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동안 신앙칼럼을 애독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게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 장창훈 작가
그는 기묘자(奇妙者)라.
이사야서 9:6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기묘(奇妙)는 기이함과 오묘(奧妙)함이다. 奇는 생김새 그대로 말을 탄 모습이며, 妙는 작은 여자를 뜻한다. 아무래도 여자는 얼굴이 작고, 허리가 가늘어야 오묘하게 보였다. 남자는 힘이 세고, 여자는 부드러움을 상징하니 작아야 오묘하다. 기묘(奇妙)는 사람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의 연출이다.
그의 테니스 경기는 ‘기묘자의 행진’이라고 할까? 프로급 실력자들이 있을 때 더욱 그렇다. 태풍치는 곳에 태풍의 눈처럼 그의 실력은 오묘하고, 청중은 환호성에 빠진다. 축구와는 전혀 다르다. 축구는 공을 차면, 그 공이 10분이 지나야 골로 연결된다. 반면 테니스는 금방 금방 운명이 결정된다. 초스피드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테니스만한 경기가 없다. 테니스의 축소는 탁구다. 탁구는 규모가 너무 작아서 청중을 사로잡기에 약하다. 축구와 탁구를 적절하게 조합한 운동이 바로 테니스다.
그는 기묘자라. ‘발리 기술과 스트록’의 기묘자라.
그가 테니스를 하면, 감탄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아슬아슬한 장면에서 끝나는 드라마처럼,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실력껏 상대방과 응수해서 승리를 얻어낸다. 언론인으로서 테니스 경기를 직접 봤던 그때를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빠른 이동, 상대의 공격을 차단하는 발리 기술과 예리한 각도, 간혹 스트록을 네트 옆으로 꺽어서 떨어뜨리기도 했다. 축구 골대 안쪽으로 골이 들어가는 신묘한 기술이 테니스에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예수님은 만물의 배경과 시청각 자료를 활용한 강의법이 탁월했다. 가령, 산상수훈은 산에 올라가서 자연풍을 활용해 말씀을 전했고, 베드로의 배를 빌려서 해풍을 활용해 말씀을 전했고, 율법 변호사들(바리새인 족속)이 예수님을 괴롭히려고 간음한 여인 마리아를 현장에서 체포해 예수님께 데려왔을 때, 예수님은 땅바닥에 글을 쓰는 시청각 자료를 활용했다. 이스라엘의 최후를 예언할 때는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가 말라서 죽는 것으로 제자들에게 깊은 묵시를 전했다. 누가 높은지 제자들끼리 경쟁이 붙고, 권력다툼의 징후가 보였을 때, 예수님은 허리에 수건을 두루고 제자들의 발을 씻겼다. 실제로 보여줌으로 깨달음을 전달한 것이다.
운동과 신앙이 따로 국밥이 아니고, 함께 연결되어서 청중을 훈육하고, 인생이 살아갈 길을 말씀하시는 그의 삶이 나는 참 좋다. 말씀을 전하시다가, 신약의 예수님이 시청각자료를 활용해 교육하듯, 미리 준비된 테니스채를 들어서 ‘손가락의 비밀’을 설명하시니, 그 신묘함은 나로 하여금 심장이 두근거리게 했다. 테니스 채를 잡는 독특한 비법을 알려주시니, 깨닫고, 그 비법의 결론이 ‘하나님과 나’의 일대일 신앙으로 귀결되니, “그는 기묘자라” “그는 언어의 기묘자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말했다.
“신학(神學)은 전능자 하나님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귀신 신(神)을 써요. 하나님과 하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이 바로 신학입니다.”
아멘!!
신학(神學)에 쓰인 신(神)은 귀신 신(神)이다. 한자가 만들어진 그 시기, 거북이가 만든 글자 한자는 제사가 발달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글자여서 ‘하나님’을 상징하는 한자는 없다. 귀신 신(神)이 결국 하나님을 상징하는 한자로 훗날 대신 사용하게 된 것이다. 신학(神學)이 만약 하나님을 근본으로 깨닫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다면, 정말로 귀신을 배우는 학문으로서 신학(神學)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
로마 황제 시절 시골출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교황이 다스리던 중세시대에 독일의 대학 교수인 루터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이집트 파라오가 다스리던 시절, ‘유부녀 강간범’으로 누명을 쓰고, 죄수로 감옥에 갇힌 이방인 요셉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이 시대도 그러하다. 전능자는 전능자의 사명자를 통해서 말씀을 전하니, 그 말씀을 알지 못하는 신학(神學)은 결국 ‘귀신의 학문’일 수 밖에 없다.
그가 테니스 채 뒤에 감춘 검지의 비밀을 자세히 설명하신 후, “엄지는 하나님, 이것(검지)은 자기”라고 말씀하시는데,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능자 하나님을 내 마음판에 명중하시는 그 말씀을 듣고, 그는 전능자의 신학(神學)을 행하심을 고백하였다.
[참고 한자]
손가락 지(指) 맛(旨)을 보는 손가락(扌)
맛볼 지(旨) 검지(匕) 또는 수저로 맛을 보다.
마디 촌(寸) 검지로 맥을 잡는 위치. ㅣ은 손목, 一은 검지.
** 해당 신앙칼럼은 정명석 목사님의 말씀을 중심해서 감동후기로 편집했습니다. /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