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너도 인간이니?’ 로봇의 인간화를 심도있게 보여주는 드라마이다. 시청률 5% 저조하지만, 내용은 상당히 알차다. 알파고는 바둑으로 한정되었으나, 조만간 판사들의 업무와 의사들의 업무를 로봇이 대신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이 진단한다. 수레를 끌던 시절에서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교통체계는 완전히 달라졌듯이, 의사로봇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사진도 요즘 무인 카메라로 찍는다. 지하철마다 보편화된 자동판매기는 매출이 꾸준히 증가한다. 사람을 기계가 대신한 곳은 많다.
인간 남신과 로봇 남신, 시작은 사소했다. 대기업에 시집간 로봇공학자(김성령)가 자식을 뺏기면서, 그리운 자식을 로봇으로 만들어서 실제 인간처럼 작동하도록 만든 것이다. 로봇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한다. 단지 최우선으로 지켜야할 대상을 중심으로 모든 통제가 설정된다. 남신 로봇은 엄마의 뜻을 따라 사람과 동일하게 움직인다. 인간 남신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서 인간 남신을 대신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고, 로봇의 인간세계 탐험은 “도대체 누가 인간인지” 그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기계로 된 로봇은 사람을 품을 줄 알고, 심장을 가진 인간은 사람을 죽이는데 몰두하니, 과연 누가 사랑의 심장을 가진 인간인가?
로봇 남신이 친구를 사귀었다. 여자친구지만, 우정으로서 친구다. 강소봉, 그녀가 로봇과 친구를 맺으면서, 과연 로봇과 우정이 가능할지, 깊은 고민을 하면서 연락을 끊었다. 로봇 남신은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이런 사정을 묻는다. 그때 “조만간 연락이 오겠죠?”라는 대답을 듣는다.
로봇 남신이 묻는다.
“인간에게 조만간은 정확히 시간의 길이가 얼마죠? 하루? 이틀? 24시간?”
“기다림은 수치로 계산할 수가 없어요. 상대가 마음을 추수리고, 다시 올 때까지, 그때가 조만간이 끝나겠죠”
조만간(早晩間)은 하루를 뜻한다. 아침 조(早)와 저물 만(晩)의 사이라서, 하루안이다. 그러나, 일찍 조(早)와 늦을 만(晩)으로 확장되면, 일찍 또는 늦게의 뜻이 되므로 시간의 길이가 고무줄처럼 늘어난다. 시간은 상대성이다. 조만간은 ‘곧’과 같고, ‘곧’은 시간의 길이가 없다. 그냥 ‘불특정 시간대’가 ‘곧’이다.
성경의 마지막, 계시록의 끝에도 ‘곧’이 등장한다.
계시록 22장 20절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證明這事的說、是了.我必快來。阿們。主耶穌阿、我願你來。願主耶穌的恩惠、常與眾聖徒同在。阿們。
‘快’(즐거울 쾌)는 ‘속히’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必은 ‘반드시’로서 약속을 정녕코 지키겠다는 맹약이다. 사람도 ‘꼭’ 약속을 지키겠다고 하면, 그 약속을 지킨다. 계시록 22장 21절은 예수님이 인류에게 인감도장을 찍듯이 약속한 것과 같다. 로봇 남신이 “조만간의 길이”를 묻듯이, 과연 예수님께, 하나님께 ‘조만간의 길이는 얼마일까?’라는 물음이 제기된다. ‘속히 온다’고 했는데, 언제 온다는 것일까? 이미 왔다가 갔을까? 왔다면 만난 사람과 못 만난 사람으로 나뉠까? 구약에서 기다린 신약은 맞은 자와 못 맞은 자가 확연히 구분되었다. 이 시대도 그러할까? 이와 관련해 베드로후서 성경구절이 생각났다.
베드로후서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親愛的弟兄阿、有一件事你們不可忘記、就是主看一日如千年、千年如一日。
하나님께 하루가 천년이면, 과연 예수님이 이 땅에 온지 이틀(2천년)이 지났으니, 속히 다시 오실 때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