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인물대전 & 우수단체 선정위원회]=바다는 생명의 원천이다. 모든 생명은 어머니의 바다인 ‘양수’(羊水)에서 태어나, 영원한 바다의 수평선을 동경하며 살아간다. 전북 고창군에 위치한 곰소만의 바다, 그곳에 바다와 강물의 물결과 한평생을 살아온 사람이 있다. 양식업을 운영하면서, 지역경제의 어려움에 봉착해 10년 넘게 원자력 발전소와 ‘평화의 투쟁’을 해온 김병옥 곰소만 어민회 회장, 그는 평생 어민이었다. 바다를 사랑하는 고래의 피가 흐르는 그를 만나, 곰소만의 흔적을 더듬어 보았다. 김종길 (사)자연보호 중앙연맹 정읍시협의회 회장이 김병옥 회장을 ‘곰소만의 든든한 지킴이’로 추천했다.
“아득한 기억속에 물때를 끌어온다는 말을 들었어요. 지금도 생생해요. 어른시절 동네 아저씨들이 어깨에 물통을 메고서 샘의 원천에서 물을 길어서, 동네 샘에 가져오던 문화풍습이 있었지요. 샘의 원천에서 길러온 물이 지름길로 와야한다면서 모든 집 울타리를 직선으로 뜯었어요. 그 자체가 협동이요, 뭉침이요, 물을 향한 간절한 염원이었지요. 그렇게 이곳은 동네 인심이 물흐르듯 넉넉한 곳입니다”
어린 시절과 지도가 많이 바뀌었지만, 근본 뿌리가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곰소만’의 바다 덕분이다. 김병옥 회장이 멀리 곰소만이 보이는 바닷가에 섰다.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의 바다는 과연 어떤 것일까? 해는 점점 석양으로 물들어 가는 시간, 아주 멀리 트랙터를 타고 동네 아낙네들이 조개를 캐서 오고 있었다. 바닷물이 물러가면, 농부가 일하러 가듯 바다로 출근하는 동네 주민들, 바다는 밀물과 썰물의 시간을 정확히 지켰다. 거짓을 모르는 곰소만 바다가 언제부턴가 ‘이상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
“풍천장어라고 불렀지요. 여기 장어는 돌을 싸서 누구나 잡았어요. 자연산 풍천장어는 여기서 유래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어린시절 그렇게 불렀으니까요. 산에 펼쳐진 나무의 열매처럼 바다는 항상 풍요로움을 선물했어요. 그런데, 어느날부터 조개가 점점점 줄어들고, 풍천장어는 자취를 감추었어요. 그 시점이 바로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선 때부터입니다. 원자력발전소는 초당 367톤의 온수를 24시간 계속 뿜어냅니다. 보일러가 24시간 계속 돌아간다고 보면 됩니다. 원자력 발전이 가동되면서 뜨거워진 온수가 바다로 흘러나오면, 그 뜨거운 물이 바다 온도를 지속적으로 상승시킬 수밖에 없어요. 따뜻한 물 때문에 조개들이 겨울에도 봄인줄 알고 밖으로 나왔다가 낭패를 당한 것입니다. 바다 생물들이 바다를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지요. 이제는 조개를 캐려고 해도 사람이 씨앗을 뿌려야 가능합니다. 풍천장어를 비롯해서 모든 바닷생물이 그렇게 되었어요.”
“바다에 막대기 하나를 꽂으면 강물이 만들어진다”는 명언이 있다고 김병옥 회장이 말했다. 사람이 잠자는 때에도, 사람이 여행을 가더라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계절이 흐르도록 바다는 밀물과 썰물을 반복하므로 막대기 하나를 중심으로 물길이 갈라지면서 강물이 생기는 것이다. 막대기 하나만 꽂아도 강물이 생기는데, 원자력 발전소에서 초당 367톤의 물이 쉬지 않고 흘러나오는데 인근 바다의 생태계가 변할 수 밖에 없다. 방안의 보일러는 뜨거우면 일정 온도에서 멈추는데, 원자력 발전소의 온수는 멈추지도 않는다. 너무 더워서 살기 어려운 물고기는 먼 바다로 떠났지만, 사람은 바다를 떠날 수 없다. 이러한 피해는 국가적 배상 책임이 있어야한다. 그런데, 곰소만 어민회는 피해대상에서 제외됐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원자력 발전소가 전남에 있다보니, 전북에 위치한 고창군 어민들은 피해보상에서 불이익을 많이 받았습니다. 전남지역은 원자력에서 22km 떨어진 거리를 1도 상승지역으로 판단하고, 피해보상이 이뤄졌습니다. 반면, 전북지역은 17km를 1도 상승지역으로 판단하고, 그 밖에 위치한 어민들은 피해보상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물이 17km만 오고 멈춘다는 그런 논리는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물은 17km까지 와서, 계속 흘러갑니다. 저기 보이는 저 곳이 17km인데, 저 물이 곰소만으로 그대로 흘러들어옵니다. 누가 봐도 상식입니다.”
누군가 악의적으로 곰소만 어민회를 피해보상에서 배제한 것같다는 의구심이 샘솟았다. 원자력 발전소의 피해보상은 온수 때문에 발생한다. 뜨거운 온수 때문에 어민들의 피해가 발생하면, 배상책임은 당연한 조치다. 그런데, 곰소만을 제외하고, 보상지역이 결정됐다. 뜨거운 온수가 길게 움푹 패인 곰소만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게다가 곰소만에 흘러 들어온 온수는 나갈 길이 없어서 계속 온도가 올라갈 수 밖에 없다. 전남지역 바다는 열린 바다여서 뜨거운 온수가 찬물을 만나서 바다는 점점점 정상을 회복할 수 있지만, 곰소만은 갇힌 ‘만’(灣)의 형태여서, 온수를 낮출 방법이 없는 지경이다. 원자력 발전소의 뜨거운 온수가 곰소만이라는 병안에 갇힌 형국인데, 원자력 발전소는 “곰소만은 17km 밖에 있다”는 탁상공론 말만 늘어놓고 있다. 피해보상 지역은 콤파스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현장에서 실제 피해를 입은 어민들이 결정하는 것이다.
17km까지 썰물로 빠졌던 바닷물이 점점점 차오르더니, 수면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간조와 만조는 곰소만과 17km 지역까지 차이를 두고 발생했다. 17km가 1도 상승지역에 해당한다면, 그 수면이 곰소만까지 높아지므로 곰소만 어민회도 피해보상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로 해석된다.
서울교육방송은 곰소만 어민회를 대표해서 원자력 발전소의 끊임없는 투쟁을 멈추지 않은 김병옥 회장의 철학을 높게 평가해, ‘곰소만의 든든한 지킴이’로 선정해, 그의 업적을 널리 알리기로 했다. 바다가 썰물과 밀물을 멈추지 않듯, 김병옥 회장은 마을과 서울을 오고가면서, 원자력 발전소와 국회를 오고가면서, 중앙정부와 지자체를 오고가면서, 10년 넘게 곰소만 어민회의 이익을 위해 헌신해 왔다. 누가 알아주나 알아주지 않으나, 날이 맑든지 흐리든지, 바다가 썰물과 밀물을 반복하듯이 정의로운 투쟁을 지금껏 반복해 왔다. 곰소만 어민회에 고진감래(苦盡甘來) 밀물이 몰려오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