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언젠가, 어떤 설교에서 목사님이 “교회에 비치된 성경책 보다는 자기 성경책을 들고 다녀야 해요. 자기 성경, 자기 하나님, 자기 말씀을 체험해야합니다. 눈물이 젖은 성경책이 되어야합니다”라고 질책했다. 그때 나는 교회 성경책으로 예배를 드렸는데, 혼쭐났다. 오늘은 그때 교훈을 실천하고자, 나의 성경책을 꺼냈다. 지난 2월이던가, 나는 여호수아서를 읽으면서 눈물이 강처럼 흘렀다. 여호수아서 1장 1절에서 9절까지 읽는데, 눈물이 줄줄 흘렀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는 구절을 읽는데 가슴이 뭉클하면서 바다의 파도가 치듯이 내 마음에 요동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 밀려오는 설움이며, 혹은 감동인지 원인과 출처를 알 수 없는 물결이었고,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위대한 모세조차 40년의 긴 시간동안 넘지 못한 그 벽, 요단강. 그러나 모세가 죽으니, 여호수아를 통해서 몇일만에 바로 건넜다. 하나님의 역사는 때가 되면 바로 행하심을 정녕코 확증하였다. 눈물이 젖은 성경책으로, 여호수아서 1장의 사건은 항상 뇌리에 남아있다. 이와같이 성경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랑의 편지인데, 하나님을 만나러 예배시간에 나의 성경책을 가지고 가는 것은 사랑의 증표다. 연인끼리도 항상 커플반지를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과 사귐에 있어서 ‘나의 성경책’이 없다면, 하나님과 친밀감이 공적인 관계일 수 있다.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친하려면 역시 나의 성경책이 중요한 것이다.
‘사의 찬미’라는 드라마를 요즘 본다. 어쩔 수 없이 결혼한 청년, 유학생활을 하면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으나 유부남이라서 사랑을 밀쳐내야했던 운명같은 사랑의 회오리바람, 친구들은 모두 독립투쟁을 하면서 청년의 꽃을 피우는데,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서 효자로서 모범된 삶을 살아야하는 청년이 아버지를 향해서 절규하듯 울부짖는다.
“제가 그동안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까? 결혼하라고 해서 결혼했고, 토지관리하라고 해서 토지를 관리했고, 유학생활을 마치고 들어오면 회사를 물려받으라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 제가 아버지 뜻대로 안한 것이 있습니까? 저도 사람입니다. 생각이 있고, 심장이 있고, 자유의지가 있는 사람입니다. 저도 숨을 쉬고 살아야하지 않습니까. 남들은 빼앗긴 나라를 위해서 독립투쟁을 하는데, 도대체 저는 무엇을 해야합니까? 저에게 살라는 것입니까? 죽으라는 것입니까?”
이 말에 아버지는 침묵한다. 아들에게 씌운 굴레가 얼마나 참혹하고 가혹한 것인지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라마 끝 화면에 이러한 문구가 타이핑쳐진다.
“아버지, 저는 이 심장 속 회오리 바람으로써 처음으로 아들이라는 울타리를 뛰어 넘었습니다”
아!! 얼마나 감동적인지, 인생은 각자의 울타리를 뛰어넘기 위해서 하나님을 간절히 갈망해야한다. 신의 동아줄을 타고 새롭게 변화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삶과 정신의 휴거’가 아닐까? 그리하여, 나는 때론 드라마를 성경책을 보듯 하나님과 연결해서 이해한다.