 이같이 지키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열왕도 요시야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인 온 유다와 이스라엘 무리와 예루살렘 거민과 함께 지킨 것처럼은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였더라 요시야의 위에 있은지 십 팔년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 이 모든 일 후 곧 요시야가 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 애굽 왕 느고가 유브라데강 가의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온고로 요시야가 나가서 방비하였더니
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가로되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뇨 내가 오늘날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로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를 명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리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 하나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변장하고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활 쏘는 자가 요시야왕을 쏜지라 왕이 그 신복에게 이르되 내가 중상하였으니 나를 도와 나가게 하라
요시야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을 행했는데, 이방민족인 느고와 싸우다가 사망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느고가 한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느고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나를 명하사 속히 하라”고 했다면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고 설명했다. 느고는 분명 이스라엘의 원수국가인데,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왔다. 그때는 일단 믿어야한다. 요시야는 그것을 못했다. 하나님은 뜻이 하나다. 둘일 수가 없다. 삼위일체는 각위로서 세분의 하나님(성부 하나님, 성령 천모, 성자 주님)이 함께 하나의 뜻을 이루신다. 느고의 말과 요시야의 말이 다르다. 누구의 말이 하나님의 말인지, 이때는 매우 조심스럽다. 성경은 기록하길, 느고에게 하나님이 함께 했다고 말한다. 즉,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가는 그 사건에 있어서 하나님은 느고와 함께 했다는 것이다.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변장하고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라고 기록한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을 하면, 그냥 그 정책을 따르면 된다. 무슨 다른 이유가 필요없다. 그대로 하면 된다. 그 다음은 하나님이 책임을 진다. 느고가 거짓말을 했다면, 하나님께서 그 댓가를 물을 것이고, 느고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진정 약속했다면 그 역시 하나님께서 큰 뜻을 이루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