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에서 계속)
생활전선에서 우리는 여리고성, 아이성, 아모리 연합군의 문제를 직면한다. 그때마다 여리고성 함락작전, 아이성 기습작전, 아모리 연합군 격파작전을 기억해야한다. 각각 전술이 달랐다.
2) 아이성 전투
아이성은 ‘황폐한 작은 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언어로 ‘아이’(兒)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아주 작은 성에 불과했으니, 여리고성을 점령한 이스라엘 군대가 아이성을 쳐다보고서, “저것 쯤이야”라고 여겼을 것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과할 때 “저것 쯤이야”라는 우쭐한 마음이 든다. 승리후 교만이 찾아온다. 늘 경계해야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불가능하다.
여리고성의 성벽이 무너질 때 하나님께서 2가지로 크게 함께 하셨다. 하나는 기생 라합이 돕도록 감동을 주신 것이다. 싸울 자가 싸우지 않고 정보를 주는 것이 참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것이다. 둘째로 7일동안 심리전으로 전쟁을 하도록 지혜를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이런 지혜를 주시지 않았다면, 이길 수가 없다. 아이성도 마찬가지다. 여리고성에서 18km 정도 떨어진 아이성에 대해 여호수아는 역시 정탐꾼을 보냈고, 정탐꾼은 보고하기를 2~3천명의 소수 정예부대만 보내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했는데, 참패(慘敗)를 당했다.
여호수아의 위대함은 전쟁의 실패를 철저히 점검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실력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똑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한다면 그것은 무능의 극치다. 같은 실수는 절대 되풀이하면 안된다. 여호수아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아이성 참패’를 놓고 하나님께 간구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심으로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했다고 여호수아는 판단하고, 그 이유를 하나님께 물었던 것이다. 이것이 신앙인의 자세다. 왜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를 자기에게서 찾는 것이다. ‘아이성 전투의 참패=아간의 범죄=도둑질과 욕심’으로 규정하는 것은 성경지식의 나열일 뿐이다. 생활전쟁에서 만약 어떤 일이 실패했다면, 그 실패의 원인을 놓고서 자신의 내부에서 원인을 찾아야한다. 여호수아가 그러했다. 이스라엘 군대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여호수아 자신의 문제인지, 지도부의 문제인지….. 그것을 간절히 기도하였고, 답을 받았다. ‘아간의 범죄가 곧 자신의 범죄’로 인정하고 제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신앙인의 기본 자세다.
(여호수아서 7:6)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여호수아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붙여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편을 족하게 여겨 거하였더면 좋을뻔 하였나이다 주여 이스라엘이 그 대적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승리는 ‘술’과 같다. 늘상 그렇다. 잘되면, 그것에 도취되어 ‘교만’이 칡넝쿨처럼 올라온다. 조심하고, 경계해야한다. 여리고성을 무혈입성한 것은 하나님의 역사였다. 아이성 전투에서 참패한 것을 통해 이스라엘 군대는 철저히 자복하고, 깨달은 것이다. 무기도 없이 여리고성을 이긴 것이 이스라엘 군대의 자랑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입증한 것이다. 하나님이 도우신 것은 정녕코 그것을 인정해야한다. 자신이 얻을 수 없는 엄청난 것을 얻었다면, 그것은 여리고성의 성벽이 무너진 것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것이다. 그것을 망각하면 아이성 전투의 패배가 닥치는 것이다. 패배의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반성의 교훈을 삼아야한다. 말씀을 준행하지 못함으로 인한 결과가 곧 실패로 이어졌음을 진실로 깨달을 때, 하나님은 ‘승리의 지혜’를 다시 허락하신다.
정탐꾼은 사실 판단의 실수를 했다. 여리고성은 들판에 있었고, 아이성은 산위에 있었다. 여리고성은 성문을 굳게 걸어 잠궜다면, 아이성은 성문을 열고 싸움을 할 정도로 호전적인 적군이었다. 비탈진 산세도 이스라엘 군대에 유리하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매복작전과 유인술로 아이성 전투에 임하도록 지혜를 주셨다. 매복작전과 유인술은 기습작전이다.
(여호수아서 8: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 백성과 그 성읍과 그 땅을 다 네 손에 주었노니 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취하라 너는 성 뒤에 복병할찌니라 이에 여호수아가 일어나서 군사와 함께 아이로 올라가려 하여 용사 삼만명을 뽑아 밤에 보내며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성읍 뒤로 가서 성읍을 향하고 매복하되 그 성읍에 너무 멀리 하지 말고 다 스스로 예비하라
3만명의 매복군대를 미리 복병으로 두고서, 여호수아는 전쟁에 임했다. 이처럼, 생활전쟁을 할 때는 미리미리 대비를 해야한다. 그냥 무작정 현장에 가서는 낭패를 당하기 일쑤다. 사전에 파악하고서 다양한 대비책을 강구해야한다. 1차 전투에서 3천명의 군대로 전쟁을 했는데, 10배가 넘는 3만명의 매복군대를 미리 파견하듯이, 생활전쟁도 작은 일도 쉽게 봐서는 안된다. 철저히 점검하고, 상대의 전술에 따라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해야한다.
아이성은 마치 멧돼지같은 저돌적인 사람과 단체를 상징한다. 자기중심이 강하고, 한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한 전문인들은 정면승부를 하면 낭패를 당한다. 아이성은 작지만, 강한 성이다. 그처럼 자기중심이 강하고, 전문가들은 작지만 강한 사람들이다. 겉만 보고서 작은 힘으로 상대하면 안된다. 여리고성보다 더 큰 힘으로 상대해도 이기기 어려운 상대가 바로 아이성이다. 산세가 높고, 전투력이 강한 성이라서 그렇다. 매복작전으로 텅빈 성을 차지하듯, 정면승부를 하지 않고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도 지혜다. 집 주인이 지킬 때는 얻을 수 없지만, 집 주인이 지키지 않을 때는 쉽게 얻을 수가 있다. 경매로 건물이 나왔을 때는 집주인이 없는 상태이다. 마치, 그와 같다.
반대급부로, ‘신앙의 아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흑암의 유인술을 조심해야한다. 에덴동산도 사실상 신앙의 아이성과 같았다. 작지만 강한 성읍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성읍이었다. 그런데 옛뱀이 교묘하게 유혹해서 하와가 그대로 따라갔다. 뱀의 말을 들음으로 말씀의 아이성을 뺏긴 것이다. 생활속에서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말씀의 성읍을 지켜야한다. 새벽재단의 성읍을 지켜야한다. 화평과 사랑의 성읍을 지켜야한다.
또한, 큰 일도 작은 일도 반드시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문제를 해결해야한다. 작은 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멧돼지에게 쫓기듯 낭패를 당하고, 큰 손실을 볼 수 있음을 명심해야한다. 실패는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서 성공의 전화위복이 될 수 있음도 기억해야한다.
(4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