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리더: 윤혜성
기록리더 학교: 대일외국어고등학교
취재 장소: 안중근 의사 기념관
1. 취재동기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찾은 건 일제강점기 역사에 대해 알아보고 책도 읽어보고 관심을 가져서 이다. 평소에도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나지만 특히 일제강점기 시대의 역사에 대해 배우는 것을 특히 더 열심히 배웠다.그리고 안중근 의사는 일제 강점기 역사의 중심이었고 그래서 더욱 흥미가 생겨서 깊게 알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찾게 되었다.
2. 문화재 취재내용 :
1) 아버지와 안중근
안중근 의사는 19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아명은 응칠이며, 천주교 세례명은 토마스(도마)이다. 그의 집은 전형적인 향반 지주였다. 그의 아버지는 전통적인 유학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근대적 신문물의 수용의 필요성을 인식한 개화적 사고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갑신정변의 시래로 이루지 못하고 귀향하였다. 갑신정변 직수 해주는 떠나 신천군의 청계동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부친의 영향으로 안중근도 개화적 사고를 지니게 되었다. 안중근 의사는 무예에도 뛰어나고 전사의 기질도 가지고 있다
2) 애국 계몽운동 전개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운동과 국채보상기성회 관서지부 조직 하는 등 국채 보상운동 도 전개하였다. 국권피탈과정을 보면서 실력양성운동 을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여서 1907년부터 의병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대한 의군 참모중장으로서 선임되어 국내진공작전 전개하였다. 1차 2차 모두 다 성공하면서 많은 포로도 잡았다. 잡혀있는 포로들을 안중근은 다 풀어준다. 만국공법에 따라 포로를 처단 할 수 없고 신자로서 처단할 수 없다 라고 하며 풀어주었다. 풀려난 포로들은 의병부대의 위치 등 많은 정보들을 다 상대편에게 알려주었고 결국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안중근의 부대는 무너졌다. 이후 11명의 동지들과 함께 단지동맹을 맺었다.
3) 하얼빈 의거 계획
1909년 10월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의 대장대신 코코프체프와 만나 동양침략정책을 협상하기 위해 북만주를 시찰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안중근은 이를 나라와 겨례의 원수를 갚을 절호의 기회로 판단하고 우덕순, 유동하 등과 함꼐 하얼빈으로 향했다. 10월 22일 하얼빈에 도착한 안중근은 신중하게 의거계획을 세웠다. 25일에 채가구 역에서 의거를 맡은 우덕순과 조도선이 남고 안중근은 하얼빈역에서 의거를 맡았다. 이대 채가구 역에서의 당시 경비를 맡았던 러시아 군인들이 여관 문을 밖에서 잠가 무력 시위를 할 수 없어서 실패하게 되었다. 안중근 의사는10월 26일에 섀벽 5시부터 이토를 기다렸다. 이토에게 3발의 총알로 이토를 암살했다. 이토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고 안중근 의사는 ‘꼬레아 우라’ 라고 외치며 몸을 피하는 대신 당당히 맞섰다. 그 후 5개월 옥살이 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옥살이 중 글쓰기에만 전념하였다. 그는 안응칠 역사, 동양평화론 등의 글을 남겼다. 당시 간수나 많은 사람들은 안중근 의사의 명필을 부탁하고 간직하기도 했다고 한다.
4) 안중근의사 가문의 독립운동
안중근 사후에 친동생 정근과 공근은 러시아로 망명하여 활동하다가 중국으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큰 활약을 하였다. 사촌동생 명근은 친일대신들을 처단하고 서간도에 무관학교를 설립하고자 군자금 모집활동을 펼쳤다. 그 외에 장근, 경근 등 사촌동생들과 봉생, 원생, 진생, 춘생 등 조카들도 만주 독립군이나 대한민국 임시 정부와 광복군에 가담하여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3. 느낀 점 :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평소에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 많이 알았지만 기념관에서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 수 있었다. 주변에 물어보면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안중근 의사를 많이 알고 있지만 단순히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안중근 의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기념관을 추천해주고 싶다. 단순히 저격수로만 아니라 의병장으로서, 그리고 인간 안중근 으로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었다. 안중근 의사의 시대인 일제강점기 역사에 대해서 더 관심이 기울었고 그와 관련된 영화나 드라마에도 관심이 가게 되었다. 드라마 시카고타자기를 옛날에 인상깊게 본 적이 있었다. 안중근 기념관을 돌면서 그 드라마의 대사 한 줄이 떠올랐다. 배우 유아인이 독립투사인 고경표에게 “당신들이 청춘을 바친 덕분에 우리가 현재 이렇게 잘 살아 고마워” 라는 말이었다. 비록 드라마의 대사였지만 나는 이 대사가 가장 인상깊었고 과거 청춘을 바쳐서 이 나라를 지켜준 독립투사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이 대사처럼 우리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이 자유도 누군가의 청춘과 피로 이루어진 거라는 것을 매 순간 감사하고 또 이 자유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느꼈다.
4. 문화재 이용법: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471-2 소월로91
지도보기
매일 10:00 – 18:00하절기(3월-10월)
매일 10:00 – 17:00동절기(11월-2월)
월요일 휴무 공휴일인 경우다음날/1월1일,명절 휴관
사이트: http://www.ahnjunggeu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