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중근의 둘째아들 안준생의 이야기
내 평생, 기억에 남는 즐거운 자원봉사를 하고 왔다. 잊지 못할 것이다. 몸부림을 치고, 몸살의 고통이 내리면서도 새벽은 행복하다. 함께 동참했던, 함께 고통을 배분했던, 함께 초코파이를 나눠 먹었던, 함께 삽질했던, 함께 배수로 공사를 했던, 장로님과 장교와 학생과 청년. 우리 다섯명은 월명동 치타솔에서 내려가는 길의 배수로 작업에 참여했고, 쏟아지는 폭우속에서 비옷을 입은 채 콸콸콸 내려가는 빗물의 우렁참을 쳐다보았다. 비가 오지 않을 때는 그렇게 평온하던 길이 비가 내리면 이리저리 주름이 파이고, 길 한복판에도 계곡이 생기면서 배수로 공사를 하지 않고, 물길을 잡지 않으면 길은 금새 망가져서 자동차는커녕, 골프카도 다닐 수 없는 상태로 변하고 만다. 아!! 인생도 그러할 것이다. 금새 잡초는 자라고, 금새 길은 울퉁불퉁해지고, 금새 세상으로 거북목처럼 기울고, 금새 콸콸콸 걱정과 불안은 쏟아진다.
“높은 곳은 낮게, 낮은 곳은 높게, 비가 올 때 지금 물길을 잡아요”
– 김00 장로님
작업을 총괄해서 지시하신 분은 김00 장로님이다. 공군 출신답게 일사분란하게 비행기 속도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질 때는 ‘비 맞으면서 일하게 생겼다’고 살살 걱정도 되었다. 그런 걱정을 하나님께서 들으셨는지, 이미 예정에 있는 폭우였는지, 순식간에 빗방울이 굵어졌고, 폭우가 쏟아지니 길은 곧 물이 되었다. 폭우가 쏟아지기 전에는 길은 그저 길이다. 물이 흐르니 물길이 보였고, 그것을 보면서 ‘평탄화’ 작업을 했다. 비옷은 형식적 외투일 뿐이다. 하다보니, 인간 삽이 되어서, 인간 곡갱이가 되어서, 인간 호미가 되어서, 하나라를 세운 ‘우’의 치수작업처럼 물과의 전쟁이었다. 멀리서 VDO 카메라를 들고 누군가 내려와서, 우리의 모습을 실제로 촬영했다. 그러한 촬영도 의식될 수 없는 것은 물의 방향을 트는 것은 길을 보호하는 실제적 일이어서 그렇다.
길은 길었다. 내려가는 방향으로 울퉁불퉁 모양이 틀어졌고, 그러한 모든 형태는 우리의 손길과 발길을 필요로 했다. 그저 발바닥으로 슬슬 해서는 평탄화 작업이 되지 않았다. 높은 곳을 깍아서 낮은 곳에 밀어넣고, 흙이 부족할 때는 도랑에 쌓인 모래와 흙을 퍼서 날랐다. ‘토담토담’ 우리의 일은 그것이었다. 땀방울이 빗물처럼 흘렀고, 운동화와 군화와 작업화와 작업복은 흠뻑 젖었고, 폭우속에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면서 초코파이를 나눠먹는데 어찌나 맛있고 달콤하던지, 情으로 정이 들었다.
점심 먹고, 잠시 눈을 붙였다가, 굴속의 약수 몇잔을 마시고, 더욱 거룩하고 신성해진 약수터의 분위기를 느끼면서, 신비로운 순례자가 되어서 굴속을 나왔다. 감히 물을 담아간다는 것이 그 경건함에 무례가 될 정도였다. 나는 준비한 도자기 컵으로 기도하면서 진실로 약수를 마셨다.
고단함도 잠시, 오후 작업도 치타솔 근처 내리막길 배수로 작업의 남은 일을 진행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김00 장로님을 중심으로 우리 팀은 똘똘 뭉쳐서 남겨진 일을 마무리했다. 오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우산을 잃고 간다는 사람의 심리처럼, 쏟아지는 폭우의 힘이 눈앞에 사라지니, 보통 사람들이 볼 때는 평탄화 작업의 중요성을 알 수가 없다. 우리는 폭우속에 내리치는 물길의 힘을 보았으므로, 꺽어지는 부분에 깊게 패인 곳을 과감히 메웠고, 새로운 물길을 내면서 길을 넓혔다. 한번 작업하면 30분 정도 노동력이 투여되므로, 쉬운 일은 결코 아니었다.
하다보니 점점점 요령이 생겼고, 지혜로서 패인 곳에 돌을 채우고, 그 위로 흙을 메꾼 다음에 자갈로 덮었다. 그렇게 새로운 방법으로 모든 길을 주어진 여건에서 반듯하게 만들었다. 마지막 관문까지 완벽하게 해냈다. 끝에 갈수록 힘은 부족하고, 물길은 세차서 패인 공간이 상당히 깊었다. 길의 한복판이 쑥 들어갔다. 우리는 끝까지 몸부림을 치면서 마무리지었다. 해놓고 보니, 어찌나 보람이었던지, 계곡물에 손과 발과 마음을 씻고 서울로 돌아왔다.
칼럼을 쓰는 지금, 김00 장로님이 해준 이야기가 생각난다. 독립운동가 안중근의 이야기다.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살해함으로 민족의 독립운동과 중국 정부에 새로운 불길을 전해준 위대한 영웅, 그의 둘째 아들 안준생은 친일파다. 독립운동가의 2세가 친일파가 되어서, 아버지의 죄를 사죄하고, 일본의 돈으로 유학하면서 살았던 슬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김00 장로님은 안중근과 안준생의 이야기를 그의 둘째 아들에게 전해줬다고 한다. 김00 장로님의 둘째 아들은 현재 중학교 1학년인데, 그 이야기를 듣고 주먹을 불끈 쥐더니 “나쁜놈”이라고 말했다.
김00 장로님은 “감정의 격분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그 감정을 언어의 도구로 표현하는 인물이 되야한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너가 지금 받고 있는 신앙의 축복, 아버지가 믿었던 신앙을 너도 믿게 된 것은 안준생이 독립운동가의 자녀가 된 것과 같다. 민족을 위해서 살았던 안중근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안준생이 망각하니, 일본의 돈으로 유학하고, 호위호식하면서 아버지의 업적에 먹칠을 했으니, 그것은 정말로 잘못한 것이다. 신앙도 이와 마찬가지다. 섭리 때문에 당하는 작은 불편과 환란 때문에 영원히 얻을 축복을 망각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라고 자녀교육을 해줬다고 했다.
참으로 감동적인 사연이었다. 노아도 둘째 아들 함이 아버지의 그 위대한 역사를 망각하고, 아버지를 불평하면서 문제가 발생했었다. 자식은 아버지 세대의 눈물과 사연을 잘 알지 못함으로 아버지 세대의 은덕은 누리면서 그 불편은 배제하려는 경향이 짙다. 상반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밥상머리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부모가 곧 자녀의 1등 과외 교사이다. 밥상을 차리듯, 밥상에서 뼈있는 교육을 전해준다면, 자녀는 훗날 신앙의 인재가 되어서 부모에게 효도를 하고, 사회의 역군이 되고, 신앙의 대들보가 될 것이다. 어제 자원봉사와 함께 참으로 귀한 사연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