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는 하나님의 위대한 통치를 보여주는 성경이다. 드라마틱한 역사의 진실이다.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사건, 이것은 히브리 민족에게 ‘신앙의 본질’을 스스로 자문하게 한 사건이며, 그때 비로소 하나님을 향한 ‘야훼 사상’이 깊게 뿌리내렸고, 포로생활을 통해서 단결력이 생겼으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절대믿음의 신앙이 형성되었다. 다니엘의 영향이 컸다. 인간이 만든 제도로서 통치권력은 하나님의 능력밑에 있으며, 세상의 왕들도 결국 하나님께서 움직이신다는 것이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히브리 민족에게 끌려다니는 그런 신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부분을 착각하면, 중세 암흑시대가 펼쳐지고, 유대교의 모순에 봉착하며, 선민사상의 나르시즘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믿는 족속에 예속되지 않는다. 조직이나 회사는 충성을 맹약하는 부하와 보스의 관계로 생각하면 안된다. 성경에서 아무리 솔로몬의 지혜로움을 찬양하더라도, 다윗 왕의 위대함을 표현해도, 하나님은 다윗왕조를 폐했다. 다윗왕의 밧세바 사건, 솔로몬 왕의 복잡한 여자관계로 인한 우상숭배 사상의 왕조 침입으로 하나님의 절대사상은 서서히 기울어져, 솔로몬 왕을 넘어서지 못하였다. 다윗왕의 사소한 인본주의가 결국 솔로몬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미쳤고, 손자대에 다윗왕조는 분열되더니, 조선왕조보다 짧게 340년을 넘지 못하고 멸망했다. (북이스라엘은 200년만에 멸망했다.) 다윗왕조의 멸망으로 다윗왕조의 부활을 꿈꾸면서 구세주 사상이 생긴 것이다. 한반도에 뿌리내린 정감록 사상과 거의 흡사하다.
다니엘서의 근본은 숫자의 해석이 아니다. 모든 국가,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서 운명처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수레바퀴’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범죄함으로 권력의 침탈’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즉, 천법의 존재를 말씀하는 것이다. 보여지는 인법으로는 돈과 권력을 가져야만, 단체와 나라가 성장하면서 부국강병을 이룰 것 같아도, 하나님은 ‘천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가 실현됨을 분명히 말씀하신다. 다니엘서 8장 12절에 그 내용이 나온다.
범죄함을 인하여 백성과 매일 드리는 제사가 그것에게 붙인바 되었고 그것이 또 진리를 땅에 던지며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내가 들은즉 거룩한 자가 말하더니 다른 거룩한 자가 그 말하는 자에게 묻되 이상에 나타난바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망하게 하는 죄악에 대한 일과 성소와 백성이 내어준바 되며 짓밟힐 일이 어느 때까지 이를꼬 하매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 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
다니엘 8장은 이미 성취되었다. 비유로 나타난 숫양과 뿔의 비유가 명확히 설명된다. 이러한 해석 때문에 다니엘서의 위작논란이 발생한다. 과연 다니엘이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예언할 수 있었을까, 그 논란이다. 이미 되어진 세계사를 알고 있는 랍비들이 예언서에 편집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 진실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복음서도 예루살렘이 멸망당한 이후에 ‘예수님의 예루살렘 멸망 예언’을 기록하였듯이, 다니엘서의 편집 논란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다니엘서의 핵심은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짓밟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