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4대교리-불심판의 신앙칼럼을 쓴 적이 있다.
참조 : http://www.ebsnews.co.kr/?p=15281
성경학원 2교시에서 태양아 멈춰라와 불심판을 함께 공부했다. 불심판의 강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때 진정 깨달았다. 불이 말씀이라는 공식을 말함이 아니다. 불같은 말씀으로 실제 인생의 무지를 불태우고, 잊었던 과거가 생각나고, 죄가 떠올라 소각할 참회의 마음을 자각하게 하고, 하고싶은 열정의 심정으로 불태우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배우고 깨닫는 시간이었다.
불심판 성경공부는 귀납법적 방법으로 진행됐다. 구약성경의 불심판 예언과 신약성경 예수님의 예언 성취 장면을 상호 비교함으로 ‘불의 비밀’을 그대로 알려주는 방법이다.
이사야서 66:15에 ‘불에 옹위된 하나님’의 예언이 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2;49에서 “불을 던지러 왔다”라고 말씀했고, 요한복음 12:48에서 “말이 곧 심판할 것이다”라고 심판의 방법을 말씀했다.
“유대인은 문자에 갇혀서 불을 자연의 불로 해석해서 하나님께서 불로 악한 로마를 심판하고 멸망시킬 것으로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불은 말씀입니다.”
– 성경 강사님 강의 요약노트
이때까지 나는 ‘선행학습의 부작용’으로 ‘알던 지식의 반복학습’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다. 함께 듣던 지인(知人)은 뭔가 불이 켜지는 듯 했다. 얼굴에 화색이 들면서 깊은 것을 깨달은 눈빛이었다. 이후 성경 강사님은 말씀을 불로 비유한 배경을 1)소각 2)재창조 3)필요성 등으로 자세히 설명했다.
지인(知人)이 소감을 말했다.
“깨달았어요. 월명동에 갈 때마다 어떻게 만들었을까, 궁금했거든요. 선생님께서 불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시니 월명동 돌조경 건축물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죠?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니, 불처럼 몰랐던 과거가 떠오르고, 생각나고, 무지가 소각되고…. 새롭게 인생을 재창조하려면 하나님을 말씀을 들어야한다는 것이죠?”
지인의 깨달음은 참으로 깊었다. 보통 ‘불심판=말씀심판’까지 지식으로 이해한다. 지인(知人)은 “불은 곧 말씀이고, 말씀이 곧 불이다”는 차원까지 깨달았다. 그 깨달음으로 정명석 목사님의 삶과 월명동 돌조경 건축물을 스스로 이해했다. 또한, 자신이 살아온 과거의 모든 삶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인식의 변화를 가졌다. 지인이 깨달음의 불을 전하므로, 그 깨달음을 들은 나도 마음이 불처럼 뜨거워졌고, 내가 살아왔던 과거가 파노라마처럼 생각의 뇌리를 스쳐갔다.
베드로후서 3:10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그날 불심판 강의로 베드로후서 3:10이 실제로 이뤄졌다. 지인(知人)은 오랫동안 하나님에 대해 깊은 불신(不信)을 가지고 있었고, 오해가 깊었다. 불은 곧 용광로다. 용광로는 모든 광물을 녹여서 새롭게 만든다. 불심판의 말씀은 곧 용광로와 같아서, 지인이 평소 갖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무지의 불신’을 융해시켰다. 오해를 풀어지게 했다. 오해가 풀리니, 이해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고 의지하게 되었다. ‘무지의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불신이 말씀의 불에 풀어지고, 오해가 풀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불심판 강의였다.
나는 항상 ‘불심판 강의는 불처럼 외쳐야한다’라고 생각하면서, 목소리에 힘을 주고, 얼굴과 표정을 묵직하게 하면서 큰 목소리로 목에 피가 끓듯 외쳐서, 말이 불이 되게 해야한다는 인식관을 가지고 있었다. 내 생각이 틀렸다. 불심판 강의는 신입생이 말씀을 불로 깨닫도록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영적인 관점,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해하도록 신령하게 전해야한다. 불심판 강의는 곧 신입생의 인식관이 불타는 매우 중요한 강의이다.
만약 내게 ‘스타강사’를 선정하라고 한다면, 나는 그때 불심판 강의를 한 그 성경 강사님을 ‘스타강사’로 선정한다. 신입생의 인식관이 소각되고, 재창조되고, 무지가 벗겨지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볼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