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성스러운 경전이 곧 성경이다. 불교는 불교 경전이 있고, 유교도 유교 경전이 있다. 절대적 사상은 금기의 대상이며, 마치 ‘왕의 권력’과 같다. 그래서 단발령을 선포했을 때, 목은 잘라도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면서, 삼손의 절규를 부르짖었다. 삼손의 후예도 아닌 한민족이 삼손처럼 상투를 틀고서 유교의 절대적 진리를 실천한 것이다. 그러나, 요즘 누구나 1달에 1번은 미용실에 간다. 믿는 것의 관찰자 시점은 이래서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북한의 응원단을 보면서 이질감과 어색함을 느끼지만, 그들은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믿는 사상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것도 관찰자 시점이다. 성경을 볼 때는 관찰자 시점을 가져야한다.
왜 마태복음과 마가복음과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이 사건의 기술에서 다를까? 이러한 물음은 하나님의 역사를 찾아가는 작은 디딤돌이 된다. 모두 똑같다면,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은 입체적으로 입증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서로 다른 관점에서 기술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하나님의 역사로 입증된 것은 복음서의 관점 차이 덕분이다. 복음서는 기록한 사람을 따라서 이름을 붙였는데, 마태복음과 마가복음과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이다. 마태와 요한은 사도로 택함을 받은 인물이고, 마가와 누가는 사도를 따라 다녔던 비서들이다. 마가는 베드로의 사촌동생이면서 사도 바울의 수행을 맡았다. 누가는 의사로서 사도 바울을 수행했다.
글을 쓰는 작가는 반드시 관점이 있다. 누구를 대상으로 하느냐가 상당히 중요하다. 어린이 책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니까, 문체가 편하고 쉽다. 독자가 누구냐가 상당히 중요하다. 노인을 대상으로 하면 건강서적도 집에서 하는 생활운동을 중심으로 기술된다. 같은 내용이라도 전혀 다르게 보여주는 것이다. 복음서는 이렇게 읽는 독자를 선정하고서 기록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대상으로 기술되었다. 즉, 전도를 위한 소책자로서 ‘마태복음’이 기술되었다. 유대인들은 다윗왕의 부활을 기다렸던 예언사상이 매우 강했다. 그 예언의 성취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마태복음이다. 그래서 왕조의 계보가 맨 처음에 나온 것이다. 독자층을 이해하면 마태복음의 기술전략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다. 한민족은 정감록 사상이 매우 강하다. 그처럼 유대인은 다윗왕조의 부활로서 위대한 정치 지도자가 출현하길 학수고대했다.
반면, 요한복음은 마태복음과 전혀 다르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들을 대상으로 했다. 그래서 예수님의 설교원문이 많다. 예수님을 믿던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극심한 핍박을 받았다. 유대교로부터, 로마로부터 진퇴양난의 위험을 겪었다. 십자가의 노정이 펼쳐지면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는 십자가의 고역을 겪어야했다. 신앙인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알려주기 위해서, 예수님과 교제를 할 수 있도록 작성된 것이 바로 요한복음이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누가’의 기록이다. 누가복음은 이방인의 관점에서 보는 유대인의 왕, 예수님의 사역을 기록하였다. 초반부를 보면, 다른 복음서와 상당히 다르게 접근한다. 의사로서, 사실확인의 저널리즘에 입각해서 다양한 사건을 기술한 것이 누가복음이다. 특히 사도행전은 각 사도들에게 역사한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체험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로마서와 히브리서는 관점이 완전히 다르다. 둘은 모두 사도 바울이 작성했다. 로마서는 이방인을 대상으로 복음의 정체성을 증명하였고, 히브리서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예수님의 대제사장으로서 권위를 증명한 내용이다. 로마인은 이방인이고, 히브리인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다. 독자층이 다르므로, 설명도 달라진다. 신약복음서가 이처럼 다양한 문체로서 다양한 내용이 첨가된 것은 유대교에서 이방인으로 하나님의 섭리가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관찰자 시점을 가져야만,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관찰자 시점을 갖지 못하면 그 관점은 ‘쇄국주의’가 될 위험이 다분하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히브리서 등등 모든 복음서가 각각 독자층을 다르게 보면서 예수님의 사역을 증거했다. 이것을 이해하면 성경이 입체적으로 보이면서, 결국 하나님의 관점까지 깊게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