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만 먹으면 그 짓을 한다면, 그것이 자신의 운명이 된다. 오늘 내가 가장 주도적으로 하는 일이 무엇인지 자신을 관찰해보자. 밥만 먹으면 게임만 하는 학생이 있다면, 훗날 PC방에 갇힌 게임중독자가 되거나, 프로그래머가 되거나, 놀기를 즐기는 사교가가 될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그것만 하는 사람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그런 사람은 잠자면서도 그 짓을 한다. 그래서 달인이 된다.
나는 맨날 글만 썼다. 밥만 먹으면 맛집 홍보, 식사 후기를 썼다. 회의를 하면 회의후기 칼럼을 썼다. 신문을 읽으면 기사비평 글을 썼고,드라마를 보면 맨날 드라마 비평을 썼다. 사람을 만나면 “인물초대석” 기사를 썼고, 세미나에 참석하면 “현장탐방” 기사를 썼고, 하루를 돌아보면 자유 칼럼을 썼고, 예배에 참석하면 말씀 후기를 썼고,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면 신앙칼럼을 썼다. 하는 일이 글쓰기였다.
밥만 먹으면 그 일을 하는 사람을 따라갈 수가 없다. 의사는 밥만 먹으면 생명과 관련해 치료법을 연구할 것이고, 변호사는 밥만 먹으면 법률과 쟁점과 최신판례를 검토할 것이다. 만약 변호사가 법보다 돈이 먼저 보이면, 법률의 칼날이 부엌칼보다 무뎌지게 된다. 이 단체 저 단체 기웃기웃하면서 알량한 법률지식 자랑하거나 검사시절 추억이나 늘어놓는다면 그런 변호사는 퇴물 법조인이다. 살아있는 정신의 변호사는 시도 때도 없이 사건에만 몰입한다. 검사가 오직 사건에만 몰두하듯 그렇다.
결국, 초심이다. 밥만 먹으면 그 일이 좋았던 그 열정이 자신에게 없다면 심장이 없는 사람에 불과하다. 종이 호랑이다. 눈만 뜨면 그것만 생각하고, 밥만 먹으면 그것만 신경쓰는 정신이 바로 프로 정신이다. 야구선수 손에는 야구공과 배트가, 작가는 펜과 종이가 항상 있다. 성직자는 생명돌봄과 말씀상고 2가지만 전념하는 것이다. 살아있다면 그렇게 한다.
내가 아는 어떤 중학교 및 대학교 친구는 밥만 먹으면 돌을 찾거나 나무를 찾으러 다닌다. 좋은 진주를 찾는 장사꾼처럼 이곳저곳 다니더니, 좋은 작품이 연결되는데 가교역할을 했다. 가끔 길을 가다가 조각상을 구경하는 내가 그녀를 따라갈 수 없다.
율법학자(변호사)는 도시락을 싸들고 예수님을 꼬투리잡고 방해했다. 예수님이 의견만 제시하면 거기에 반대의견을 내놓고, 제자들을 현미경으로 감시했다. 예수님이 율법학자를 책망해 교육하면 늘상 대들었다. 율법학자는 변호사와 같은데, 그들은 염소다. 탐욕과 무책임과 정죄를 즐긴 그들은 결국 영원한 형벌의 대명사가 되었다. 밥만 먹으면 복음을 반대하니, 결국 악인이 된 것이다. 악인은 악의 달인이다.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자꾸 많이 하면 그분야 전문가가 된다. 어쩔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