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금일(今日)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어떤 가수를 목도했다. 내가 해줄 것을 다 해줬는데, 아뿔싸 선입금을 받지 않고 심혈을 다해 기사를 작성하고, 작품을 만들 듯 해줬던 것이 나의 불찰이다. 예전 같았으면, 단도직입적으로 따졌을 것이다. 지금은 달라졌다. 잠정보류로 선정자격 미달 처리했다.
왜 사람들은 약속을 어길까? 어기면서도 별의별 핑계를 댄다. 나는 그런 부류가 제일 싫다. ‘하겠다, 입금하겠다’고 해서, 나는 기사를 작성하고, 홍보책자를 만든 것인데, 조석변덕이 오뉴월 엿가락처럼 늘어져서, 약속한 날짜를 어기고, 전화도 받지 않고, 이렇게 사는 부류는 ‘개 돼지에게는 진주를 던지지 말라’는 명언이 적용됨이 마땅하다.
‘약속은 해로울지라도 지켜야한다’는 것이 내 철학이다. 나는 정말로 그렇게 살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몸부림친다. 나를 아는 자들은 내가 약속한 것으로 내게 온다. 내가 약속하고 지키지 않는 경우는 상대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이다. 약속은 쌍방이 합의해서 맺어지므로, 상대가 불성실하게 임하면 나도 불성실하게 행할 수 밖에 없다. 나는 맡은 책무는 최선을 다해 행했고, 1년, 2년, 3년이 지나도 대부분 나의 이런 신뢰를 인정한다.
나는 약속을 지켜서 얻은 것들이 참 많다. 얼마전에도 생각지도 못했던 큰 보화를 얻었다. 그 사건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콩당콩당 설레인다. 내가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인데, 여건이 조성되면서 내가 갖게 됐다. 그때 핵심은 내가 약속을 지켰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근본 이유는 양심불량 때문이다. 그 무엇이라도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면, 모든 삶이 약속의 방향으로 질서가 잡힌다. 반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모든 방향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방향으로 재조정된다. 사기를 당하는 것도 결국 자신이 평소 약속을 지키지 않는 양심불량의 삶을 살아서 그렇다. 누구를 탓하랴!!
믿을 신(信)은 사람 인(人)과 말씀 언(言)의 합성이다. 사람의 말을 보고 믿음을 판단했다. 말을 하고, 그 말대로 행하는 사람은 ‘신뢰성’을 가진 자이고, 말을 해놓고, 상황이 불리해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그 사람은 믿음이 바닥인 사람이다. 믿음은 곧 자신의 말을 지키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지켜본다. 나와 언약을 지키는지, 아닌지, 진지하게 관찰한다. 전제조건은 내가 모든 약속을 이행하면서 그렇게 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부류는 그 어느날 인연의 끈이 끊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서, 말을 그럴듯하게 하는 자는 결단코 사람의 믿음을 얻지 못한다. 자신이 믿음을 갖지 못하였는데, 누구의 믿음을 얻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