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신앙칼럼]=유대인은 성경이 구약 1개이고, 기독교인은 성경이 구약과 신약 2개다. 유대인은 예수님이 구약의 예언을 이루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기독교인은 예수님이 구약의 예언을 완성했다고 믿는다. 그 중에서 구약의 불심판 예언은 상당히 중요하다. 신약에도 불심판이 예언되어서 그렇다. ‘불심판’의 근본은 무엇일까?
이사야 66:15
보라 여호와께서 불에 옹위되어 강림하시리니 그 수레들은 회리바람 같으리로다 그가 혁혁한 위세로 노를 베푸시며 맹렬한 화염으로 견책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에게 심판을 베푸신즉 여호와께 살륙 당할 자가 많으리니
이사야는 대선지자중 1명이다. 선지자는 예언자로서 ‘하나님의 계시를 대언하는 자’이다. 히브리어로 ‘나비’(nabi)라고 불린다. 구약에서 대선지자는 총 5명, 소선지자는 13명이다. 대선지자는 엘리야, 이사야, 예레미아, 에스겔, 다니엘이다. 소선지자는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이다. 대선지자인 이사야가 “하나님은 불에 옹위되어 강림한다”고 했으니, 유대인은 그러한 하나님을 기다렸다. 기록시기는 대략 BC700년이다. 지금부터 2700년 전에 기록되었다.
질문1) 이사야는 하나님의 대변자로서 하나님의 입장을 기자회견하듯 발표했다. 위 발표문을 듣고 과연 어떤 생각이 드는가?
질문2) 예수님이 과연 이사야 66장 15절의 예언을 이루었는가?
유대인은 이집트에서 400년간 종살이를 했다. 모세가 출애굽을 할 때, 10가지 대재앙을 이집트에 내리면서 극적으로 탈출했다. 이후 가나안에 들어가서 통일왕국을 이뤘으나, 약소민족으로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200년 넘게 포로생활을 했다. 예수님이 탄생하던 시기는 로마가 유럽과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을 통치했고, 유대인도 로마의 식민지였다. 유대인은 마치 일본의 식민지처럼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총독으로 파견한 이토 히로부미처럼 빌라도도 로마에서 이스라엘에 파견한 총독이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강림을 간절히 기다렸다. 군림하는 로마를 불로 심판하길 바랬던 것이다. 유대인 입장에서 로마는 적대국이었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족속이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을까?
신약에도 불심판이 또 나온다.
베드로후서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데살로니가후서 1:7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베드로후서는 베드로가 썼고, 데살로니가후서는 사도 바울이 썼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사도들의 대표로 활동했고, 사도바울은 국회의원 출신으로 유럽에 선교사로 활동한 인물이다. 신약을 대표하는 예수님의 두 제자는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다. 두 인물이 ‘불심판’을 모두 예언했다. 베드로는 “하늘이 불에 탈 것이다”라고 했고, 사도 바울은 “불꽃에 나타나신 예수님이 멸망의 형벌을 내린다”라고 예언하였다. 예언의 맥락은 이사야서 66장 15절과 같다.
질문3) 신약에 불심판이 예언되어 있어서, 기독교인들은 구약의 불심판이 이뤄지지 않아서, 다시 불심판을 예언한 것이다. 사랑으로 용서해서 2천년 전에 지구가 불에 타지 않았으니, 이번에는 반드시 불에 탈 것이다라고 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사야서는 묵시문학이고, 베드로후서와 데살로니가후서는 편지문학이다. 문학에 사용되는 단어는 실재이거나, 비유다. 비유는 보다 실감적으로 표현하거나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사용한다. ‘불’의 단어도 ‘비유적 장치’로 사용된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나깨나 불조심’에서 불은 화재를 말한다.
‘불있어“라고 흡연자가 묻는다면, 그것은 ’라이터‘를 말한다.
‘10대들의 위험한 불장난’에서 불은 육체적 관계를 말한다.
‘모닥불 주위로 몰려들었다“에서 ’불‘은 진짜 불(火)이다.
‘불타는 심장으로’에서 ‘불’은 ‘뜨거움’을 말한다.
질문4) 불심판이 진짜 불심판이 아닐 수도 있을까? 비유라면 무엇의 비유일까?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낸 신약의 주인공으로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은 모든 구약의 예언을 성취했다. 이것은 절대적 진리다.
마태복음 11:13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찐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세례요한은 곧 예수님과 동시대 인물이다. 모든 예언이 세례요한까지 이뤄진다는 것은 곧 예수님때 모든 예언이 이뤄진다는 말과 같다. 말라기는 그리스도가 오기전에 ‘엘리야’가 온다고 했는데, 엘리야가 곧 세례요한이라고 예수님이 설명했다. 말라기가 예언한 엘리야가 왔듯이 구약의 모든 예언이 이뤄졌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구약의 불심판을 어떻게 성취했는가?
마태복음 3: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누가복음 12: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요한복음 12: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베드로후서 3: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마태복음 3:11에 보면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준다고 했다. 이사야서 66:15에 표현된 ‘불과 칼로’ 심판하는 하나님이 결국 ‘성령과 불’과 맥락이 같음을 알 수 있다.
누가복음 12:49에서도 예수님은 땅에 불을 던지러 왔다고 스스로 표현했다. 예수님은 방화범이 아니다. 성냥불도 던지지 않았다. 예수님은 오직 복음과 말씀을 외쳤다.
요한복음 12:48에서는 심판의 본질이 나와 있다.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심판한다고 했는데, ‘예수님의 말씀’이 곧 심판을 한다고 했다.
베드로후서 3:7은 베드로의 불심판 예언의 정답이 나와있다. 불심판 예언은 3:10에 있고, 그 정답이 3:7에 있다.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라고 되어있다. 말씀이 곧 불이다.
질문5) 왜 말씀을 불로 비유했을까?
불은 소각한다. 말씀은 죄를 없앤다.
불은 요리처럼 재창조한다. 말씀은 사람을 새롭게 만든다.
불은 따뜻하게 한다. 말씀은 용서와 관용과 사랑으로 아픈 심령을 따뜻하게 한다.
불은 어둠을 밝게 한다. 말씀은 무지의 어둠을 없애고 앎의 빛을 준다.
불은 생활의 필수요소다. 말씀은 영혼의 필수요소다.
불은 잘 사용하면 축복, 잘못 사용하면 재앙이다. 말씀은 지키면 축복, 지키지 않으면 저주와 심판이다.
** 해당 칼럼은 정명석 목사님의 성경해석에 근거해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